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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SF 문학을 담다] 한국 SF 의 현재를 알리는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기억 공유로 타인을 치유하는 휴먼 SF 대상작 황모과의 『모멘트 아케이드』 와 함께 각기 개성과 결로 그린 4편의 SF를 선정했다. 무한히 확장하는 한국 SF 저변 위, 저마다의 갈래로 수렴하는 상상력의 극한을 담아낸 책. - 소설 MD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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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황모과, 「모멘트 아케이드」 작가노트 수상 소감 우수상 존 프럼, 「테세우스의 배」 작가노트 가작 유진상, 「그 이름, 찬란」 작가노트 양진, 「네 영혼의 새장」 작가노트 이지은, 「트리퍼」 작가노트 심사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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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저는 당신의 기억을 향해 걸어 들어갑니다. 당신의 감각과 감정이 리모트 리얼을 거쳐 내 안으로 들어와요. 저는 당신의 호흡과 심장박동까지 그대로 느낍니다. 지난 12년간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설레는 마음을 당신의 모멘트를 통해 체험합니다. 당신의 호흡에 내 숨을 얹고, 당신의 느긋하면서 세찬 심장박동에 내 심장의 움직임을 살포시 포개어봅니다.
--- 「모멘트 아케이드」 중에서 완벽하게 자동화된 사회를 운영하라고 중앙 AI에게 내린 명령은 철회될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인간 엔지니어들은 과도하게 유능한 AI의 처리 속도를 제한하고 절대명령을 디지털 코드 안에서 이리저리 우회하게 만들면서 인간들에게 더 많은 일거리를 제공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맹목적일 만큼 기술의 발전에 집착하던 인류가 인간다운 생존을 위해 이제까지와는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된 것이다. 더욱더 기이한 일은 그 뒤에 벌어졌다. 가장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투입되어 인공지능이 기술의 진보를 이루지 못하도록 모순적인 노력을 거듭했지만 정작 인류는 다시 자신들 손으로 기술을 진보시키려고 매달렸던 것이다. --- 「테세우스의 배」 중에서 수호자는 내게 해변을 건너 숲으로 가라고 지시했지만, 이유 모를 충동이 헬멧을 잠시만 벗으라고 속삭였다. 나는 홀리듯이 헬멧을 벗었다. 그러자 들리는 것은 폭발하듯이 환호하는 새와 벌레들의 울음소리. 내 폐는 지난 수십만 년 동안 내 조상이 그랬던 것처럼 황홀한 첫 숨을 빨아들였다. 짙은 밤 속에서 바람은 서늘했고 나는 그 서늘함에 온몸을 곤두세우면서 그 안에 생이 담겨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온몸은 전율에 차오른다.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첫 숨. 등 뒤의 바다는 어둠을 머금은 채 파도 소리를 하얗게 내며 영원히 오갔고, 하늘에서는 수천만 개의 파편이 불타오르며 우리가 돌아왔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 「그 이름, 찬란」 중에서 너한테는 보이지 않는 언니가 하나 있어. 이름은 너랑 똑같은 소윤이야. 너는 가끔 한, 소, 윤, 하면서 가깝다가도 낯설어지는 발음들을 입에 담곤 해. 그러면 언니가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아. 사실은 정말로 그러기도 해. 언제 어디서건 부드럽고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이렇게 속삭이는 거야. 소윤아, 눈이 온대. 창문 한번 열어봐. 커튼을 걷어내면 정말로 새하얀 눈발이 바깥을 뒤덮고 있지. 너는 가만히 되물어. 어떻게 알았어? 그러게, 어떻게 알았을까? 들려오는 목소리는 생각들 사이 어딘가 텅 빈 곳에서 붕 떠다니는 것만 같아. --- 「네 영혼의 새장」 중에서 무의식 깊이 눌러둔 두려움이 껍질을 깨고 올라오고 있다. 그 껍질 안에는 어리고 선한 내가 있다. 무기력하고 불안정한 나.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지점. 트리퍼링에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이 지나친 탓이리라. 나는 남자가 어떻게 행동했는지 봐야만 한다. 남자를 관찰해야 한다. 나는 엄마의 환영을 없애려고 고개를 흔든다. 인간의 기억과 섞이면 안 된다. 내 본능이 개보다 먼저 작용해서는 안 된다. 나는 지금 개다. 개여야 한다. --- 「트리퍼」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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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국 문학을 관통하는 키워드, SF
