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서문 - 나는 있어 고양이
1. 코로나 블루, 블라디미르 타틀린, 알레르기 / 이수성 2. 어쩌다 고양이 / 차재민 3. 눈물 냄새를 맡는 고양이 / 우한나 4. 묘성논란: 고양이들의 생애사 / 정은영 5. 창문 / 이소요 6. 방구석과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양이 / 김화용 7. 폭력 / 이두호 8. 정신을 차려 보니 고양이굴 / 김영글 |
김영글의 다른 상품
다이애나밴드
이소요의 다른 상품
정은영의 다른 상품
차재민의 다른 상품
|
병원에서 간호사 선생님이 초유를 손가락에 찍어서 입에 톡톡 발라주면서 먹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그제서야 소리짱은 그릇에 담긴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세 가지가 충족되자 마침내 몸도 좋아지고 수술 상처도 좋아지고 있었다. 우리도 거칠지만 이것저것 배우고, 나아지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도 찾아보았다. 다만 소리짱은 눈이 안 보이니까, 그 모든 비장애 고양이들에게 맞춰진 가이드들이 지시하는 내용을 한 단계 의미화시킨 후 소리와 촉각으로 번역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 와중에 어떤 것이 잘된 번역이고 어떤 것이 잘못된 번역인지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배워야만 했다.
--- p.157, 「이두호, '폭력'」 중에서 그런데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것은 딴 게 아니라, 사슴이 나무꾼에게 귀띔했던 알쏭달쏭한 조언이었다. 아이 셋을 낳기 전까지는 절대로 선녀에게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말, 사슴은 대체 왜 그런 말을 한 걸까? 애가 둘이건 셋이건 무슨 그리 큰 차이가 있다고? 집사 9년차, 나는 이제 그 사슴 녀석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애가 둘일 때와 셋일 때는 거동에 하늘과 땅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 대신 고양이를 키워 보고서 온몸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제 몸 하나 건사하기 녹록지 않은 삶에서 생명을 셋 이상 거둔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일단 '손'의 부족이 큰 문제였다. 동물병원에 고양이들을 데려갈 때도, 이사를 할 때도, 간식을 입에 넣어 줄 때도, 셋이 궁디팡팡을 요구하며 한꺼번에 모여들 때도, 나는 팔이 두 개여서 슬픈 짐승임을 자각해야만 했다. --- p.193, 「김영글, '정신을 차려 보니 고양이굴'」 중에서 그 고양이는 다음 날로 비슷한 시간에 찾아와 나를 불렀다. 그리고 이틀 후엔 딱 봐도 형제일 것 같은 어린 고양이 둘을 데리고 나타나기에 이르렀다. 맛있는 밥 먹을 수 있는 곳 안다며 앞장서 데려온 것인지, 겁먹은 형제 고양이들은 화단 뒤에 숨어 있고 밥 좀 몇 번 먹어본 대표가 앞으로 나와 나를 불렀다. 광경이 귀엽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세 배의 사료를 듬뿍 주고 들어와 또 탐정처럼 숨을 죽이고 창 너머로 몰래 지켜보았다. 인간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사이좋게 셋이 나누어 먹고 있었다. 그렇게 용기 있는 대장이 앞장서고 두 소심한 형제가 뒤따르는 삼각 편대는 매일 놀러왔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주 무더운 8월 중순의 어느 날이었다. 뒷문을 열고 나가 줄어든 사료량을 살핀 후 화단을 둘러보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구더기가 가득 생겨 형체조차 자세히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영 고양이의 사체였고, 대장이라는 걸 직감했다. 마음을 진정하고 생각에 사로잡혔다. 동물들은 죽음이 다가왔을 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가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 p.121, 「김화용, '방구석과 세계를 연결해 주는 고양이'」 중에서 전화할 때마다 엄마가 고양이를 산에 갖다 버리면 안 되냐고 물었다. "고양이는 버렸니?" "아니." 어느덧 카카오톡 대화 화면이 '고양이는?'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그녀에게, 고양이가 집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인간이 고양이를 괴롭히는 일이자 고양이가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인 듯했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동물은 밖에서 살아야지. 그게 순리다. 야생으로 살아야 할 동물을 길들이고 식성을 바꾸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야." 어느 날 그녀는 미국 어딘가에서 죽은 아이를 부검했더니 폐에 애완동물의 털이 가득 차 있었다는 해외 뉴스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내 폐에 털이 쌓이는 상상을 멈출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톡에 도심 골목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져 총각무를 물고 가는 고양이 사진으로 답신했다. 모든 고양이가 시골에서 살고 있지 않으며 거의 모든 곳이 도시화되는 세계에서 이제 고양이가 인간과 함께 사는 것이 순리라고 써 보내고 싶었지만, 그런 설명은 쓰다가 지웠다. 그건 그녀에게 너무 복잡할 것 같았다. --- p.43, 「차재민, '어쩌다 고양이'」 중에서 |
