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머리말_중국의 대철학자
01 죄인을 다스리다 02 노나라의 대신이 된 공자 03 다섯 등급의 인품에 대하여 04 유행(儒行) 이란 무엇인가? 05 왕의 말에 대하여 06 왕의 혼인에 대하여 07 예절을 물음 08 절개를 말하다 09 자로 처음으로 만나다 10 교(郊)에 대하여 묻다 11 최상집 개 12 정치에 대하여 13 여섯 가지 근분 14 갈기를 좋아함 15 주나라를 살피다 16 생각함에 대하여 17 세 가지 용서하는 법 18 정치하는 방법을 말하다 19 어진 왕 20 제자들을 마라다 21 벼슬을 하다 22 화액을 당하다 23 애공이 정치에 대하여 묻다 24 물건을 말하다 25 다섯 황제의 덕 26 다섯 황제 27 향사례를 보다 28 명(命)과 성(性)에 데하여 29 예를 논다하 30 묘(廟)의 제도에 대하여 31 다섯 가지 형벌데 대하여 32 형?과 정치 33 관례에 대하여 34 옥을 말하다 35 음악에 대하여 말하다 36 본성(本姓)을 풀이하다 37 공자의 예언 38 안회를 말하다 39 곡례에 대해서 단목사가 묻다 40 곡례에 대해서 복상이 묻다 41 곡례에 대해서 공서적이 묻다 |
孔子
공자의 다른 상품
孟子
맹자의 다른 상품
|
공자는 예에 대해 말했다.
“백성들의 생활에 있어서 예절이 가장 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문에 예절이 아니면 천지신명도 섬길 수가 없으며, 왕과 신하, 윗사람과 아랫사람, 어른과 d이를 구별할 수 없으며, 예절을 모르면 남녀와 부자와 형제와 혼인과 친족에 대하여 서먹서먹하게 되고 멀고 가까운 교제를 구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군자는 먼저 이 예절부터 존경한 뒤에 백성들에게 예절을 자세히 가르쳐서 모이는 절차를 없애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진 뒤에야 문장과 천자의 예복을 다스려서 귀하고 천함과 위아래를 나누어 구별합니다. 그리고 그 순서가 끝난 다음에 상례와 제례의 기강과 종묘의 질서를 말하게 되며, 제사 때 바치는 시석을 놓고 철에 따라서 공경하게 장사지내며, 멀고 가까움을 달리하고 사당에 조상의 신주를 차례로 모신 뒤에야 종족이 모여서 잔치도 벌이게 되며, 또 각각 위치에 따라서 자기의 마음이 편해져야 은혜와 덕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궁궐 안의 방은 낮게 하고 절조 있게 부리며, 구슬로 수레를 꾸미지 않고 그릇의 무늬는 금으로 세기지 않으며, 먹는 음식은 여러 가지 맛을 내지 않고 음탕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백성들과 함께 이익을 같이 누릴 수가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옛날의 밝은 왕들이 행하던 예절입니다.” ---「예절을 물음」 중에서 |
|
미유인이유기친자야 이며, 미유의이후기군자야 이니
왕역왈인의이이의 인데 하필왈리 잇고. 왕이 어진 정치를 베풀면 백성들은 그를 본받아 분수에 맞게 살 것이고, 그가 걱정하는 것처럼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해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 나라를 오랫동안 다스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맹자는 부국강병이라는 당시 전국 제후들의 정책은 오히려 자신의 정치 생명을 짧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왕이나 순왕을 성왕이라고 부르며 떠받드는 것은 그들이 도덕 정치를 베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왕도 그들처럼 오랜 세월 동안 백성들을 다스리려면 이익만을 구하지 말고 모든 백성들이 그들의 분수를 충실히 지키면서 왕의 다스림을 잘 따르도록 도덕적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한다. ---「어진 정치를 베풀고도 왕이 되지 못한 사람은 없다.」 중에서 |
|
중국의 대 철학자- 유교의 시조
공자의 학파는 유가로 불리며 그의 사상은 맹자와 순자에 의해 이어졌는데, 인을 이상의 도덕이라 하여 효제와 충서로써 이상을 이루는 근거로 하였다. 이 책의 내용은 공자가 그 무렵의 공경 사대부 및 제자들과 서로 묻고 대답한 내용을 여러 제자들이 보고 들은대로 기록한 글이다. 그런데 다 같은 성인의 글인데도 《논어》, 《효경》은 특별히 순수한 글이라고 하여 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모두가 읽었으나 이 책만은 내용이 이것 저것이 뒤섞여서 순수하지 않다고 하여 외면당하고 심지어는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까지 있었다. 그런 탓인지 기록에 의하면 진시황이 온갖 시서를 불살라 버리는 이른바 ‘분서갱유’때 이 책 한 질은 공자의 옛 집에 보관되어 있어서 화액을 면했다고 한다. |
|
동양의 위대한 철학자
맹자는 공자와 함께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 사이의 도덕을 바탕으로 했으나 적극적인 성선설, 즉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다는 도덕설을 부르짖었는데, 이것은 뒷날에 유가의 정설이 되었다. 맹자는 왕도를 내세움에 있어 반드시 백성들의 뜻을 존중할 것이며, 포악한 왕은 이를 바꾸어도 좋다는 이른바 역성혁명을 받아들였다. 맹자는 공자가 세상을 떠난 후 백여 년 만에 나타났으나 성인의 도를 보고 깨우치는 사람이 없으니 앞으로의 일도 아마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탄식하였고 성인의 도를 되찾아 전해야 할 무거운 책임을 지고있으나 자신이 뜻을 펴지 못하니 앞으로도 성인의 도는 되찾지 못할 것이라고 한탄을 하였다. 이는 도의 계통을 이었으나 지위를 얻지 못해 도를 퍼뜨리지 못하는 시대를 비판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