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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카민스키
서평ㅣ 섬세한 풍자로 예술 세계를 꾸짖다 |
Daniel Kehl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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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상보다 훨씬 체구가 작았다. 옛날 사진 속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왜소했다. 스웨터 차림에 검은 색안경을 쓴 그는 한 팔로 미리암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팔은 흰색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갈색 피부는 가죽처럼 주름이 잡혔고, 뺨이 축 늘어진 얼굴에 비해 손은 지나치게 컸다. 머리카락은 잔뜩 헝클어져 있었다. 코르덴바지에 오른쪽 끈이 풀린 실내화를 신은 모습. 왠지 생경한 느낌이었다. 미리암이 그를 의자로 안내했다. 그는 팔걸이를 더듬어 의자에 앉았다. 미리암이 선 채로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 pp.25~26
“그분은 아직 살아 있다니까요.” “누구?” “테레제 말입니다. 과부가 됐지만, 아직 살아 있어요. 북쪽 해변에. 그분이 살고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카민스키는 대답하지 않고 손을 위로 쳐들어 이마를 문지르더니 다시 밑으로 떨어트렸다.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그가 이마를 찌푸렸다. 나는 녹음기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켜져 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녹음되고 있을 것이다. (……) “진실을 알고 싶지 않으세요?” 그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제 내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런 일은 생각하지 못했겠지. 당신은 이 세바스티안 쵤너를 과소평가한 거라고! 하지만 왠지 초조했다.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창가로 가서 블라인드 틈새로 밖을 내다보았다. 매 순간 계곡의 불빛이 점점 더 뚜렷해졌다. 관목 숲이 구리에 음각을 새긴 것처럼 황혼 속에 둥글게 펼쳐져 있다. “다음 주에 그분을 찾아갈 겁니다. 그러면 그분께…….” “나는 비행기를 못 타.” 그가 말했다. “그게 아닙니다.” 내가 달래듯이 말했다. 그는 지금 심한 착란상태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집에 계시면 됩니다. 아무 문제 없습니다.” “침대 옆에 약이 있어.” “잘됐군요.” “멍청하기는.” 그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 약을 챙기란 말이야.” 나는 그를 응시했다. “챙기라고요?” “차를 타고 갈 거야.” “설마 진심은 아니시겠지요!” “왜 안 된다는 거지?” (……) “전화하지 않을 거야. 이 기회를 놓칠 거야?” 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지금까지 만사를 내 손아귀에 넣고 조정해 오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그것들이 내 손아귀를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그의 말이 옳다. 우리는 이틀 동안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그와 함께한다는 것은 기대하지 못했다. 어쩌면 알고 싶었던 모든 것을 그에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내 책은 오랫동안 원천자료가 되어 대학생들과 예술사가들의 필독서가 될 것이다. “묘한 일이군.” 그가 말했다. “내 인생에 당신 같은 사람이 끼어들다니. 기묘하고 불쾌한 일이야.” --- pp.122~125 카민스키와 이야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는 언제부터 눈병을 앓게 됐을까? 왜 결혼생활을 유지하지 못했을까? 광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미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녹음해 둔 터였다. 하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가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다. 내 책은 그가 죽기 전에 출간되어서도 안 되고, 죽은 다음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출간되어서도 안 된다. 반드시 죽은 직후라야 한다. 그래야만 그가 관심의 초점이 될 수 있다. 나는 텔레비전 프로에 초대되어 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화면 하단에는 내 이름과 카민스키의 전기 작가라는 타이틀이 자막으로 뜰 것이다. 그리고 나는 대형 미술잡지사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 pp.47~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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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켈만을 세계적인 작가로 등극시킨 『나와 카민스키』
“나는 독일 역사의 부채에서 자유롭다. 내겐 새로운 문학을 할 권리가 있다.”(국내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주로 엄숙한 주제를 다루었던 기존의 독일문학과 결별을 선언했던 젊은 작가, 다니엘 켈만. 그는 형식이나 주제의식에 얽매이지 않고 이야기가 지닌 원초적인 즐거움을 추구해왔다. 캉디드 문학상(2005), 콘라트 아데나우어기금 문학상, 하이미토-폰-도데러 상, 클라이스트 상(2006), 벨트 문학상(2007) 등 저명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 또한 인정받았다. 엄숙하고 고상한 세계를 살짝 비틀어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켈만의 소설들은 출간할 때마다 독자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그러한 반응은 독일을 넘어 세계 출판시장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독자들과 평단에 각인시킨 『나와 카민스키』, 출간 이후 35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세계를 재다』로 그는 세계적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특히 『나와 카민스키』는 그가 전 세계의 독자들에게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고, 인정을 받은 첫 작품이다. 이 소설은 독일에서 출간된 즉시 미국,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이탈리아 등 세계 20여 개국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주제를 관통하는 밀도 높은 서술기법, 속고 속이는 등장인물들 사이의 아이러니, 마지막까지 독자를 사로잡는 유쾌한 이야기의 힘은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으며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등극시켰다. ‘감성’이 배어나는 섬세하고 깔끔한 풍자 무명의 젊은 예술사가 세바스티안 쵤너는 세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화가 마누엘 카민스키를 찾아간다. 