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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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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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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6년 03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377쪽 | 510g | 146*212*30mm
ISBN13 9788932016757
ISBN10 8932016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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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다. 완전한 어둠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눈이 저절로 떠지려고 했지만 나는 눈을 더 세게 감았다. 다시 무엇인가 꿈틀거렸다. 메이비의 설명을 들으면서 나는 어둠 속에다 잠수함을 그려보려고 했다. 메이비의 설명과는 전혀 다른, 내가 전에 알고 있던 잠수함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눈앞으로 떠오르는 잠수함을 계속 침몰시키고 메이비의 잠수함을 그려보았다. [……] 수십 번을 시도한 끝에 한 대의 잠수함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엔 색이 없었다. 선만 있을 뿐이었다. 메이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입에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사무실에 욕조 따위는 없다. 하지만 욕조가 있었다고 해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내 눈앞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잠수함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 본문 중에서
나 역시 중독되고 싶어, 라고 그녀의 눈을 향해 속삭였다. 그녀는 P를 만나게 해줄게, 라고 낮게 중얼거렸다. P가 누구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안아주었기 때문이다. [……] 그녀의 가슴에서 쿵쿵쾅, 쿵쿵쾅, 하는 떨림이 전해져왔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비트는 어쩔 수 없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비트는 그녀의 가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의 입술에서도, 그녀의 다리에서도, 그녀의 허벅지에서도, 그녀의 무릎에서도, 그녀의 깊은 곳에서도 비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몸 전체는 비트 그 자체였다. 비트뿐이었다. 오직 비트.
---본문 중에서
"작다는 것은 좋은 겁니까?"
"디자인에서, 아님 일반적으로?"
"디자인에서요."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 낫겠죠. 좁아터진 지구에서 그나마 좀 작은 게 낫지 않겠어요? 휴대전화기를 한번 생각해 보죠. 손으로 들고 다녀야만 하는 휴대전화기와 바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휴대전화기, 둘 중에 어떤 게 더 편리하겠습니까. 바지 주머니에 휴대전화기를 넣는다면 손이 자유로워질 수 있겠죠."
"바지 주머니를 크게 만드는 건 어때요?"
그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농담을 하고 있나 싶어 그의 얼굴을 자세히 봤지만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었다. 나는 '그것 참 좋은 생각이군요, 전국 의류수선협회와 한번 상의해 보시죠'라고 대답해 줄까 하다가 너무 비아냥거리는 것 같아 그만두었다. 대신 그냥 웃어주었다.

(중략)

"결국 압축이 관건인 셈이군요."
"압축하지 않는 건 죄악입니다. 디자인이든 삶이든 말예요. 너저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나열하는 건 정말 비경제적인 짓입니다."
나는 평소에는 잘 얘기하지 않던 나의 디자인론까지 들먹이면서 작은 것이 어째서 아름다운지를 설명했다. 그 뒤에도 한참이나 얘기를 늘어놓았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묵묵히 내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계속 얘기를 하게 된 이유는 역시, 그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주는 위압감을 견뎌내기 위해 나는 온갖 이야기들로 발버둥을 친 것이다. 나의 엉터리 같은 이야기 열 마디보다 그의 목소리가 주는 무게감이 훨씬 컸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스스로 무덤을 파고 그 무덤에 얌전히 들어가 누워 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때 메이비에게 했던 이야기는 전혀 압축되어 있지 않았다. 압축은커녕 오후 5시의 그림자처럼 실제보다 몇십 배는 길어지고 말았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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