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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1부 감정선/빵 굽는 편의점/여의도/소경/싱크홀/놀이터/늙은 쿠마리/도상圖像/희생/정객/열 시 십 분들/별/묵독 파티/우편함 속의 꽃씨/DMZ 2부 주걱/달/광장/개종/혁명의 그림자/시계/모서리의 세계/언니들은 불란서 망사를 불망이라 부른다/장미/오늘의 뉴스/컨테이너 박스/11월/동사서독/공상은행/소금 우체국/비밀 3부 타임스위치/두 개의 탈/서명하는 손들이/‘우리’라는 말의 우리/동작/거미줄2/커피 술/방언/궤도/책/수레국화/해동/모자 화분/봄날의 가면 장수/붕어빵/함정 4부 로프/눈사람/폭설 터미널/자선의 밤, 얼음새/축제주의보/타임테이블/산책 일기/후쿠시마/일식/연애담 해설 ‘너’의 뒤를 계속 따라가기 · 김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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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슬픔도 기쁨도 아닌 눈빛으로
네 이마에 손을 얹을게 창턱에 내려앉는 이 햇빛만큼만 나는 네 영혼을 들어 올려줄 수 있을 거야 ---「늙은 쿠마리」중에서 사랑이 나쁜 손님으로 들이닥쳤다 방값을 내밀지 않아도 마음이 마음에게 새 이불을 내어줄 때가 있다 ---「달」중에서 그에게서 사 모은 웃음이 나의 아침을 출렁이게 했다고 기억은 상한 손가락이 지우는 노랫말이 되려나 뜯어져 배달 온 소포처럼 각기 다른 맛의 액체를 담고 머뭇거리며 식는 찻잔들처럼 나는 몇 개의 현재에 붙들려 있다 ---「봄날의 가면 장수」중에서 사라진 너의 주소가 꽃 소식에 왔다 가루받이 몸짓 나는 내 입술에 남은 너를 혀로 안는다 ---「일식」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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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쪽 기울 때 너는 떠올랐니”
살기 위해 서로를 버리는 저울의 세계 『놀이터』에서 류인서가 빚어내는 풍경들은 ‘나’의 목소리로 구현된다. 그런데 화자인 ‘나’는 이곳에 살고 있지만 온전히 이곳에 속해 있지 않은 듯한 인상을 준다. 제도권의 언어와 낯선 이방인의 언어(시어)를 섞어서 구사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계와 일상에 골몰하는 생활인인 동시에 이미 멸망한 듯한 시의 나라에서 온 난민이자 이름 없는 종교의 신도처럼 살아간다. 이러한 분열은 혼란과 절망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는 시인에게 이 세계와 자신을 좀더 냉철하게 관찰할 수 있는 거리감을 선사한다. 여기서 만났을 거다 우리 미끄럼틀과 시소, 혼자 흔들리는 그네, 생울타리에 기댄 작은 청소 수레가 속한 모래의 세계 이쪽 기울 때 너는 떠올랐니 우리는 평균대가 아니어서 균형점을 앞에 두고 나뉘어 앉는 세계 시소는 약속이 아니어서 잽싸게 무게를 버리며 달아날 수 있다 떠 있는 빈자리와 쏟아지는 이의 우스꽝스러운 엉덩방아, 이것은 갑에게서 가볍게 을이 생략되는 저울 놀이 ―「놀이터」 부분 류인서는 공존과 화해가 불가해 보이는 이 세계를 ‘놀이터’로 묘사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평균대가 아니어서/균형점을 앞에 두고 나뉘어 앉”아야만 한다. 선택과 소유, 승패의 이분법은 우리를 정확히 둘로 양분한다. 심지어 우리가 함께하는 이 순간은 약속조차 아니어서 누가 먼저 “잽싸게 무게를 버리며 달아날” 수도 있다. 나와 너는 홀로 남겨져 “우스꽝스러운 엉덩방아”를 찧지 않기 위해 상대를 감시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적대적으로 해체되고, 우리의 만남은 연대가 아닌 누군가의 추락으로 종결될 수밖에 없다. 이렇듯 류인서는 살아남고자 누군가를 내팽개쳐야 하는 생존의 놀이터를 극적으로 그려낸다. “걷는 일이 남아 있었다” 반복이라는 이름의 계속 그렇지만 시인은 참담한 이 세계에서, 시소 놀이처럼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끊임없이 꿈꾸고 나아가길 멈추지 않는다. 넝쿨 같은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아는 이, 모르는 이, 걷고 있는 사람 누구도 이 길로 가면 정말 장미인 거냐고는 서로 묻지 않았다 ―「혁명의 그림자」 부분 류인서는 이 길의 끝에 정말로 ‘장미’가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돌아올 대답이 무엇이든 시인으로서는 현재의 걸음을, 이 행위의 반복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복’은 ‘계속’의 다른 이름이다. “정체된 길 위의/난민”(「시계」)에게 반복의 계속과 계속의 반복은 그 자체로써 살아가는 동력이며 희망을 직조하는 작업에 가깝다. 난민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헛된 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갈 길이 없는 것이며, 낯설고 불온한 땅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류인서는 최소한의 생존과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어딘가를 모색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위태로운 축복의 땅을 향해 끊임없이 발을 내딛는 것, 류인서는 이것이 바로 오늘날 시의 남은 운명이며 역할이라고 믿는 듯하다. 잠이 꿈을 지키는 동안 나는 마음의 육체성을 따라가보려 한다. ―「소경」 부분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과 이웃한 화원을 기웃거리는 중입니다. 고무 화분에 장미목 장미과의 사과나무가 살고 있습니다. 가시를 버리지 않은 야생의 근친들도 보입니다. 이 행성에 발 딛고 있는 장미의 오늘을 듣습니다. 장미는 사과의 덜 닫힌 기억 같기도, 시큼한 얼룩 같기도 합니다. 그림자를 버려야겠다고 사과와 장미의 접경지로 순례인지 도망인지를 간 친구가 있습니다. 사과를 먹습니다. 꽃받침이 자라서 된 헛열매를 먹습니다. 자신의 임무를 수정한 다른 장미의 기록을 사과라고 쓰겠습니다. - 뒤표지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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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인서는 이번 시집에서 현대 사회의 생존-놀이가 지닌 파괴적인 반복의 폭력성과, 유한한 인간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반복과 임시적 수행의 운명을 함께 사유한다. 현대의 인간은 자본의 체제 앞에서는 사회적으로 을이며, 필멸의 시간 앞에서는 존재적으로 을이다. 을에게 동어반복과 임시적 수행은 혁신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생성의 삶의 방식으로 변주해야 할 하나의 수단이며 가능성이기도 하다. - 김수이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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