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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제1장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제2장 오늘날의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자유롭게 될 능력 해제 - 오늘날 우리에게 유대인 문제란 무엇인가 1.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의 집필 배경 2. 종교적 해방, 정치적 해방, 그리고 인간적 해방 3. 누가 반反유대주의자인가? 4. 추상적 인권 개념에서 구체적 인권 담론으로 5. 오답들의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주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
Karl Heinrich Ma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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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국가는 유대인이 지배적인 종교와 종교적으로 대립해 존립하는 만큼이나 강력하게 그들이 그러한 압제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러나 유대인 역시 유대인의 방식으로만 국가에 관계할 수 있을 뿐이다. 즉, 그들은 이방인과 같은 태도로 국가에 관계할 뿐이다. (중략) 또한 그들은 유대인이 다른 인류와 구별되는 특별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정당한 것으로 착각하고, 역사적인 운동에 일절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인류의 보편적인 미래와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미래를 고대하며, 자신을 유대 민족의 구성원으로, 유대 민족을 선택된 민족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 p.21, 「제1장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중에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은 고유한 인간으로, 공민과 구별되는 인간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정치적 인간이 오직 추상화된, 인위적인 인간, 알레고리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으로서의 인간인 반면, 시민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그는 감각적이고 개별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실존 안에서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현실적 인간은 이기적 개인의 형태를 통해서만 승인되고, 참다운 인간은 추상적 공민의 형태를 통해서만 승인된다. --- p.61~62, 「제1장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 중에서 유대인의 실질적 본질이 시민사회에서 보편적으로 현실화되고 세속화되었기 때문에, 시민사회는 유대인에게 실천적 욕구의 관념적 직관에 불과한 유대교의 종교적 본질의 비현실성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모세오경 혹은 탈무드 안에서만 유대인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유대인의 본질을 발견한다. 우리는 오늘날 유대인의 본질을 추상적 본질로서가 아니라 최고의 경험적 본질로서 발견하고, 유대인의 편협뿐만 아니라 사회의 유대교적 편협으로서도 발견하는 것이다. --- p.77, 「제2장 오늘날의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자유롭게 될 능력」 중에서 유대인 문제를 실체에서 양상으로, 유대인이 구성되는 메커니즘으로 이전시키는 마르크스의 관점과 분석을 염두에 둔다면, 《유대인 문제에 관하여》를 반유대주의 혹은 유대인 혐오와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마르크스의 글에서 발견되는 유대인 및 유대교에 대한 모든 비판과 혐오는 19세기 당시 막 발흥하기 시작한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혐오로 전치되며, 유대인은 바로 이 산업자본주의의 메커니즘에 결탁한 부산물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 p.109, 「해제: 3. 누가 반유대주의자인가」 중에서 마르크스가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는 각종 인권선언문과 헌법은 인권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볼 때, 17~18세기에 철학적 자연권으로 선언되고 주창되었던 인권 이념이 법제화된 형태로 나타난, 인권 이념의 두 번째 발달 국면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인권 이념의 역사적 발달 과정을 설명하는 연구서는 대부분 그 과정을 세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17~18세기 근대의 자연법 이론가들에 의해 구상된 철학적 자연권의 단계이고, 두 번째는 18세기 중반부터 유럽과 미합중국 일대에서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인권이 정치적·법적으로 현실화된 단계, 마지막은 1945년에 종전한 2차대전을 기점으로 인권이 국제적으로 유효한 법체계의 대상으로 부상한 단계다. --- p.111, 「해제: 4. 추상적 인권 개념에서 구체적 인권 담론으로」 중에서 국민국가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지속적인 혐오 이면에서 우리는 모든 갈등의 불씨인 자본의 위력을 간파해야 한다. 유대인 권력의 근원을 그들 민족의 특정한 기질이나 그들의 종교에서 찾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자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서유럽으로 이동한 이민자, 흑인, 여성, 이슬람교도에 대한 혐오와 이들을 향한 폭력의 근원 또한 그들의 피부색이나 독특한 문화적 관습이 아니다. 이 현상 이면에도 역시 화폐와 자본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놓여 있다. --- p.6, 「해제: 5. 오답들의 악순환을 멈추기 위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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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문제에 대한 통찰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고발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많이 완화되었다고는 아직까지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덧입혀진 편견과 ‘색깔론’에 대한 고정관념을 모두 걷어내고 나면, 철학자 마르크스가 그 누구보다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고자 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이후 인류에게 사상가 중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그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최종 목표는 진정한 인간 해방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 인문주의자였고 인간의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위해 끊임없이 분투했던 실천적 혁명가였다. 