2020년에도 SF 원더는 계속 된다!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이 열린 2019년, 우리 SF는 유례없는 황금기를 누렸다. 「한겨레」 등 여러 매체가 2019년의 문학 키워드로 SF를 손꼽았다. SF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SF 무크지 『오늘의 SF』가 창간되었다. 한국과학문학상의 심사위원이기도 한 김보영 작가는 미국 하퍼콜린스 출판사와 다수의 출판 계약을 맺으며 화제를 모았다. 2회 한국과학문학상 대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초엽 작가는 ‘젊은작가상’, ‘오늘의 작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 2위에 선정되었다. 1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 수상작인 박지혜의 「코로니스를 구해줘」와 2회 가작 수상작 김혜진의 「TRS가 돌보고 있습니다」, 이루카의 「독립의 오단계」는 한국판 오리지널 SF 앤솔러지 시리즈 ‘SF8’로 드라마화 되어 MBC에서 방영 예정이다. 이렇듯 SF는 그 저변을 확장시키며 문단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은 우리 SF를 이끌어갈 새로운 기대주로 ‘황모과’의 이름을 호명했다. 소통의 가능성이 희미해지는 시대, 기꺼이 자신의 기억과 체험을 열어 우리를 감싸 안는 휴먼 SF! 황모과의 「모멘트 아케이드」에는 타인에게 마음을 기울이다가 스스로 그 기울기에 미끄러져 상처 입은 이들을 향한 작가의 애틋한 시선이 녹아있다. 황모과는 고통에 끝내 매몰되지 않는 희망에 주목하며 그 희망의 울림을 다른 이와 나누고자 한다. 소통의 가능성이 희미해지는 시대, 기꺼이 자신의 기억과 체험을 열어 타인을 받아들이고 “당신의 호흡 위에 내 숨을 얹는” 감각적인 공명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차가운 과학 기술 속에서 인간의 따뜻한 숨결이 얽히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게 된다. 「모멘트 아케이드」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이해와 함께 중반 이후의 반전이 작품 전체의 인상을 완전히 바꿔놓은 탁월한 작품”(정보라_소설가), “SF 문법에 익숙한 독자와 그렇지 않은 독자의 반응을 모두 계산에 넣은 양질의 지적 유희 그 자체”(김창규_소설가), “소설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감동’을 심사위원에게 선사한 작품”(김보영_소설가)라는 찬사를 이끌어내며 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 SF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개성적인 영토, 상상력의 극지, 다양성의 격전지로! 뿐만 아니라, 우수상을 수상한 존 프럼, 가작을 수상한 유진상과 양진, 이지은 역시 우리 SF에 선명한 자취를 남길 것을 예감케 한다. ‘복제 인간’과 ‘양자 전송’이라는 소재를 묵직한 사유와 함께 풀어낸 존 프럼의 「테세우스의 배」, ‘스페이스 오페라’ 소재에 고전 연극의 우아함을 절묘하게 결합한 유진상의 「그 이름, 찬란」, 입양된 아이가 겪는 자아의 불안을 서정적인 문체로 그려낸 「네 영혼의 새장」, 동물의 기억에 침투해 연쇄살인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고밀도 추리 스릴러, 이지은의 「트리퍼」. 이처럼 저마다 개성적이고 독특한 결을 가진 작품들은 SF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개성적인 영토, 상상력의 극지로 가는 문을 열어줄 것이다. 2019년에 열린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장편 부문 대상 1편, 중단편 부문 대상 1편과 우수상 1편, 그리고 가작 3편을 선정했다. 심사는 최종 수상작이 선정될 때까지 이름, 성별, 직업 등 모든 정보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심사위원으로 박상준(서울SF아카이브 대표), 이지용(건국대학교 학술연구교수), 김보영(소설가), 김창규(소설가), 정보라(소설가)가 참여했다. ★차가운 과학 기술 속에 녹여낸 인간의 따뜻한 숨결, SF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어떤 위로. - 「모멘트 아케이드」 황모과의 「모멘트 아케이드」는 타인의 기억을 쇼핑몰처럼 거래할 수 있는 가상 플랫폼 ‘모멘트 아케이드’를 배경으로 한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다른 이들의 기억을 닥치는 대로 대리 체험하는 것에만 몰두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인기 없는 모멘터 ‘100 day dreams’의 모멘트를 체험하면서 이전까지는 경험하지 못했던 생의 떨림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어째서 ‘100 day dreams’의 모멘트만이 그토록 강렬한 울림을 선사한 것일까? 모멘터의 진실에 다가가면서 서서히 밝혀지는 반전은 처음에는 우리를 놀라게 하고 그 다음으로는 우리를 깊이 감동시킬 것이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누군가를 위하고 싶은 곡진한 마음. 