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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5왕
수수께끼의 5세기 왜국 왕
홍성화
살림출판사 2019.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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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발간사·한·일, 진정한 동아시아의 동반자로서 공존하는 길

머리말·5세기 한·일 관계와 왜 5왕

제1장 『송서』에 보이는 왜 5왕

제2장 왜의 5왕은 누구인가

제3장 왜 5왕 시대와 백제

맺음말·5세기 한·일 관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

저자 소개 1

역사학자. 배재고, 연세대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고대한일관계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 역사연구소 및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객원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역사학 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충청북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장을 지내고 충주박물관 운영자문위원장, 동아시아비교 문화연구회 회장, 예성문화연구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역사가 유통되고, 역사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대중에게 너무 늦게 전달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역사는
역사학자. 배재고, 연세대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고대한일관계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같은 대학 역사연구소 및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일본 리쓰메이칸대학교 객원연구원을 거쳐 지금은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역사학 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충청북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장을 지내고 충주박물관 운영자문위원장, 동아시아비교 문화연구회 회장, 예성문화연구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역사가 유통되고, 역사 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이 대중에게 너무 늦게 전달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역사는 대중과 호흡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교류에 작은 몫이라도 기여하는 역사가이자 실천가가 되기를 희망한다. 이 책이 오늘의 동아시아를 만들어 온 역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지은 책으로 『일본은 왜 한국역사에 집착하는가』 1, 2, 3, 『한일고대사 유적답사기』, 『사료로 읽는 우리 역사』(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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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9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08쪽 | 132g | 120*190*20mm
ISBN13
9788952240682

책 속으로

흔히들 5세기의 일본열도를 ‘왜(倭) 5왕(王)의 시대’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당시 중국 남조(南朝)에 조공 외교를 했던 찬(讚)·진(珍)·제(濟)·흥(興)·무(武)라는 다섯 명의 왜왕이 중국(中國)의정사(正史)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 p.7

어느 때보다도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일본인의 인식 속에 잠재해 있는 갈등의 시작점에는 ‘임나일본부설’이라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 자리하고 있다. --- p.9

왜 5왕은 대체 누구이고 당시 일본열도의 상황이 어떠하였으며, 당시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정세는 어떠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의 고대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데에 매우 중요한 주제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 p.9

그렇다면 『송서』에 등장하는 왜왕이 과연 일본 측 사서에 기술된 어떤 왕을 가리키고 있는 것일까? 정작 문제는 『송서』에는 왜 5왕의 이름이나 행적이 나오지만 이들 왜왕의 행적을 통해 알 수 있는 재위 연대나 왕력 등이 5세기 일본 측의 사서에 나오는 왜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 p.34

일본의 사서를 통해서든 일본의 고분을 통해서든 5세기 왜왕에 대해서는 여전히 수수께끼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고대 중국에서 쓰인 사서를 통해 일본의 고대사를 살펴보는 것이 유용한 상황이 된 것이다. 중국 사서의 중요성은 중국이라는 좀더 객관적인 눈으로 왜국의 문화와 풍습 등을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송서』에 보이는 왜 5왕의 기록이 더욱 주목되는 상황이다. --- pp.48~49

이처럼 한반도 남부의 중심 세력으로서 고구려와 대항하던 백제가 왜를 끌어들였던 시대 이후에 왜가 자신을 고구려에 대항하는 주체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은 백제와 왜 왕실이 소원한 관계에 있었던 정황과도 상당히 관련이 있을 법하다. 따라서 당시 왜왕의 한반도 남부에 대한 제군사권의 자칭이나 제수 요청은 실제 한반도 남부의 점유 및 지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오히려 이들 지역은 백제에 의해 점유되었던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 pp.76~77

7국제군사호에서 7개의 가지가 달린 칠지도의 형상이 연상된다. 백제를 중심으로 한 칠지도의 6개 가지 형상은 5세기 당시 백제 중심의 구도에 편입된 6국의 상황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p.84

역시 한·일 학계에서 왜 5왕에 대한 뜨거운 감자는 『송서』 등 중국의 사료에 등장하는 한반도 남부에 대한 제군사권의 자칭과 제수 요청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 실제 왜가 한반도 남부에 군사적 지배권을 가졌다는 흔적은 여타 사료에 보이지 않는다. 또 만약 도독제군사호가 현실적 규제력을 갖고 있었다면 왜국의 안동장군(安東將軍)보다 상위인 진동장군(鎭東將軍)을 받은 백제에 대해 왜국이 제군사호(諸軍事號)를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 p.86

결국 도독제군사호를 자칭하고 제수했던 왜왕의 인식은 원래 고구려에 대한 패배 의식에서 나온 백제의 인식이었으며, 왜국이 백제와 소원한 관계 속에서 자신들이 국제적으로 백제나 고구려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어하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따라서 도독제군사호를 근거로 하여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까지 군사적 지배권을 가진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일본 학계의 견해는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중심주의의 인식체계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식이었던 셈이다.

--- pp.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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