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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강이 끝났다 익힘 스테로이드, 스테로이드, 그 숲엘 갔다 꿈인 줄 알았네 막하막하 기어오르지 마 언더독 프로작의 올바른 예 위로가 그렇게 소용없다 평화 공작소 열렬한 인간 제2부 닐스의 여기저기 먹통 냉동실 안에서 살아남았으면 된 거야 알바로가 나를 구해 줄까 샅샅 보급형 설치류 시간이 필요해 B컷 개 주인들 제3부 파헤치기 쉬운 삶 Plutoed 잭보다 콩나무 드디어 금요일 아는 병은 괜찮은가 태풍엔 신문지 조립 인간 조용한 남자를 사랑하는 것의 어려움 꼬치꼬치 장래 여행자 고소당하지 않는 연애 허락 없이 좋아해요 각자의 세상 제4부 이게 정말 도움이 되나요 살이 찌게 될 거야 네일을 준비하는 자세 납작 유전이다 밥 먹는 우리 둘 도로 남 장례 희망 난 아직도 네가 좋아 발 발 무슨 발 곧 해설 조재룡 실패하는 로망, 폭력과 주이상스의 기억술 |
정다운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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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을 벌리고 땅 위에 누워 보는 게 어때
구름이 굴러떨어질 듯 가깝다던데 등 밑이 젖으면 몸에서 풀 냄새가 나고 그때 양들이 걸어오는 게 어때 두 주먹을 펼쳐 주면 손바닥에 코를 박고 천천히 풀을 뜯어먹지 않을까 그들의 입안에서 풀물 든 내 일부가 갈리는 거야 그 입놀림을 보고 있자면 왜 여기 와야 했는지 기억이 날지도 몰라 너무 화를 내지 않았니 남을 욕하고 탓하고 때처럼 밀려 나오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니 행복의 일기를 15분씩 쓰면 저절로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따라해 봐 녹색을 쳐다보기 아무것도 하지 않기 그것의 엉덩이까지 보고 있자면 노래진 털에 방울방울 매달린 똥구슬뿐인데도 양이란 하얗고 문제없는 동물이니까 다시 버리고 살기 사소한 걸 사랑하기 빈 손바닥에는 뿌리가 끌려 나간 붉은 자국들 한 가닥도 남김없이 다 처먹었어 여전히 배고픈 양 한 마리가 눈치도 없이 더 달라고 보채게 될 거야 조용히 해 미친 양아 여기 주인공은 나야 ---「평화공작소」중에서 실어증 자식을 둔 옆집 여자가 말했다 나는 고요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 견딜 만하다고 생각하지? 아냐 내 아이는 수시로 고함을 질러 귀를 막을 필요는 없지만 그 고함 소리 때문에 여러 번 놀란다고 그 아이의 벌린 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나는 견딜 수 없지만 견디는 거야 옆집 여자는 말했다 어깨를 대충 두들기며 너의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봐 밥상을 놓고 앉았기 때문에 너희는 식구지 다른 사람과 한번 살아 본다고 해서 그게 더 낫다는 보장은 없어 넌 잘하고 있어 이상한 것들 사이에서 잘 버티고 있어 너에겐 좋은 일이 생길 거야 이 여자는 나를 핥아 주는 모양이다 침이 식으면 시원하고 덜 아픈 것도 같다 서로의 인생을 미워해 주고 아파트 복도 끝에 나란히 앉아 귤을 까먹었다 술을 나눠 먹었다 손톱을 칠해 주었다 여자의 쓰레기봉투 안에는 박카스 병들이 나의 쓰레기봉투 안에는 스타킹이 들어 있었다 피곤을 이기지 못하는 부모와 올이 나가면 걷잡을 수 없는 청소년이 경쟁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떠날 기회가 혼자 살 기회가 막장 영화에서 보면 계모는 내 아빠이며 내 애인인 놈 들과 딸이며 동생인 아기들 틈에서 협박하지 너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애를 채워 넣으면 그만이야, 말도 방구도 아니고 김치 싸대기를 맞아야 할 소리였지만 나는 넣어질 동생이 불쌍해서 이 집에 남기로 했다라는 스토리 언젠가 살인이 나도 정상참작될 스토리 그거랑 비슷하다고 해 두자 옆집 여자가 차를 바꾸고 남편을 대여하고 자식의 입을 들여다보며 다 안다 다 안다고 거짓말을 멈춘 적이 없듯이 말 못 하는 그 아이의 불안이 오줌처럼 바닥에 흐르지 않은 적이 없듯이 우리는 매일 밤 복도로 기어 나와 조용히 주저앉아 있었다 두 개로 뚫린 콧구멍과 다를 바 없이 모 책에 보니 이런 말이 있었다 아무리 달콤하게 위로를 해 준다 해도 당신이 삼 일 후에 똑같이 괴롭다면 그 친구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혀로 위로하는 사람 말고 긍정적인 사람을 만나야 한다 아 어쩌나 삼 일 후에도 우리는 행복해져 있지 않았다 아무도 긍정적인 사람이 될 수 없었다 그렇게 소용없는 걸 알면서도 줄 건 위로밖에 없었다 행복이 모든 사람의 목표인 건 아니었다 ---「위로가 그렇게 소용없다」중에서 어떤 연애는 우화 같다 예를 들어 그는 나쁜 나라에서 태어났다 의사였으며 사람을 여럿 살렸다 애인이 한 무리의 짐승들에 둘러싸여 난자당했을 때 그는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했다 기구 기술 기도 쏟아진 걸 도로 담을 순 없었다 자신의 두 손을 잘라 내고 싶었으나 가족이 애원했다 살라고 했다 살려면 떠나라고 했다 그의 몸은 그렇게 이곳으로 왔다 그해 봄 버스 안에서 그는 나를 만난다 눈이 마주친 사람을 끝까지 볼 줄 아는 어리고 용감한 사람의 등장이었다 버스 안으로 꽃잎이 날아드는 빤한 인트로를 보고도 어쩌면 다른 이야기가 될 거라며 덮지 못했다 축제엘 