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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제1부 걷다, 길 화살 / 새벽에 깨어 / 주목과 바람 / 길고양이, 울다 / 길 위의 잠 / 겨울 산행 / 아침 지하철에서 / 고장 난 버스 / 그 사내 / 겨울, 아침 / 걷다, 길 / 빈손 / 2016년 12월 3일 / 4월 그날 / 작가의 죽음 / 버려진 발목구두 / 통닭집 사내 / 어떤 통화 / 1984년, 빵가게 / 신기한 눈과 귀 / 시간은 / 청담대교를 지나며 1 / 그날 / 풍경과 범종 / 꿈속의 멀리뛰기 / 자히르 / 나이가 든다는 것 / 아이러니 / 이해해, 아빠 / 계단 오르기 제2부 사랑한다는 것은 환기 / 몸살 / 새벽, 비 / 새벽 비, 마음을 베다 / 자작나무 숲 / 자작나무 숲 사진이 있는 우화 / 빛과 독 / 가을이므로 / 지하철에서 1 / 사랑한다는 것은 / 비루한 섹스의 교훈 / 바람에게 2 / 경전선 열차에서 / 편협한 내 사랑 / 두물머리 가는 길 / 황금 나팔 / 문자놀이 / 그대 / 내가 좋아하는 나무 / 숨 쉬는 나무 / 길 제3부 내 그림자 역설 / 국립병원 가는 길 / 그가 / 아카시아 / 새벽, 춘천 / 어느 새벽 / 실재 현상 / 작업장에서 / 어떤 일요일 / 귀향 / 꿈 / P시를 추억하며 / 버드나무 / 겨울날의 손톱깎기 / 바람에게 ■작품 해설: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펼쳐진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세계 - 홍기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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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이 치는 새벽
잠든 아이들의 방문을 열어본다 나란히 모로 누워 다리까지 같은 모양으로 올리고 두 아이 함께 잠들어 있다 얼마 만인가 나는 또 얼마 만인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모습으로 새근거리며 잠든 모습을 보며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눈물이 났다 무엇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던 열아홉 절망의 봄 바람에 맡기듯 나를 맡겼던 어두운 바다 집어등 환하게 밝히며 나서서 새벽 어스름을 등지고 조용히 돌아오던 고깃배 위에서 흔들리던 삶은 경건하고 두렵고 눈물겨웠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으면 그 바다가 전하던 심연의 침묵이 웅웅거리며 들려오곤 했다 그 소리에 잠겨 유영하다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온기를 타고 그만 아이의 꿈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늦겨울 비바람에 마음이 흔들리는 새벽 가만히 열어본 아이들의 방 두 아이는 곤한 잠 속에 빠져 있고 나는 잠든 아이의 발가락을 가만히 잡고 있다 경건하고 따스하며 눈물겹고 두렵다 잠든 아이의 맨발을 통해 전해오는 삶은 --- 「새벽에 깨어」 중에서 꿈을 꾸었다 낯선 이들의 어깨에 밀리며 생면부지의 사람들 등에 부딪히며 모르는 이들의 까만 뒷머리만 쳐다보며 스쳐 지나는 서로의 체취에 뒤범벅된 채 꿈속 같은 새벽의 몽롱함 속 깊은 강 밑으로 가라앉는 악몽 홀연, 아름다워라 찰나의 순간 물살 위 저 빛! --- 「청담대교를 지나며 1」 중에서 멀리서 자작나무 숲을 보다 히말라야 얼음 능선을 날아오르는 무수한 새들의 긴장한 깃 죽음의 고원을 지나 삶의 평원을 향해 망설임 없이 날아오르는 타협 없는 수직 상승의 단호한 결의 아득한 과녁을 직각으로 관통하는 결연하고 올곧은 화살 둔탁한 침묵의 대기를 가로질러 그대의 가슴을 향해 직선으로 날아가 꽂히고 마는 굴절 없는 직각 비행(飛行)의 올곧은 투신(投身) 멀리서 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다 --- 「자작나무 숲」 중에서 고개 들어 나무를 보라 어디 길이 있어 찾아가던가 빈 하늘 오히려 가득한 공간 캄캄 땅속 오히려 신비한 세계 그의 뿌리 그의 손 뻗어 내미는 곳 거기가 곧 길 세상의 끝과 시작 주어지는 길은 없다 멈추지 않고 걷는 자가 내며 가는 것 하늘 어두워지고 별 보이지 않거든 고개 들어 나무를 보라 --- 「길」 중에서 곧추서서 너를 가르고 싶진 않아 네 힘대로 누르고 넘어가렴 쓰러져줄게 휘어잡는 네 손길 휘두르는 대로 올곧이 휘둘려줄게 꺾으면 꺾여주고 흔들면 흔들려주마 때로는 고요하게 때로는 내 깊은 속 뿌리까지 뽑아버리려는 듯 난폭하게 달려드는 너 바람아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네 발길 세지면 세지는 만큼 더 맑게 더 창창하게 노래 부르는 뜻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 「바람에게」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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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깨어』는 여국현의 첫 시집이다. 첫 시집은 하나의 경향, 하나의 주제로 수렴하지 않는 양상을 드러내는 게 일반적인데, 아마도 이는 오랜 습작 과정이 한 권의 분량으로 압축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시인으로서는 여러 가능성이 혼재하는 자신의 세계가 아직 명확한 방향으로 구축되지 않은 징표라고 이해해도 무방하겠다. 『새벽에 깨어』는 네 가지 경향이 공존하는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먼저 ㉠ 일상의 긴장 바깥에서 삶의 의미를 넓게 성찰하고 포용해나가는 흐름이 확인된다. 그리고 ㉡ 시인의 시선에 포착된 길 위의 비루한 현실이 반영된 시편들도 적지 않게 포진해 있다. ㉢ 별리의 아픔을 토로하는 시편들도 하나의 경향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 시인의 내력 및 처지가 제재로 활용된 경우도 하나의 범주를 구성한다.