설령 그 마음이 전부 닿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누군가를 끝내 위로하려는 끈질긴 시도 그 자체에 위로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 복제’라는 화두를 넘어, 아이디어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 「테세우스의 배」 존 프럼의 「테세우스의 배」는 생체 프린팅을 이용한 양자 전송 과정에서 전송 오류로 인해 잘못 복제된 인간이 마주한 거대한 운명을 다루고 있다. 복제 인간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깨달아가는 여정을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냈다. ‘복제 인간’과 ‘양자 전송’이라는 SF에서 다소 익숙한 소재를 출발점으로 삼았으나 설정한 소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탄탄한 필력, 서사를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하는 놀라운 추진력으로 익숙함을 상쇄한다. 또한 인공지능, 노동, 종교와 같이 첨예한 화두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작가의 진중한 사유는 진보된 기술 속에서 누락되고 삭제된 인간의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를 성찰하게 한다. “정석적인 SF로 부족하지 않은 작품”(김창규_소설가), “속이 확 트이는 소설”(김보영_소설가)라는 평을 받으며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고전 연극’의 독특하면서도 절묘한 결합 - 「그 이름, 찬란」 유진상의 「그 이름, 찬란」은 주인공 유나가 우주로부터 쏟아지는 빛을 맞으며 체호프의 연극 「벚꽃 동산」의 대사를 연습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제3차 지구탈환작전을 3개월 앞두고 우주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함선 ‘아틀라스호’의 병사들은 스스로 선내 극단을 꾸리고 얼마 후 있을 공연 「벚꽃 동산」 연습에 매진한다. 힘을 모아 연극을 준비하면서 유나와 친구들은 깊은 우정을 나누게 된다. 자신의 운명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 울고 웃는, 그럼으로써 매 순간을 찬란하게 살아내는 인물들의 모습이 진한 페이소스와 감동을 자아낸다. “사람들의 운명과 연극이 꿈처럼 교차하는 장엄한 결말”(김보영_소설가)은 책을 덮는 순간, 우리를 깊은 여운에 잠기게 할 것이다. ★서늘하지만 다정한, 오직 너에게만 들리는 목소리 - 「네 영혼의 새장」 양진의 「네 영혼의 새장」에는 장애를 가진 입양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뇌 연결술이 상용화 된 시대를 배경으로, 입양아에게 원래 있던 아이의 성향을 입력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고아원에서 14년간 살았으며 한쪽 다리마저 없어 누구도 찾지 않았던 소윤은 어느 날 유복한 가정으로 입양된다.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누군가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혼란 속에 조마조마한 나날들을 보내던 소윤은 언제부턴가 ‘언니’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그것이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목소리임을 알게 된다. SF적인 장치를 통해 현실의 모순을 부각하는 작가의 시선은 서늘하지만, ‘나’에게만 들리는 언니의 목소리는 묘한 온기를 품고 있다. 섬세한 묘사와 서정적인 문체가 돋보이는 「네 영혼의 새장」은 “매우 다정한 작품”(정보라_소설가)이라는 애정 어린 평을 받으며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수상했다. ★동물의 기억에 침투하여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 - 「트리퍼」 이지은의 「트리퍼」는 이종異種간의 뇌 공유를 일컫는 ’트리퍼링’이라는 가상의 기술을 통해 동물의 뇌에 침투하여 연쇄살인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 추리 스릴러 SF이다. 10년째 발생하는 연쇄살인사건, 사건을 유일하게 목격한 건 개 한 마리뿐. 국내에 단 4명밖에 없는 1급 프로 트리퍼 주도는 ‘트리퍼링’을 통해 개의 기억에 침투하고, 그 기억 속에서 과거의 비밀과 마주하면서 범인의 정체에 한 걸음씩 다가서게 된다. 작가는 개와 함께 산책을 갔다가 실종된 여성의 실화에서 착안해 「트리퍼」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독창적인 소재와 압축적인 전개, 그리고 풍성한 묘사로 독자를 끌어당긴다.”(김보영_소설가)는 평을 받으며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가작을 수상했다. 이지은 작가는 KB창작동화제, 샘터상, 한낙원문학상 등 이미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번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을 통해 다시 한 번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