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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신미균
파란 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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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업 - 11
묵시록 - 12
봄 - 13
폭탄 돌리기 - 14
꽃청춘 이모티콘 - 16
쥐약 - 19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 20
접착력 떨어진 포스트잇 - 22
은밀한 스케치 - 24
공 - 26
홀아비바람꽃 - 27
무연고 쓰르라미 - 28
추억 - 30
로그인 - 32
의자와 자두나무 - 33
결혼 - 34

제2부
피크닉 - 39
비장의 무기 - 40
착한, 당신 - 42
임종 - 43
The Sixth Sense - 44
참선 - 46
돌 - 47
불면 - 48
깽깽매미 - 50
타임 서비스 쿠폰 - 52
싱크홀 - 54
오! 해피 데이 - 55
강적들 - 56
뜨거운 수프를 후후 부는 사이 - 58
기차놀이 - 60
사랑 아니고 사탕 - 62
절벽 - 64

제3부
오프라인 전투 - 67
탑 - 68
모노드라마 - 70
가족 - 72
펄럭이는 혀 - 74
매미목 노린재과 - 76
상류사회 - 78
아웃사이더 - 80
좀비들 - 82
사춘기 - 84
허수아비 - 86
스토커 1 - 87
스토커 2 - 88
프라이드치킨 - 90
어떤 바다 - 92
인연 - 93
사랑과 영혼 - 94

제4부
아파트 - 99
졸방제비꽃 - 100
백수 1 - 101
백수 2 - 102
기린 - 104
파리 - 105
이별 - 106
색즉시공 - 108
공즉시색 - 109
댓글 - 110
러시안룰렛 - 112
윤회 - 113
고문 - 114
바위 - 116
삿갓 김 - 118
구석 - 119
수행 - 120

해설 김영범 통각(痛覺)으로서의 웃음, 이 우릿한 육감(六感) - 121

저자 소개 1

시인은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996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맨홀과 토마토케첩』, 『웃는 나무』, 『웃기는 짬뽕』을 썼다.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은 신미균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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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3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37쪽 | 214g | 128*208*10mm
ISBN13
9791187756644

책 속으로

좁은 골목
어기적어기적
폐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가

임시 번호판도 떼지 않은
새까만 외제 차의 옆구리를
쓰윽
긁으며 지나간다

차 주인이
울그락불그락
펄펄 뛰며
고함을 지른다

할머니가 느릿느릿
허리를 펴고
뒤돌아서

무표정하게

차 주인 어깨 너머

나뭇가지의
새를
본다
--- 「비장의 무기」 중에서

멋대로 살겠다고
집 나갔던 언니가 모처럼 들어왔습니다

막무가내로 돈 달라고 망치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
시작합니다

옛날에는 엄마 가슴이 석고처럼
부드러워서
못이 쑥쑥 잘 들어갔는데
이제는 콘크리트 벽이 되었나 봅니다
못이 튕겨져 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못대가리에서 불꽃이 튀는 소리도 들립니다
언니가 못을 박다 자기 손을 내리쳤나 봅니다
아프다고 펄펄 뛰는 소리도 들립니다
콘크리트에 박힌 못은 빼기 힘듭니다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그렇다고 밥만 축내는 내가 달려들어
언니를 말리기도 힘듭니다
엄마 가슴에 바람이 부딪히나 봅니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도 들립니다
잠시 후, 전기드릴 소리가 납니다
망치로 안 되니까 더 강력한 걸 가져왔나 봅니다
전기드릴 때문에 집이 흔들립니다

참지 못한 내가
전원 스위치를 내립니다

갑자기, 나를 발견한 엄마와 언니가 달려들어
대못 나사못 콘크리트못
닥치는 대로 나에게 박아 대기 시작합니다

내 가슴은 합판처럼 얇아서
각종 못이 쉽게 잘 박힙니다
엄마와 언니는 있는 대로 못을 박더니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아픈 것은 둘째 치고
밥값이라도 한 것 같아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내일 아침 엄마는 빨간약
언니는 반창고를 들고 몰래 오다가
내 방 앞에서 마주칠 게 뻔합니다

구멍 뚫린 가슴에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옵니다
--- 「꽃청춘 이모티콘」 중에서

네 그림자 속에
내 그림자

큰 나무 그림자 속에
네 그림자

직업소개소 건물 그림자 속에
너의 그림자 속에
나의 그림자

너도 없고
나도 없다

구름 그림자 속에
직업소개소 건물 그림자 속에
너의 그림자 속에
나의 그림자

직업소개소 건물도 없고
너도 없고
나도 없다

너의 그림자 밖에 나의 그림자 밖에
나무 그림자 밖에 직업소개소 건물 그림자 밖에

너와 나와 나무와 건물과 구름이

그림자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서로의 어깨를 잡고
빈 하늘을 지나간다

--- 「기차놀이」 중에서

추천평

신미균의 시는 재밌다. 그런데 또한 슬프다. 요컨대 웃프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미균의 시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게 만든다. 물론 신미균 시의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러한 난처는 망설임 없이 모순과 역설과 자기부정으로 구성된 바라고 금방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미균이 제시하는 곤혹들은 단지 수사나 기지로 마련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삶이 바로 그런 모양새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그렇게 적은 것이다. 난경은 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신미균은 이 사실을 더하거나 빼서 적당히 맞추거나 슬며시 한쪽을 편들거나 그럴듯한 깨달음 따위에 기대거나 하지 않고 다만 곧이곧대로 적확하게 쓸 뿐이다. 그래서 신미균의 시는 간명하다. 그러나 그래서 읽고 나면 불편하고 무참해진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신미균이 딱 여기까지만 쓴다는 점이다. 이는 절제가 아니라 어쩌면 초과다. 우리의 삶 자체가 요령부득의 난경이라면 그것은 부정과 극복이 아니라 긍정과 사랑의 대상이자 기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다름 아닌 시다. 그러니까 신미균은 지금 사랑을 갱신하고 있는 셈이다. “길은 처음부터 없었”다. 이 길 없음의 길에 당신이 함께하면 좋겠다. 약속하건대 당신은 그때 문득, 비로소 웃을 수 있을 것이다.
채상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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