(중략) 「길 위의 잠」에서는 좌판 상인의 꿈이 펼쳐진다. 아무래도 그 상인은 고단한 현실보다는 꿈속 세계에 더 취한 듯싶다.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그의 앞을” 지나칠 뿐이며, 머뭇거리면서 “좌판을 살피기도” 하는 그 “누구도 그의 잠을 방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판 위 소쿠리 속” 채소며 과일들 또한 “저희들 이야기로” 분주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좌판 상인은 대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길게 혹은 짧게 끊겼다 이어지는/그의 긴 숨결을 따라 걸어가는 길 위에/때로는 푸른 강이/때로는 짙푸른 하늘이/때로는 서늘한 바람이 나타났다 사라지고/강어귀에서 마을까지 한달음에 달려가는 아이/등 뒤로는 무지개가 보일 듯 말 듯 걸려 있다”(5연) 이러한 꿈속 세계에 대해서도 현실의 물질성을 쉽게 감당하기가 어려우리라 말할 수 있다. 그 꿈은 자기위안에 머무를 따름이라는 것이다. 「청담대교를 지나며·1」과 「길 위의 잠」은 ㉠과 ㉡의 관점이 쉽게 융합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로써 『새벽에 깨어』 이후 여국현의 경로는 ㉠과 ㉡의 길항을 어떻게 봉합하며 나아가는가에 따라 결정되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는 여국현의 두 번째 시집을 대상으로 삼아 새롭게 논의하면서 확인해 나갈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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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국현의 이번 시집은 첫 시집임을 말하려는 듯‘ 새벽’과‘ 길’에 관한 시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상한 것은 이 익숙한 시어들을 접하는 순간 밀려온 당혹감이 쉬 가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 시대 우리의 삶을 은유하던 시어들이었기에 회한이 밀려든 탓일까? 아니면 지금 여기 있어야 할 것들의 부재에 따른 좌절감 같은 것일까? 현대의 삶이 전적으로 도시라는 밀폐된 공간에 놓여 있고, 바깥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연마저 도시의 부속 공간으로 인식될 뿐인 현실에서 밖을 향한 길과 다른 시간을 여는 새벽이라는 단어가 그만큼 아프게 다가온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시들은 삶의 긴장과 아픈 현실을 고스란히 껴안고 삶의 비루함마저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미 만들어진 안전한 길로 내려설 수도 있으나, 지금은 보이지 않더라도 어둠 속에서 스스로 길을 내겠다는 결기가 시의 전편에 깔려 있다. “길이 연이어 길을 내어주던 시절이 지났더라도” (「걷다, 길」) 가는 길을 주저하지 않겠다고 하는 구절에서는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의 시는 우리가 길과 새벽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아픈 자각을 불러일으킨다. - 백무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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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야 할 인연은 생의 어딘가에서 기어코 다시 만나게 되는가! 여국현과 내가 그러했다. 그가 바다의 수런거림을 날마다 식사처럼 받아먹으며 성장할 때 내가 이불 보따리 하나로 낯선 공단을 찾아들던 때부터였으리라! 툭툭 차이는 무수한 삶들의 숨결 같은 시가 되기를 갈망하며 그가 돌아왔다. 새벽 어스름 등지고 돌아오던 고깃배 위에서 흔들리던 삶을 경건하고 두렵게 끌어안은 청년이 잠든 아이의 발가락만 만지고 있어도 눈물 나는 어진 아버지가 되어 돌아왔다. 자신이 병상에 누웠던 십대 때“ 병상 옆에 술 취해 쓰러져 자던 아버지” 「(길고양이, 울다」)의 애정을 기억해내고 그 아버지를 병실에 두고 돌아 나와야 하는 중년의 아들이 되어 돌아왔다. 마을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며 겪는 서민들의 애환을 바라보는 “길 위의 잠” (「길 위의 잠」)에서는 마침내 눈에 비친 평범한 군상들을 향한 따스한 애정을 품은 길 위의 시인이 되었으니! - 정원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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