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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uel Syju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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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신은 뉴욕 허드슨 강을 떠다니다가 중국계 어부의 낚시 바늘에 걸렸다. 둔기에 심하게 맞은 것 같은 두 팔이 첫새벽 어스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조국, 필리핀의 한 블로그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 같다고 떠들었다. 물론 비아냥거리는 얘기다. 너덜너덜한 줄무늬 팬티와 명품 에르메나질도 제냐 바지는 양 발목까지 벗겨져 있었다. 구두는 두 짝 다 현장에 없었다. 넓은 이마에는 쇠지레나 부두 말뚝 아니면 얼어붙은 강의 얼음덩어리에 세게 부딪힌 듯 핏자국이 선명했다.
그날 오후 나는 쨍한 추위 속에서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돌아가신 스승의 아파트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아파트에는 경찰이 노란색 접근금지 테이프를 붙여놓았다. 꿈이라도 꾸는 기분이었다. 벌써부터 이런저런 소문이 돌았다. 뉴욕 경찰이 들어가 보니 집 안이 난장판이었다느니, 사복형사들이 증거물 백에 이상한 물품을 잔뜩 채워 가지고 나왔다느니, 이웃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밤중에 고함이 여러 차례 들렸다느니 말이 많았다. 이웃집 노파는 자기네 고양이가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나오려 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녀석이 검은 고양이라는 점을 노파는 강조했다.---pp.8~9 나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남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위대한 ‘컴백’은 완전히 좌절됐다. 그에게 명성을 되돌려줄 걸작은 어찌된 영문인지 사라져버렸고, 그로 말미암아 벌어지게 될 엄청난 논쟁은 그의 관 뚜껑 속에 묻히고 말았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뒤에 남은 사람들이 물려받은 잡동사니들이었다. 상자에 담다 만 자료들과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 상자들, 평생 모은 자료들은 본의 아니게 월요일 아침 분리수거 때 내버릴 쓰레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나는 그의 아파트를 뒤져 『불타는 다리』 원고를 찾았다. 나는 원고가 진짜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타이핑을 해가며 원고를 작성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p.12 그를 만난 것은 뉴욕에 도착한 날 아침, 밸런타인데이 전날이었다. 나는 결강한 동안 학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전해준다는 핑계로 급히 그의 아파트를 찾았다. 그는 서재에 앉아 있었다. 몰골은 말이 아니었지만 환한 표정으로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기관총 소리 같았다. 그는 푹 젖은 바롱을 갈아입을 생각조차 없었다. 옆에는 어제 자 필리핀 선의 부고ㆍ출생난이 펼쳐져 있었다. 필리핀 선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인턴의 실수로 인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미리 작성해 둔 살바도르의 부음 기사가 나간 것이라는 식으로 정정 보도를 올렸지만, 저들의 흐뭇한 낄낄거림이 필리핀의 무역풍을 타고 묻어오는 듯했다. 이런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몰라 나는 그저 잘 다녀오셨느냐고 했다. 그런데 그 질문이 그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크리스핀은 밝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마닐라에선 죽은 거지. 난 이제 더 잃을 게 없어.” 그게 그가 죽기 전 두 번째로 본 만남이었다. 이후 바로 찾아온 침묵은 너무 잔인했다. ---p.32 나 자신은 크리스핀이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몰랐다. 그가 가버릴 때까지는. 우리 롤로(할아버지-옮긴이), 즉 그레이프스는 죽은 아버지를 대신하기에는 너무 무뚝뚝했다. 할아버지들은 그런 경우가 많다. 집무실에 계신 할아버지를 유리문으로 들여다보면 유령처럼 어슴푸레한 그림자로 보였다.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거나 텔렉스가 들어오면 찢어서 읽곤 했다. 그러다가 점심때가 되면 탁자로 와서 나와 농담을 주고받았다. 할아버지의 농담은 늘 억지춘향식이어서 썰렁했다. 내가 그런 얘기를 듣고 웃은 것은 뭔가 관계를 터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스스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한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미 당신들의 자식들을 다 키웠다. 어떤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자식농사가 잘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여섯이나 더 떠안게 된 것이다. 마닐라에서 고아가 된 아이들은 몽땅 배를 타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는 밴쿠버로 떠밀려오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찍 은퇴해서 편안한 노후를 보내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이제 겨우 외국 생활의 맛을 알게 됐는데 말이다. ---pp.4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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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고민하게 만들” 신예작가, 미겔 시후코