사회와 경제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 통찰, 그 결과로 고안된 그의 이론과 사상 역시 자신의 철학으로 세계를 변혁해 인간에게 인간적인 삶을 돌려주고자 했던 치열한 고뇌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문헌을 통해 유대인 문제의 대안으로 종교의 폐지와 정치적 혁명을 제시한 브루노 바우어의 주장을 비판하며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존재하게 하는 시민사회의 구조를 변혁하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인간 해방은 성취되지 않을 것이라 경고한다. 동시에 프랑스 인권선언과 미국 헌법에 담긴 인권 사상이 특정한 인간의 인권만을 보장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이 같은 불충분한 혁명과 해방은 오히려 인간의 자립성과 자율성을 제한할 뿐 인간에게 진정한 해방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이 글은 헤겔의 제자를 자처하던 청년 마르크스가 헤겔 철학 및 청년헤겔학파의 관념성을 비판하며 헤겔 철학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하기 시작한 시점에 쓰인 초기 저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사후에는 반(反)유대주의자라는 부당한 오명을 벗을 수 없었던 마르크스의 유대인 문제에 대한 견해를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저작이라는 점에서도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 구조이다 브루노 바우어는 두 편의 기고문을 통해 당시 독일 사회에서 논란이 되었던 유대인 차별 및 해방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유대인이 유대교를 포기할 것’과, 나아가 ‘인간이 종교 일반을 폐기할 것’, 즉 ‘종교적 인간의 정치적 혁명’을 제시한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그런 바우어의 주장을 ‘부르주아 혁명의 본질을 간과한 매우 협소한 대안’이라 비판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유대인 문제의 근본 원인은 유대인을 유대인으로 존재하게 하는, 유대인의 자본과 화폐, 악덕 상행위를 신으로 받드는 자본주의 시민사회의 사회 경제적 구조이지 유대인의 종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종교는 시민사회의 불평등과 소외가 낳은 결과일 뿐 유대인 문제의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유대인 문제를 종교 문제로 환원해서는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이 글이 집필될 당시 독일은 강력한 기독교 국가를 표방하는 프로이센 정권의 집권으로 매우 빠르게 보수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종교 일반의 폐기’를 제안한 바우어의 주장만 해도 매우 급진적이고 진보적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한발 더 나아가 사회 구조, 경제체제 전체의 개혁과 혁명을 주장했다. 이 저작에서 발아한 자본주의 시민사회에 대한 비판과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 개념은 이후의 저작에서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을 특징짓는 유적 존재와 노동, 소외 등의 핵심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왜 여전히 마르크스인가 마르크스는 ‘유대인 문제’라는 매개를 통해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구조 전체를 비판한다. 때문에 당시의 ‘유럽 사회’를 오늘날의 ‘자본주의 사회’로, ‘유대인 차별 문제’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모든 차별 문제’로 얼마든지 확장해 읽을 수 있다. 당시의 유대인은 오늘날의 이슬람인으로, 난민으로, 유색 인종으로, 여성으로 이름만 달리했을 뿐, 여전히 차별과 혐오, 테러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 문제를 단순히 특정한 민족의 문제로 협소화할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 현대사회에서 유대인이라는 이름은 비단 한 민족만을 지칭하는 이름이 아니라, 사회적 하층민으로 분류되는 모든 이들, 자본의 위력에 짓눌린 채 국민국가의 견고한 경계 밖으로 추방되어 어디에서도 거주할 장소를 갖지 못한 이들 모두를 지칭하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오늘날의 유대인 문제에 내재한 근본 원인과 이를 해결할 방법 또한 마르크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현대의 사회적 약자들이 차별의 대상으로, 테러의 대상으로 전락한 배경에도 여전히 거대한 자본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 경제적 구조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국민국가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지속적인 혐오 이면에서 우리는 모든 갈등의 불씨인 자본의 위력을 간파해야 한다. 유대인 권력의 근원을 그들 민족의 특정한 기질이나 종교에서 찾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자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약자에 대한 모든 편견과 혐오, 차별, 이와 결부된 폭력과 테러의 배후로 지목받아야 할 대상은 그들의 종교와 관습, 문화적 생활방식, 민족적 혈통이 아니라 자본과 화폐의 권력이다. 결국 시민사회의 사회 경제적 구조에 대한 발본적인 문제 제기 없이는 그 어떤 정치 공동체도 인간에게 참다운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줄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의 변혁 없이는 어떤 인간도 진정으로 해방될 수 없다는 마르크스의 경고는 예언이 되어 현재까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이제 정치색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그의 말과 글에 담긴 진정한 의미에, 그가 최종적으로 이루고자 했던 목표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