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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통은 예술이 된다
01. 평생의 고통 속에서도 삶이여, 만세! 자기 몫의 고통을 멋지게 뚫고 지나간 프리다 칼로 02. 두려움을 바로 보는 용기가 필요해 ‘땡땡이 호박’을 그리며 고통과 두려움을 작품으로 승화한 쿠사마 야요이 03. 고정관념과 그릇된 권력을 향해 쏴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트라우마를 미술을 통해 치유한 니키 드 생팔 오늘도 그저 ‘나’로 살아갈 뿐 04.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조지아 오키프입니다 ‘꽃’을 그렸지만 꽃으로 살기를 거부한 여성 조지아 오키프 05. 아내, 엄마, 며느리가 아닌 ‘나’로 살아 ‘존 레넌’의 아내가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아간 오노 요코 06. 누군가의 연인으로만 기억되거나 잊히지 않기 위해 삶의 굴곡을 넘어 부드러움 속에 강인함으로 기억되는 마리 로랑생 07. 한 팀으로서의 부부, 가정이라는 공동체 부부이자 동료로, 서로를 지지하며 발전해 나간 소니아 들로네 08. 난 아름다워지기 위해 성형하는 게 아니다 성형수술이라는 행위 예술을 감행한 생트 오를랑 엄마, 그 깊고 무거운 존재에 대하여 09. 우리 엄마는 거미입니다 깊고 무거운 엄마라는 존재를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루이스 부르주아 10. 일하는 엄마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여성 화가가 드물던 시절 ‘워킹 맘’으로서 활동한 정찬영 11. 자식을 책임지기 위해 붓을 들었다 ‘어머니의 대지’를 캔버스에 펼친 이성자 한계를 거부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다 12. 그리고 아무도 나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주류’라는 단단한 벽에 절망하지 않고 추상 회화를 가장 먼저 탐험한 힐마 아프 클린트 13. 절망 속에 나를 버려둘 수 없다 고통 속에 짓이겨진 민중을 위한 미술가 케테 콜비츠 14. 초록 식물의 경이로운 세계를 그리다 19세기에 홀로 배를 타고 여행하며 식물을 그린 메리앤 노스 15. 억압받고 유린당한 여인들의 비상을 꿈꾸다 여성의 자유를 기원하는 마음을 화폭에 담은 정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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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로, 엄마로, 직업인으로 사는 것이 참 버겁잖아요.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많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도 많고요. 일하다 말고 옥상에 올라가 울기도 하고, 운전하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고, 화장실 거울 앞에서 시원하게 욕을 할 때도 있고 말이지요. 다들 그렇지 않으신가요?
저는 여성 미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나만 억울한 게 아니고, 나만 방황하는 것이 아니고, 나만 슬픈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다들 그렇게 살아.’라는 공허하게 들렸던 위로가 그들의 삶을 통해 실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것이 제게 참 위안을 주더라고요. 또한 여성 미술가들이 비록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끝내 너무나도 멋진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 자부심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꼈어요. ‘우리 언니’가 세상을 향해 ‘강펀치’를 날린 느낌이랄까요. 그것이 제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지요. --- p.6, 「‘여자의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에」 중에서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았던 프리다 칼로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의 제목은 아이러니하게도 〈삶이여, 만세〉입니다. 숨을 거두기 8일 전에 완성한 작품이에요. 일곱 개의 수박이 그려진, 일종의 정물화지요. 빨간 속살을 드러낸 탐스러운 수박이 찬란합니다. 맨 앞에 그려진 수박에는 ‘Viva La Vida’라고 쓰여 있어요. 스페인어로 ‘삶이여, 만세’라는 뜻이에요. 그 바로 아래 프리다 칼로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어느 누가 봐도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고 인정할 만한 프리다 칼로가 인생의 마지막 그림에 꾹꾹 새겨 넣은 문구가 생에 대한 찬미라니요. 그의 삶의 여정을 아는 이들은 “삶이여, 만세!”라는 마지막 외침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 우리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사랑하고, 그의 삶이 자꾸 회자되는 이유는 아마도 제 몫의 고통을 강하고 멋지게 뚫고 지나간 프리다를 보며, 내 인생의 몫을 살아 낼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어서일 겁니다. --- p.27~29, 「01. 프리다 칼로」 중에서 쿠사마는 건강에 발목이 잡혀 전성기를 뒤로하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1973년, 그가 마흔다섯 살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의 정확한 병명은 ‘이인증(離人症)’입니다.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느낌이라고 쿠사마는 설명합니다. 땡땡이 무늬가 천장에 보이다가 벽과 땅으로 퍼지고, 몸까지 뒤덮어 자신이 사라지는 환각, 더불어 몸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 거기에 이상한 소리까지 종종 들리는 것이 그가 겪는 증상입니다. … 그러나 쿠사마는 자신의 병을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정신 질환이 불러오는 환각을 매일 반복해서 재생산했지요. 