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3월 31일 |
---|---|
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368g | 153*188*19mm |
ISBN13 | 9788937442629 |
ISBN10 | 8937442620 |
발행일 | 2022년 03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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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368g | 153*188*19mm |
ISBN13 | 9788937442629 |
ISBN10 | 8937442620 |
프롤로그 1부 기쁨과 슬픔은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13 2부 누구나 최선을 다해 아프다 83 3부 사랑스럽고 초라한 지구를 거니는 일 143 4부 예외의 날들이 시작됐을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 183 5부 오늘 벌어진 일 다 진화다 243 6부 무너지는 사람이 좋다 275 |
제목이 또 너무 나다워서 구입했다. 허연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다. 사놓은지는 꽤 됐는데 이제야 읽게 되어서 아쉬울 뿐이다. 이 작가님의 감수성은 나랑 닮았다. 어쩌면 나보다 더 수준높은 레벨의 감수성인지도 모른다. 주변에 이런 분이 한 분씩 있다면 좋을텐데. 내 주변은 메마른 사람들 뿐이라 매일매일이 아쉽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구매해서 읽어보고 싶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5대 시인중 한 명인 허연.
사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은 딱 3명이다.
아무래도 2명이 더 생기면 3대 안에는 못들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 는 시집이 아니라
일상에서, 여행지에서, 누군가를 만나며... 누군가를 생각했던
허연의 개인적 아포리즘의 묶음이다.
개인적으로 수필집은 어지간해서 읽지는 않는 편인데.
시시하기도 하고, 20년 전이나 20년 후나
반복되는 시시함 같기도하고,
잔소리 같기도해서.
아무튼,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 는
나에겐 살짝 시시하기도 하다.
역시~
시인은 시로서 행해져야 한달까~
그래두, 내가 읽어 준것만 해두 어디야 ㅎ
시간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가장 빠르게 지나간다.
벚꽃은 절정의 순간을 잠시 보여 주고 빠르게 세월 속으로
사라진다. 언제 왔다 갔는가 싶게, 야속하지만 깔끔하게
소멸을 향해 나아간다.
일본 하이쿠의 명인 바쓰오 바쇼는 이렇게 노래 했다.
"너와 나의 생, 그 사이로 벚꽃이 있다."
사람들의 생. 그 사이로 천천히 떨어지는 벚꽃. 그 벚꽃을 바라보는,
아니 바라봐야만 하는 봄날의 허무. 벚꽃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봄날의 무력함.
벚꽃의 추락은 자멸파의 계보 맨 앞자리에 기록된다.
p.132
봄밤
정확히 100년 전 오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전쟁터에 있었다.
...
(중략)
...
재능은 어디에서도 산다.
구내식당 콩나물밥을 먹으며
전쟁터 참호속의 그를 생각했다
아! 나는 얼마나ㅏ 편안하고 나른한가
나는 얼마나 좆같고 나는 얼마나 한국말만 하다가 사라 질 것인가.
한심한 봄밤이다..... 봄밤........
p.122
오늘 벌어진 일 다 진화다
신념이니 의리니 하는 것들은 허세다.
인간은 또 얼마나 상황일 뿐인가.
상황을 이길 수 있는 인간은 없다.
p. 243
죽은 자들
가라타니 고진이 그랬다.
"죽은 자는 항상 산 자의 방편으로 이용된다고,
그리고 죽은 자는 그것에 항의할 수도 없다고...."
우리는 얼마나 죽은 자들을 이용하는가.
그들을 미화하면서 나를 합리화하고,
그들을 저주하면서 나의 죄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람들이 만장일치로 누군가를 미화할 때,
아니면 만장일치로 누군가를 저주할 때
나는 구역질이 난다
p. 273
집단
사람들은 내면이 빈곤할수록 집단에 기댄다.
사람들은 자기가 우월하다는 근거를 찾기 힘들 때 자기가 지지하는 집단이
우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렇게 생성된 진영논리는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선과 악의 문제도, 계급의 문제도, 경제적인 문제도 모두 진영논리의 먹잇감이 된다.
그들은 공유지도 공론장도 허용하지 않는다. 수준 낮은 사회의 특성이다.
성숙하지 못한 사회일수록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악마화한다.
견해가 다를 뿐인데 상대를 적이라 여기고 악마화한다.
인간사의 내밀한 서사가 전부 떠내려 오고 있었다.
언제나 섬뜩하게 날 지켜보던 영물. 그것이 시였다.
바라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사람도 현상이다.
모든 길이 사라져 버린 순간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삶에 대해, 사랑에 대해, 사상에 대해. 왜 쉽게 말해서는 안 되는지를.
그래서 나무는 구원이나 혁명을 애걸복걸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스스로를 바꾼다.
SNS는 고백의 형식이기도 하고, 오만의 형식이기도 하고,
도피의 형식이기도 하고, 자학의 형식이기도 하다.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상황을 권력으로 이용하지 않았던 여인.
가끔씩 발사된 폭탄에서 새어나온 섬광이 능선 사이를 환하게 비추었고,
....
눈물이 났다. 나는 어느새 저주했던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미 내 앞에 왔다 간 슬픔은 물론 앞으로 닥쳐올 슬픔 마저도 미리 절망하게 만드는 묘한 작열감.
이것이 탱고의 매력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조용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문학도 눈도 노벨상도 그의 타고난 허무와 황량함을 채워 줄 수는 없었다.
사랑과 광기가 동의어로 쓰이는 곳.
그곳이 안달루시아였다.
누구는 피라미드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누구는 관광객을 상대로 푼돈을 얻어내며,
또 누구는 신을 향해 숭고한 기도를 올리며 소멸하고 있었다.
사랑이 식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던 파라오들처럼.
"수많은 덧없고 헛된 것들이
증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밀턴의 <실낙원>3편에 나오는 이 구절은....
음식 앞에서도 발현되는 나의 쓸모없는 상상력에 대한....
예술은 결국 패배할 줄 뻔히 알면서도, 도달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어떤 절대미에 도전하는 작업 아닐까?
신념이 밥이 될 때, 이미 신념은 신념으로서의 가치를 잃은 것이다. 신념은 상하기 쉬운 것이니까.
학교 앞 문구점에서 호떡을 파는 것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할 때,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나의 아픔은 보르헤르트 앞에서는 사치였다.
천체물리학자 닐 다그래스 타이슨은 <블랙홀 옆에서>라는 책에서...
"만일 인간의 머릿속에 자철광이 들어 있어서 항상 북쪽을 인지할 수 있다면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눈이 안 오면 우리는 언젠가 '눈의 서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추억은 나를 구속한다.
생을 바쳐서 한 가지를 향해서 간 자들은 아름답다.
자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끝까지 밀고 가 본 자들만이 인생의 궁극을 안다.
그리고 참, 터틀넥 프레젠테이션의 원조는 잡스가 아니라 칼 세이건이었다.
전 지구적 죽음이 뉴스와 동영상으로 생중계되고 그 잔상이 현대인의 유약한 뇌를 지배한다.
나는 그들의 얼굴과 책 제목에서 디스토피아를 읽는다. 질문이 근본적이지 않은 시대는 하수다.
현실에서 선과 악의 대결은 거의 없다. 욕망과 욕망의 대결이 있을 뿐이다.
믿었던 테크놀로지는 가장 필요한 순간 '고장'이라는 방식으로 하루를 무너뜨리고,
시간은 내가 정말 여유가 필요 할 때 여유를 준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