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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Sanchez Pin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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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책도 땔감으로 삼았다. 종이는 불길이 오래 가진 않지만 아주 잘 탄다. 폭약의 효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샤토브리앙이여 안녕! 괴테여 안녕! 아리스토텔레스, 릴케, 스티븐슨이여 안녕! 마르크스, 라포르그, 생시몽이여 안녕! 밀턴, 볼테르, 루소, 공고라, 그리고 세르반테스여 안녕! 존경 받는 내 소중한 친구들이지만 예술이 필요보다 앞설 수는 없다. 아무리 그래야 당신들은 말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 드라마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장작더미와 책을 쌓아 올리고, 석유를 끼얹고, 나중에 쓸 땔감으로 책들을 모아 묶음을 만들면서 나는 한 사람의 고독한 삶, 그러니까 내 생명이 모든 인류의 천재, 철학자, 문인들의 작품보다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 pp.57~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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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리라. 그녀와 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멀리 있었다. 그녀는 바다 속 존재들에 속해 있었다. 그녀의 세계, 일상생활, 그녀가 살아가는 원리를 생각할 때마다 내 상상력은 벽에 부닥쳤다. 그녀의 갈등을, 그녀의 좌절감과 패배감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서 그녀가 자기 종족을 떠나 등대로 숨어들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으리라. 아일랜드 탈영병이 여기까지 온 이유를 그녀가 결코 알 수 없듯이.
--- p.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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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1920년대. 자신을 장년보다는 청년에 더 가까운 남자라고 소개한 화자가 배를 타고 남극 근처의 외딴 섬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1년 간 홀로 기상관으로 근무해야 한다. 남자는 원래 아일랜드 독립운동가였다. 조국 독립 후에도 폭력이 사라지지 않는 세상에 환멸을 느낀 그는 사람들을 피해 그곳으로 지원해 간 것이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섬. 그런데 교대해야 할 전임 기상관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유일한 이웃인 등대지기는 남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그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는 정말 등대지기일까?
섬에서의 첫날 밤.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진다. 미지의 괴물들이 나타나 기상관 사택을 습격한 것이다. 남자는 괴물들에 맞서 싸우며 살기 위해 발버둥 친다.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괴물들이 사라지자 남자는 이제 생존본능에 따라 방어책을 세운다. 그때 찾아온 등대지기. 그는 괴물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섬을 떠나지 않았고, 그 사실을 남자에게 말해주지도 않았다. 악마의 섬에 남은 두 남자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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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놀라게 한 변방의 소설 - 『차가운 피부』의 세계적 성공은 문학적 사건!
인간의 고독이란 무엇인가? 폭력성이란 무엇인가? 작가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세상 끝으로 눈을 돌린다. 그가 내세우는 인물은 고작 남자 둘. 그 외는 사람도 아닌 미지의 생명체다. 『차가운 피부』는 외딴섬을 배경으로 공상과학 공포극처럼 펼쳐진다. 세 캐릭터가 벌이는 생존을 위한 투쟁은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고찰로 전이되며 기묘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바르셀로나 출신 피뇰이 카탈루냐어로 『차가운 피부』를 발표한 것을 사건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적상과 입소문을 통해 카탈루냐의 소설이 전 세계 31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고루한 세계문학 판을 뒤흔든 대사건이다. 첫 소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인간의 원초적 감정인 두려움, 미움, 사랑을 능숙한 화술로 전개한 피뇰. 『차가운 피부』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131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지금까지 20만 부 이상 팔렸다. 러시아에서는 단 6주 만에 15만 부가 팔리기도 했다. 영미권에서는 2만 부 이상 팔렸다. 스페인에서는 3만 부가 팔렸는데, 이는 카탈루냐 문학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태도로 볼 때 아주 예외적인 경우다. 그 밖에 일본, 프랑스 등의 여러 나라에서도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이런 결과는 한마디로 지역과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은 문학적 대사건이다. 인간 내면에 감춰진 기괴함과 폭력성을 탐험하다! 그렇다고 피뇰의 소설이 특정 지역에 국한된 정서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고국을 등진 화자는 ‘나’로 묘사될 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다. 특별히 카탈루냐적 정서에 호소하지도 않는다(화자는 아일랜드 사람이고, 또 다른 등장인물도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오히려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어들인 것은 초超시간성과 보편성이다. 독자들은 극한 상황에 처한 주인공이 살기 위해 벌이는 사투를 통해 폭력의 원형을 보고, 결코 가까워질 수 없는 사랑 앞에선 소통 불가능의 절망을 경험한다. 『차가운 피부』의 또 다른 미덕은 독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손에 잡으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흥미로운 대중소설도 받아들일 수도 있고, 심오한 주제를 다룬 철학적 우화로도, 고전의 향기가 느껴지는 정통문학으로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식인 괴물들이 떼로 나오는 B급 영화의 원작소설처럼 읽을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보든 이 소설이 탁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