땡땡이와 그물로 캔버스를 가득 메우면서 고통의 실체를 직면하는 것이지요. 그는 “병을 다스리는 유일한 방법은 계속 작품을 만드는 일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정신 질환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쿠사마 야요이 작품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트레이드마크인 ‘땡땡이 호박’은 이인증이라는 정신 질환을 마주하고 작품을 통해 극복해 내려 했던 쿠사마의 태도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 p.43, 「02. 쿠사마 야요이」 중에서 이미 누구의 아내,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엄마로 살고 있는 이들은 잘 알고 있지요. ‘나’로 살아가는 게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이 어려운 일을 멋지게 해낸 사람이 있습니다. 오노 요코입니다. 대중에게는 락의 전설 존 레넌의 두 번째 부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 오노 요코는 미술과 음악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친 일본계 전위예술가예요. 세상은 한때 오노 요코를 ‘마녀’라 불렀습니다. 요코는 비틀스를 해체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거나, 존 레넌을 해괴한 전위예술의 길로 이끌었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지요. 심지어 요코가 존 레넌의 돈을 노리고 접근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나 악의에 찬 헛소문이지만, 한번 박힌 부정적인 이미지는 끈질기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에게 덧씌워진 이미지가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노 요코는 마녀가 아니에요. 그는 세상이 정한 ‘아내’와 ‘엄마’의 역할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았으며, 동시에 미술과 음악의 두 영역에서 전례 없는 작품 세계를 구축했던 멋진 예술가입니다. --- p.82~83, 「05. 오노 요코」 중에서 로랑생의 작품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은 작품을 평가하는 우리의 기준을 다시 생각해 보게끔 합니다. 혹시 지금껏 우리는 크고, 강하고, 묵직하고, 심각한 것들만 위대하다고 평가해 온 것은 아닌지요? 혹은 마리 로랑생이 ‘여성’이기 때문에 파스텔 톤으로 인물을 그렸고, 그런 그림에는 ‘깊이가 없다’고 평가절하한 것은 아닐까요? 마리 로랑생과 동시대에 활동했고 똑같이 파스텔 톤으로 그림을 그린 마르크 샤갈은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올랐는걸요. 다시 한번 물어보게 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잘못된 기준으로, 편협한 시선으로 그림을 봤던 것은 아닐까요? 마리 로랑생과 그의 작품은 이렇게 여러 질문을 이끌어 냅니다. 그가 오늘날에 잊히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로랑생은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자기 자리를 홀로 굳건히 지켰습니다. 마리 로랑생과 같은 여성 화가가 오래도록 기억되면 좋겠어요. 또한 편협한 기준에 의해 잊혔던 다른 화가들이 더욱 많이 발굴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p.110~111, 「06. 마리 로랑생」 중에서 오를랑은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총 아홉 번의 성형수술을 감행했어요. 수술대 위에서 실제 의사가 오를랑의 살을 찢고 봉합하는 과정을 가감 없이 여러 나라의 갤러리들에 실시간으로 방송했습니다. 이때 국소마취를 한 오를랑의 정신은 언제나 깨어 있었어요. 이세이 미야케나 파코 라반 같은 디자이너들이 만든 오트쿠튀르(고급 맞춤복)를 입은 채 수술대에 누워 의사에게 지시를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시를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배경음악이 연주되었고요. 오를랑은 이런 장치들을 통해 수술이자 작품인 이 행위가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예술, 외과 수술과 연극 등 상반되는 세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처럼 연출했어요. …그리고 1993년 5월, 자신의 마흔세 번째 생일을 맞아 이마에 두 개의 혹을 이식하며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알렸어요. 종종 오를랑은 눈썹과 이마 사이에 실리콘을 이식해 만든 인공 뿔에 반짝이는 화장품을 발라 강조하기도 하는데, 이마의 혹은 새로운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신의 신체에 대해 완벽한 주체가 되었음을 기념하는 자유의 표식으로 기능합니다. --- p.135~136, 「08. 생트 오를랑」 중에서 마음이 삭갈린다, 열이 적어진다, 해이해진다, 아기 생각 살림 생각이 뛰어온다…. 아무리 일에 대한 열정이 커도 아이를 낳은 뒤에 마음이 나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싶습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모로서 핏덩이에게 마음이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까요. 나의 전력을 다했지만, 이제 이를 배분해야 하는 때가 왔습니다. 요즘 엄마들도 똑같습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일에 하루 종일 몰입할 수 있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는 일에 집중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과 육아가 양자 선택의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하지만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지요. 엄마가 일을 하려면 사회구조적으로 많은 부분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문화적으로도 성숙해야 해요. 물론 정찬영의 경우엔 가정의 협조가 컸던 것으로 보이지만, 출산 후에 일에 집중할 수 없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 p.173~174, 「10. 정찬영」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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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명의 여성 미술가가