사실과 진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큐브처럼 놀라운 시공간을 창조해내다 데뷔작으로 필리핀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팔랑카문학상(Palanca Awards)을 수상하고, 신경숙 작가가 수상하며 우리에게도 친숙한 맨아시아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을 수상한 떠오르는 신예, 미겔 시후코. 첫 소설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그는 『일루스트라도』에서 사실과 진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큐브처럼 입체적이고 정교한 구성을 갖춘 소설로 놀라운 세계를 창조했다. 데뷔작으로는 이례적으로 전 세계 15개국에서 이 소설이 출간되었다. 단 한 편을 세상에 내놓았을 뿐이지만, 세계의 유력 언론들은 “언젠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고민하게 만들 작가”(The Guardian), “마법의 지팡이를 지닌 작가”(The Washington Post)로 평가하며 벌써부터 작가의 다음 행보를 눈여겨보고 있다. 뉴욕에서 의문스럽게 죽은 필리핀 출신 작가, 크리스핀 살바도르. 죽음과 더불어 그가 조국 필리핀의 권력을 쥔 소수 가문들의 범죄를 낱낱이 밝힐 작품을 집필 중이라던 원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의 친구이자 제자인 젊은 작가 ‘미겔 시후코’는 스승의 인생을 추적하기로 한다. 주인공인 젊은 작가의 내러티브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미스터리 형식을 차용하는 한편, 주인공을 작가의 이름과 똑같이 설정한다. 작가는 두 명의 화자를 배치하고, 일인칭과 삼인칭으로 관점을 나누고, 작가의 서술이 아닌 언론과의 인터뷰, 보도기사, 소설 속의 소설 등 메타픽션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와 기법으로 소설을 전개해간다. 독자는 미궁의 사건을 추적하는 한편으로 작가가 배열한 다채로운 소설적 장치를 경험하며 퍼즐을 맞추듯 사건의 개연성을 예측하며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작가가 펼쳐놓는 이야기는 한 개인이 겪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스페인의 식민통치시대부터 독립투쟁, 2차 세계대전, 독재화 시대, 피플파워 혁명 등 150여 년 동안 격동의 시기를 거친 필리핀의 근현대가 담겨 있다. 두 화자의 개인적 고민과 현재를 축으로 필리핀 근현대사의 굴곡을 그려낸다. 필리핀 출신의 자발적 망명작가의 죽음이 불러낸 기이한 여행! ‘찬란한 디스토피아’, 마닐라에서 과연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 2002년 어느 겨울 날 새벽, 뉴욕 허드슨 강에서 필리핀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컬럼비아 대학 교수인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시신이 떠오른다. 경찰이 자살로 단정하지만 그의 제자이자 필리핀의 바콜로드 출신으로 고향까지 같은 젊은 작가 미겔 시후코는 그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다. 크리스핀은 몇 달 전부터 미겔에게 『불타는 강』이라는 소설을 집필 중인데 곧 출간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두었다. 그 소설로 필리핀을 좌지우지하는 극소수 가문들의 범죄와 비리를 폭로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던 참이었다. 미겔은 크리스핀의 삶을 전기로 남기기로 마음먹고, 그의 인생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향한다. 작가는 미겔의 관점에서만 이야기를 전개하지 않는다. 미겔의 시공간적 움직임에 따라 다양한 죽은 크리스핀 살바도르와 관련된 정보들을 풀어놓는다. 그가 남긴 소설, 에세이, 언론과의 인터뷰는 물론 뉴스기사, 블로거들의 반응 등이 차례대로 나타난다. 작가가 만들어낸 이러한 장치는 마치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듯 연출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주며 독자가 죽은 크리스핀 살바도르의 삶을 입체적으로 살펴보게 한다. 더불어 크리스핀이 남긴 소설을 통해 필리핀의 과거와 현재를 목도하게 된다. 누아르,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쓴 크리스핀의 소설 중에는 가문의 4대를 거슬러 오르는 역사소설과 함께 살바도르 가문의 내력이 담은 자전적 회고록이 있다. 미겔은 크리스핀의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서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또한 죽은 스승의 사생활과 관련된 비밀을 알게 되고, 그럴수록 그가 집필 중인 크리스핀의 전기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점차 크리스핀의 삶에서 자기의 모습이 희미하게 투영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겔이 필리핀으로 떠나기로 결심한 데는 의문투성이인 스승의 죽음을 밝히려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사실 그의 무의식중에는 필리핀에서 살고 있는 가족들과의 청산하지 못한 개인적인 문제도 한몫을 했다. 이 작품에서 필리핀, 특히 마닐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마닐라는 역사적으로 스페인의 통치에서부터 미국과 일본의 점령시기를 거쳐 독립의 기쁨과 독재정권에 신음하다 다시 민주화를 이루어낸 필리핀의 수도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조리한 역사의 잔재는 켜켜이 쌓여 모순이 정의를 씻어버리는, 디스토피아가 되어버렸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와 거기서 파생한 권력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적 성취욕만큼이나 누구보다 정의가 뿌리내리길 염원한 크리스핀이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이 때문이다. 작가는 크리스핀을 배척하는 필리핀의 문단을 디스토피아의 권력층으로 상징한다. 죽은 크리스핀의 영광과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 마닐라를 젊은 미겔이 찾는 것은 마치 디스토피아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미겔은 수수께끼의 단초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인물을 찾기 위한 여정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는 묵직한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전혀 무겁지 않은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현란한 문학적 기교와 그로테스크한 재치는 책장을 덮는 끝까지 흥미를 유발하고 인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해낸다. 마무리 또한 반전을 통해 독자 스스로에게 이야기의 완결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세계적 유명 언론사와 여러 나라의 독자들이 미겔 시후코의 다음 작품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언론의 서평 놀라운 흡인력을 지닌 소설. 언젠가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를 고민하게 만들 작가_The Guardian 사실과 진실, 현실과 상상으로 직조해낸 놀라운 작품. 미겔 시후코는 필리핀의 과거와 현재를 상징하는 마닐라를 마력을 지닌 디스토피아적 블랙홀로 창조해냈다._Times Literary Supplement 문학적 기교와 풍자 어린 유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완숙한 필력. 30대 초반의 작가는 마법사의 지팡을 가지고 있다_The Washington Post 작품 속에 녹아든 상상력과 재치가 대가를 예감케 한다. 32세의 신인이 이런 작품을 쓰다니, 필리핀을 넘어서는 문학적 이정표가 될 것이다_Booklist 미스터리와 사회ㆍ정치 평론을 융합한 놀라운 역사소설_Library Journa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