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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 퇴근길 더디 오는 버스 어둡고 긴 거리
희고 둥근 한 그릇 밥을 생각한다 텅 비어 쭈글쭈글해진 위장을 탱탱하게 펴줄 밥 꾸룩꾸룩 소리나는 배를 부드럽게 만져줄 밥 춥고 음침한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을 따뜻하게데워줄 밥 잡생각들을 말끔하게 치워버려주고 깨끗해진 머릿속에 단정하게 들어오는 하얀 사기 그릇 하얀 김 하얀 밥 머리 가득 밥 생각 마음 가득 밥 생각 밥 생각으로 점점 배불러지는 밥 생각 한 그릇 밥처럼 환해지고 동그래지는 얼굴 그러나 밥을 먹고 나면 배가 든든해지면 다시 난폭하게 밀려들어올 오만가지 잡생각 머릿속이 뚱뚱해지고 지저분해지면 멀리 아주 멀리 사라져버릴 밥 생각 --- p.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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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바람에 감전된 나뭇잎들이 온몸을 떨자 나무 가득 쏴아 쏴아아 파도 흐르는 소리가 난다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보자고 바람의 무늬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보자고 작고 여린 이파리들이 굵고 튼튼한 나뭇가지를 잡아당긴다 실처럼 가는 나뭇잎 줄기에 끌려 아름드리 나무 거대한 기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힌다 --- p.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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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 되다 말았을까 잎이 되다 말았을까
날카로운 한 점 끝에 온 힘을 모은 채 가시는 더 자라지 않는구나 걸어다닐 줄도 말할 줄도 모르고 남을 해치는 일이라곤 도저히 모르는 그저 가만히 서서 산소밖에 만들 줄 모르는 저 푸르고 순한 꽃나무 속에 어떻게 저런 공격성이 숨어 있었을까 수액 속에도 불안이 있었던 것일까 꽃과 열매를 노리는 힘에 대한 공포가 있었던 것일가 꽃을 꺾으러 오는 놈은 누구라도 이 사나운 살을 꽂아 피를 내리라 그런 일념의 분노가 있었던 것일까 한뿌리에서 올라온 똑같은 수액이건만 어느 것은 꽃이 되고 어느 것은 가시가 되었구나 --- p.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