|
표지 설명 “제호의 ‘있다’라는 단어는 존재를 드러내는 묵직한 울림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있어 절대적인 존재인 고양이들을 어설픈 그림이나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들이 남기는 무늬나 흔적 같은 징표들을 가지고 표현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종종 길에서 만나게 되는 고양이들에게 붙여주는 치즈, 삼색이 등과 같은 애칭은 대부분 그들의 무늬에서 착안한 것들입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되는 경우에도, ‘우리집은 턱시도만 둘이에요.’ ‘우리 첫째는 카오스예요.’ 하는 식으로 그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들끼리는 서로 바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어두운 색의 옷과 가방에 묻어 온 털이라든가, 여기저기 뜯겨나가기 시작한 소파와 쿠션 등... 이 존재들은 함께 사는 보호자들에게도 많은 흔적을 남깁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좀 알쏭달쏭하고 다소 의뭉스러운, 개울가의 조약돌처럼 모두가 다른 표정을 가졌지만 다 사랑스러운,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들을 연상할 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 이재민 디자이너의 컨셉 설명 중에서 |
|
8인의 미술가들이 반려묘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예상했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근사했지만 『나는 있어 고양이』는 나의 예상을 기분 좋게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이 독서를 즐겁게 만드는 건, 이 책이 고양이에 대해서 말하지만 동시에 고양이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존재와 존재 사이에 깃드는 “깊고 고요한 평화”의 황홀함을 아는 일. 부드러운 온기를 나누는 순간의 투명한 기쁨을 찬찬히 누리는 일.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다시 한 번 깨닫고 만다. 나와 온전히 다른 존재와 눈높이를 맞추며 사랑하려 애쓰는 마음은 예술을 하는 마음과 이토록이나 닮아 있다는 것을. - 백수린 (소설가)
|
|
미술 작가들. 이들은 고양이의 아름다움을 누구보다도 잘 음미할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예민한 미적 관찰력과 섬세한 사유 능력은 거저 오지 않아서, 삶은 자주 우울에 빠져들고 불규칙한 리듬으로 흔들리곤 한다. 책을 읽다보면 놀랍게도 부유하는 예술가들의 영혼을 닻처럼 붙들어주는 든든한 존재가 다름 아닌 고양이임을 깨닫게 된다. 고양이는 세간의 인식처럼 변덕스럽고 앙칼진 뮤즈가 아니라 오히려 연약하고 불안한 예술가들을 무심하게 안아주는 거대한 집 같다. 이 모두는 결국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꾸는, 고양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사랑에 대한. - 김하나 (작가 ·진행자)
|
|
침대에 엎드려 양쪽 허벅지 사이에 잠든 고양이를 끼워 넣은 채 이 문장을 써내려가고 있다. 기지개를 켜다가 무심코 다리 위에 올려진 하얀 뒷발이 혹여나 미끄러질까 숨을 최대한 조그맣게 쉬어본다. 가끔씩 살갗에 닿는 수염, 콧바람, 젤리의 간지러운 감촉에 자꾸만 눈을 지그시 감게 된다. 창문 밖에는 마침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으니 나는 아마도 머지 않아 잠에 들어버릴 것이다. 해야 할 일은 산더미이고 밤이 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우리의 시간은 멈춰있으니 어찌 되어도 괜찮다. 예전부터 분명 나의 곁을 맴돌았지만 고양이가 없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시간. ‘고양이가 있어서’ 알게 된 나의 모습 중 하나는 의외로 부질없는 시간을 좋아한다는 면이다. 네 발 달린 작은 우주는 때로는 혼을 내기도 때로는 안아주기도 하며 부모도, 친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삶의 요령과 비밀들을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인다. 고양이는 언제나 고양이였고, 앞으로도 그저 고양이일 뿐이다. 우리가 사랑에 빠진 것은 과연 ‘고양이’일까? 여덟 명의 미술가는 ‘고양이’가 아닌 ‘고양이를 통해 열렬하게 마주하고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모두 ‘고양이가 있어야만’ 존재하는 세상이다.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정말로, 그렇다. - 요나 (요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