가고 싶었다 토마토 축제 문신도 해 보고 싶었다 그의 이름 쇼핑을 하다가 맥주를 마시러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몸에 묻히고 싶은 게 없었고 약속하고 싶은 게 없었으며 꽃도 맥주도 사 주지 않았다 그는 그냥 나를 기억하고 기억하고 기억하겠다고 했다 울었다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선물이 받고 싶어서 인생의 고비가 여기인 거 같아서 그는 나에게 혀를 넣고 나를 움켜쥐고는 옥상으로 데려가 보여 준다 피가 말라붙고 짐승의 혀만 살아 움직이는 기괴한 곳 불타고 환했으며 가루가 되어 단단해지는 곳 그는 그런 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옥상에서는 세상의 한쪽만 보였다 내 방에 와 달라고 부탁을 한다 우린 다른 것을 보고 있다고 내 방은 숲도 사막도 아니고 환상이 터지는 분홍 벽지도 없지만 식은 침대 좋아하는 의자 정도가 있을 뿐이지만 발이 시리면 양말을 신고 낙서 위엔 사진을 붙이면 되었다 그가 와 준다면 청소를 하고 과자도 까고 속옷을 갈아입었을 것이다 더 가까이 붙어 앉아 웃기지도 않은데 웃음이 났을 것이다 그는 오지 않는다 피곤하다고 어쩌다 기막히게 멋진 얼굴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사라져 버렸다 자기변명으로 가득 찬 멍청한 카드 한 장을 남기고서 실연의 기분은 견디기 어렵다 졸지에 내가 보는 세상은 음란하고 폭력적이 되었다 다정했던 날들은 벗겨지고 맞은 뒤에야 구석으로 기어가 쉴 수 있었다 밤새 천장에 묶여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가슴 두 쪽만이 대롱거렸다 아무도 핥아 주지 않아 가여웠다 이제 돌아가는 건 글렀다 많은 이야기의 주제처럼 어쨌든 나아가야 한다 나약한 자는 약에 빠지고 조악한 자는 더 비틀리면서 바깥은 보는 대로 변해 갈 것이다 다음에 내게 다가오는 사람에게 왜 이만큼밖에 해 줄 수 없는지 보여 줘야 할 것이다 그 사람의 방엔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두 인물은 운이 좋으면 같은 곳에서 늙어 가게 될 것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다른가, 하고 의문을 품게 되겠지 자기만의 불완전한 세상을 감시하느라 피곤해지겠지 아무도 잘못한 게 없으나 누구나 외로울 것이다 ---「각자의 세상」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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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기뻐서
곧 사랑에 빠질 거라고 세상이 조용하다고 손을 잡고 숲속으로 걸어갔다 무엇이 튀어나올지 개뿔도 모르면서 - 시인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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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다운 시인은 기억을 헤집는 고단함을 마다하지 않는다. 되묻는 입술을 통해 일상은 속속들이 적나라하게 파헤쳐진다. 그러나 이 드러냄은 시시비비를 가리고 죄를 묻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시는 삶을 재구성하는 ‘옳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픈 말들을 감내하며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시인의 고집을 끝까지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조일 때도 있고, 비아냥거림이나 욕설일 때도 있다. 어떤 말들은 외면당하거나 누군가의 귓가에 맴돌다 희미해지기도 한다. 침묵에 갇힌 말들조차도 놓지 못한 채 뜨거운 정념과 책임의 윤리와 포기할 수 없는 사랑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출렁거림’이랄까. 멈추지 않는 이 움직임이야말로 새로운 발걸음을 떼기 위한 방법처럼 보인다. 내일의 희망 같은 건 믿지도 않으면서 힘겨움을 짊어진 채 엄살떨거나 핑곗거리를 찾지 않고 우리가 유지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있을 거라는 조심스러운 전망 위에 자신을 끊임없이 다시 세워 보는 것. 폭력과 허위와 위선에 맞닥뜨린 순간마다 인간의 종에 대한 염증과 환멸을 어쩌지 못하겠지만 정다운 시인은 ‘누덕누덕’ 멈추지 않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조금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만들어 가는 삶을 불러내기 위한 몸짓이 시집 곳곳에 아프게 박혀 있다. 우리는 이 시집을 통해 한 개인 안에 이야기들이 어떻게 꾸려지며 그 이야기들이 어떻게 슬픔의 힘을 만들어 가는지 목격하게 된다. 그것을 사랑의 한 방식이자, 시의 존재 이유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랑은 위로보다는 예의가 필요한 것 같다. 예의를 갖춰 열렬한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 이근화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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