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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단순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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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78쪽 | 196g | 125*192*15mm
ISBN13 9788982813986
ISBN10 8982813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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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리뷰 YES24 리뷰 보이기/감추기

김정희(candy@yes24.com)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기 전, 저자 아니 에르노는 처음으로 포르노를 본 경험을 회상하며 “옛날 같으면 죽을 때까지 볼 수 없었던 성기의 결합 장면이나 남자의 정액을, 수세기가 흐르고 여러 세대가 지난 요즈음엔 거리에서 악수를 나누는 장면을 보는 것만큼이나 쉽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실제로 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못 꾸었던 것들이 이제는 너무도 일상적인 것이 되어 더 이상 특별한 인상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대학 교수이자 소설가인 여자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불륜은 더 이상 `경악할 만한'사건이 아니다. 그 동안 사람들의 눈과 귀는 『단순한 열정』이 보여 주는 그것보다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문과 사실에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논란과 상관없이 『단순한 열정』은 특별한 소설이다. 그것은 저자가 이 글을 “남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려고 쓰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그 사람이 11월 11일에 다녀갔다'라거나 `그리고 몇 주가 흘렀다'하는 식으로 정확한 날짜를 밝히는 연대기적인 서술 방식으로 글을 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형식을 갖춘 픽션으로 독자들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와 `어느 날'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하면서 열정의 기호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제 3자 입장에서는 정당화하고 합리화해야 할 실수나 무질서로 여겨질 수도 있는 그 열정을 다만 있는 그대로 보이려 했던 그녀의 바람은 순수하며 그 순수함 때문에 불온하다.

『단순한 열정』은 진실하다. “작년 9월 이후로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로 시작하는 그녀의 열정은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지니고 있기 위해 다음 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고, 그와의 관계 후에는 그가 내게 해준 말과 애무를 한없이 되새기면서 반수(半睡) 상태로 몇 날 며칠을 보낼 만큼 강력하고 단순하고 순수하며, 이 모든 기호의 조합은 총체적으로 진실이라는 국면에 다다른다.

그러나 “혼외정사를 다룬 영화는 한결같이 비극으로 끝나게 마련이듯”그는 자신의 나라로 떠나고 그녀는 그의 부재감에 허덕이면서 언제가부터인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이 글쓰기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에,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나타내려고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글쓰기를 통해 서서히 그의 부재를 극복해나간다.

1936년 프랑스에서 출생한 아니 에르노는 현대 사회의 자잘하고 사소한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일상 생활에 대해 의문을 품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특히 “내가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아버지의 죽음을 내용으로 한 『아버지의 자리』(1984), 어머니의 죽음을 다룬 『어떤 여자』(1988) 그리고 이번 『단순한 열정』같이 큰 사건을 겪은 후에야 작품이 나올 만큼 자전적인 내용이 소설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한 열정』은 그러한 실화가 주는 리얼리티로 인해 다른 존재에 의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삶이 변하게 된 한 여성을 한 발 더 깊이 들어가 생각해 보게 하는 미덕을 지니고 있다. 자식들이 보기에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 그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는 “늙은 수코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코양이쯤으로 생각”될 뿐이겠지만 그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사람만 생각할 정도로 열정에 빠진 자신을 운이 좋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을 열심히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리고 『포옹』의 저자 필립 빌랭와 다시 그 열정적인 사랑에 빠질 만큼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사랑의 기억과 상처, 열정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여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그렇게 자기 존재로 굳건히 설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다.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같은 것을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게 사치가 아닐까.
--- p.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말고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 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또 행여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피했다.
--- p.12
속옷이나 구두를 보면, 예전엔 한 남자를 위해 샀지만 이젠 단순히 요즘 유행하고 있는, 내겐 아무런 의미 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도대체 저런 것들을 갖고 싶어할 까닭이 있을까? 온몸에 한기가 몰려와 숄을 둘러야 할 지경이었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을 거야.'
--- p.52
나는 필사적으로 그 사람의 몸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떠올려보았다. 그 사람의 푸른 눈, 이마 위에서 물결치던 그 사람의 머리카락, 어깨의 곡선이 자세히 생각났다. 그 사람의 치아와 입 안의 감촉이 느껴졌고, 허벅지의 모양이며 꺼끌꺼끌하던 살갗마저 만져지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사람을 떠올리는 행위와 환각 사이에,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기억과 광기 사이에는 차이점이 전혀 없는 듯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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