당신의 삶을 응원합니다” 방황과 흔들림 속에서도 결국 나다움을 찾아가려는 바로 당신을 위로하는 미술관 ‘주류의 미술사’를 새로 쓰기 위한 숨 고르기, 이제 ‘여자의 그림’을 읽을 시간이다! 『여자의 미술관』은 프리다 칼로나 조지아 오키프, 케테 콜비츠처럼 익숙한 20세기 미술가들뿐만 아니라 생트 오를랑, 쿠사마 야요이같이 최근까지 활발하게 활동한 현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 이성자, 정강자, 정찬영과 같은 국내 미술가들까지 다루며 ‘근현대 최고 여성 미술가들의 갤러리’를 큐레이션했다. 특히 지금껏 ‘주류’에 의해 쓰인 미술사에서 누락된 여성 미술가들을 발굴했다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추상회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히는 ‘추상회화 3인방’이 있다.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카지미르 말레비치이다.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현대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역시 지금껏 그렇게 배웠으며, 그렇게 강의해 왔다. 그런데 미술사를 깊이 공부하면서, 이들의 활동 시기보다 이른 1910년대에 추상회화의 영역을 탐구한 여성 화가가 있음을 알게 된다. 바로 힐마 아프 클린트다. 그는 상징을 활용해 영적인 세계를 독창적으로 표현한 추상회화를 여러 점 남겼다. 클린트는 자신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미술계의 문을 계속해서 두드렸지만 굳게 닫힌 ‘남성을 중심으로 한 주류 예술계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 책은 주류에 의해 쓰인 예술사에 포함되지 못한 여성 미술가들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살핀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화풍으로 ‘깊이가 없다’, ‘무게감이 없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던 마리 로랑생, 오르피즘을 함께 개척해 나갔지만 남편 로베르 들로네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져 있었던 소니아 들로네, 당대의 최고 록 스타 존 레넌을 해괴한 전위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인 ‘마녀’라고 비난받은 오노 요코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해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국내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재조명하며 균형을 맞춘 점은 눈여겨 볼 만하다. 『여자의 미술관』은 ‘남성’ 그리고 ‘서양’ 중심이었던 예술사를 다시 쓰기 위한 토양을 다지는 책이다. 지금은 ‘여자의 그림’을 읽을 시간, 삶이 버거운 나에게 위로가 되는 그림 한 점 아내로, 엄마로,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유독 버겁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부당한 현실을 바꿀 수 없고 그렇다고 그저 받아들일 수도 없는 때가 찾아오는 것이다. 한 아이의 엄마이자 일하는 직업인으로서 분주한 일상을 보내던 저자는, 지칠 때마다 여성 미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작품을 살피며 위안을 받았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용기와 응원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주고자 이 책을 썼다. 여성 예술가 열다섯 명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진짜 힘이 되는 위로’를 얻게 된다. 평생을 괴롭혀 온 신체적·심리적 고통 속에서도 작품을 남겨 예술계에 이름을 새긴 그린 프리다 칼로를 보자. 그는 버스의 쇠 난간이 배를 뚫고 질을 통해 빠져나오는 엄청난 교통사고를 겪은 뒤로 평생을 자리에 누워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야 했다. 그런데 ‘고통의 아이콘’인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림은 역설적이게도 〈Viva La Vida(삶이여, 만세)〉이다. 자기 몫의 고통을 멋지게 뚫고 지나간 프리다를 보며 자연스레 용기와 응원을 얻게 된다. 고난 속에서도 마침내 예술적 성취를 이룬 여성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다들 그렇게 힘들게 살아.’라는 공허하게 들렸던 위로가 그들의 삶에서 실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비록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끝내 너무나도 멋진 작품을 남긴 그들의 발자취에서 자부심과 통쾌함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마치 ‘우리 언니’가 세상을 향해 ‘강펀치’를 날린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부단히 노력하는 지금 이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위로가 『여자의 미술관』을 찾는 독자 모두에게 전해지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