마티스의 제자이자 피카소와 친구였던 카민스키는 한때 명성이 자자했던 초현실주의 화가이다. 쵤너는 그의 전기를 써두었다가 사후에 발표해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는 야심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그의 계획은 카민스키의 집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삐걱거린다. 카민스키는 자신의 전기를 쓰려는 쵤너를 쌀쌀맞고 퉁명스럽게 대한다. 게다가 그의 딸 미리암은 쵤너가 아버지에게 접근하려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애를 쓴다. “일은 저하고 하시면 됩니다.” 미리암이 말했다. “아버지는 좀 쉬셔야 해요.” “난 휴식 따윈 필요 없어.” 카민스키가 말했다. 그녀가 한쪽 손을 카민스키의 어깨 위에 얹으며 미소를 지었다. 아버지를 제압하려는 듯한 웃음이었다. “의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떠한 도움이라도 감사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인터뷰 대상은 아버님이십니다. 원천 자료 자체이시니까요.” “나는 원천 자료 그 자체야.” 그가 따라 했다. 나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었다. 휴식이라고? 나도 휴식이 필요하다. 누구나 휴식이 필요하다. 웃기고 있군!_27~28쪽 과거를 캐내려는 쵤너, 그를 잔뜩 경계하는 미리암, 그리고 전기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카민스키. 복잡한 상황의 고리들은 인물의 표정과 행동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독자는 작가가 그려낸 주인공 쵤너에게 호감을 느끼기 어렵다. 그는 윤리의식이 없고, 오직 카민스키의 삶을 이용해 명성을 얻을 야망만 가득하다. 이처럼 문제가 많은 주인공과 대적하는 인물로 작가는 늙었지만,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간교한 카민스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검은 안경 속에 표정을 감춘 카민스키는 의뭉스럽기만 하다. 시력이 정상인지 아닌지조차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는 간혹 정곡을 찌르는 언변으로 쵤너를 당황하게 한다. 하지만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옛 연인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차츰 동요하는 낯빛을 띤다. 두 사람 사이의 심리적인 긴장감은 정교한 추리소설처럼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이어지며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는다. 작가는 주인공인 쵤너를 비난하거나 단죄하는 법 없이 단순한 웃음거리로 전락시킨다. 쵤너는 화자이자 풍자의 대상이다. 이러한 주인공의 관점(1인칭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서술방식은 색다른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작가는 개입을 배제한 채 정제된 언어로 섬세한 익살을 동원한다. 인물과 인물, 사건과 사건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거나 상충하는 과정을 전개해나간다. 이러한 기법은 소설의 날카로움과 깊이를 더하며 마지막에는 에스프리가 짙게 배어나는 반전을 선사한다. 예술과 명성, 한낱 봄바람 같은 생의 거짓말 이 소설은 시종일관 미디어와 저널리스트를 빈정거리며, 위선적인 예술계의 이면을 조소한다. 작가는 “이 소설은 예술 산업의 적나라한 실상과 예술가, 비평가, 콜렉터의 모습을 그린 나의 첫 번째 시도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는 ‘예술가의 삶’에 기생하려는 쵤너처럼 현대의 과열된 문화예술에 목숨을 건 사람들을 보여주는가 하면, 예술가의 전기가 얼마나 허구적일 수 있는가를 과감하게 보여준다. 또 현대인의 기억 속에서 작품이 어떻게 사라지는가도 보여준다. 「졸음에 겨운 산책객의 생각」은 오로지 리밍 때문에 초현실주의자들의 전시회에 받아들여졌다가 클라에스 올덴부르크의 눈에 띄게 된다. 2년 후 올덴부르크의 주선으로 카민스키의 졸작 중 하나인 「성 토마스의 물음」이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 전시된다. 이 제목에 ‘시력을 잃은 화가의 그림’이라는 부제가 덧붙여졌고, 그 옆에 검은 안경을 쓴 카민스키의 사진이 함께 전시되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카민스키는 분노에 치를 떨며 2주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열병을 앓았다. 병석에서 일어났을 때 그는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 눈이 멀었다는 소문 때문에 카민스키의 그림들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카민스키가 자신은 결코 눈이 먼 게 아니라고 밝히고, 사람들도 그의 말을 받아들였지만 유명세만큼은 돌이킬 수가 없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이 작품전시회를 열었고 그림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_49~50쪽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인생이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갑자기 모든 게 사라져 버렸어. 예술은 아무 의미도 없어. 모든 건 그저 환상일 뿐이야.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살아가는 거지.”_213쪽 한때 카민스키의 그림이 대중에게 유행했던 것은 그림의 특색보다 눈이 멀었다는 배경에 휩쓸려 있었던 것이며 카민스키 또한 이러한 유행의 속성과 허망함을 여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예술시장의 신화는 한낱 봄날의 바람 같은 생의 거짓말일 뿐이다. 예술가와 작품은 산업적 가치를 띤 도구로 전락된다. 한 시대를 풍미하는 예술 형식의 모호함은 늘 잊히게 마련이다. 『나와 카민스키』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이들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예술계의 위선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 특히 갤러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발을 딛고 선 강 표면의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불안할 것이다. 이 소설은 그만큼 잔인하다. 예술이란 소재를 매개로 희극적인 반전을 거쳐 인간존재에 대한 지독한 인식으로 끝을 맺는다. 세계 언론의 평가 ★독일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의 ‘냉혹한 블랙코미디’_더 가디언 ★더 이상은 없다. 다니엘 켈만 소설 가운데 단연 최고_노이에스 도이칠란드 ★예술과 명성 그리고 진실이 교차하는 작품_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놀라운 결말로 이어진다_디 프레세 ★살아 움직이는 언어들. 페이지를 넘길수록 가슴을 압박한다_선데이 타임스 ★미학적인 섬세함과 소설의 모티브를 끝까지 살려낸 걸작_디 벨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