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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학동네시인선-096이동
리뷰 총점8.6 리뷰 27건 | 판매지수 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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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7년 07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72쪽 | 214g | 130*224*20mm
ISBN13 9788954645621
ISBN10 8954645623

이 상품의 태그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MD 한마디

["슬픔의 과적 때문에 우리는 가라앉았다"] 어느 작가의 팬이 된다는 건 독자에게 커다란 선물과 같다. 기다리고 기다린 새로운 책을 손에 넣을 때의 기쁨이란. 특히 시인의 경우엔 시집 속에 다양한 시를 곱씹으며 만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난 오늘 신철규 시인의 '팬'이 됐다. 일단 설레는 마음으로 이 선물을 끝까지 읽는다. - 문학MD 김도훈

문학동네시인선 아흔여섯번째 시집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펴낸다. 이 시집은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첫 작품집이기도 하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총 64편의 시를 고루 담아낸 이번 시집은 해설을 맡은 신형철 평론가의 말마따나 “세상의 슬픔을 증언하기 위해 인간의 말을 배운 천사의 문장”으로 가득차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시인의 말

1부 우리가 고개를 숙일 때

소행성
권총과 장미
식탁의 기도
프롬프터
벌거벗은 모자
생각의 위로
눈물의 중력
모래의 집
샌드위치맨
다리 위에서
단종
다족의 천사
불청객
연기로 가득한 방
커튼콜
개기일식

2부 우리는 혼혈이 되어야 합니까

플랫폼
구급차가 구급차를
연인
백지
한밤의 핀볼
밤의 드라큘라
당신의 벼랑
저녁 뉴스
해변의 진혼곡
데칼코마니
밤은 부드러워
유빙
외곽으로 가는 택시
비밀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술래는 등을 돌리고

3부 그때부터 우리는 모두 벽이 되었다

바벨
어둠의 진화

검은 방
부서진 사월
가상현실
슬픔의 자전
마비
No surprises
동심원
등과 등 사이
동상
기념사진
무지개가 뜨는 동안
꽃의 내전
검은 숲

4부 이무기는 잠들지 않는다

꽃과 뼈
꽃피네, 꽃이 피네
파브르의 여름
복수에 빠진 아버지
빙글빙글
손톱이 자란다
공회전
뫼비우스의 띠
기생
울 엄마 시집간다
의자는 생각한다
눈 속의 사냥꾼
할아버지는 들에 가서
눈보라
거기, 누구?
이무기는 잠들지 않는다

해설| 6년 동안의 울음
|신형철(문학평론가)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
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
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

아이는 텅 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

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끊어질 듯 말 듯 떨리는 사과 껍질
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다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
둥글게 툭툭,
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사과 조각을 넣어준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슬픔의 자전」중에서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문학동네시인선 096 신철규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가 출간되었다. 1980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이기도 하다. 푸른빛 시집 컬러 후면으로 크게 원을 그리고 있는 ‘눈물’의 형상이 ‘지구’와 ‘슬픔’의 뉘앙스를 풍기는 듯도 하는바, 데뷔 6년 만에 펴내는 시인의 시를 일컬어 ‘6년 동안의 울음’이라 칭한 신형철 평론가의 말에 기댄 채 일단 페이지를 넘겨본다. 총 64편의 시가 4부로 나뉜 가운데 16편씩 사이좋게 담겨 있다. 이때의 사이좋음이라 함은 시의 주제와 시의 리듬의 걸맞음이라 할 것이다. 호흡을 가다듬고 한 부씩 크게 잘라 읽다보면 각 부가 각 권의 시집만 같아서 총 4권의 시집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만큼 각 부 안에서 시의 짜임새가 탄탄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능하면 보다 천천히 읽고, 보다 느리게 음미하며, 보다 여유를 가지고 시를 해석했으면 하는 바람을 앞서 얹게 된다. ‘눈’을 가로질러 ‘물’의 방 속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이야기들이 죄다 우리들의 아픈 속내인 까닭이다. 참 묘하지, 왜 우리들은 우리들의 ‘오늘’을 말하려 할 때 이렇듯 마음의 채비를 서둘러야 하는 걸까. 왜 우리들은 우리들의 ‘오늘’을 마주보는 데 이렇듯 저 나름의 준비를 보태야만 하는 걸까.

어쩌면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지뢰처럼 깔고 있는 게 신철규 시인의 시집 같다. 신철규 시인은 특히나 신중하게 말을 내뱉는 이다. 그는 과장을 멀리하고 모자람에 여지를 주지 않으며 있는 사실 그대로에 기인하고픈 ‘자(ruler)’의 잣대를 믿는 이다. 그래서 매 시마다 매 시의 구절마다 호들갑스러운 제 감정을 표출하기를 삼가고 제 감정의 기복을 그대로 노출하기를 금하며 제 가늠에서 가장 제로에 가깝다 할, 다시 말해 어떤 ‘정도’에 가장 접근한 수치의 말 부림에 집중할 뿐이다. 이토록 ‘결벽’에 가깝게 제 자신을 통제하고 제어하는 데는 매일같이 “구급차가 구급차를 부르”는 죽음이 도처에 깔린 이 세상에 아직 살아있고 살아남은 자라는, 특유의 선함과 선량함에서 보는 원죄 같은 ‘죄책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구의 둘레만큼 긴 칼로 사람을 찌른다고 해서 죄책감이 사라질까. 죄책감은 칼의 길이에 비례하는 것일까.”(「소행성」)라고 말하는 시인이 아닌가.

그런고로 신철규 시인에게 ‘눈물’은 반드시 있어줘야 하는 제 살아감의 자취다. 흔적이다. 증거다. “입김으로 뜨거운 음식을 식힐 수도 있고 누군가의 언 손을 녹일 수도 있”(「유빙」)는 눈물. 그 “눈물 속에 한 사람을 수몰시킬 수도 있고 눈물 한 방울이 그를 얼어붙게 할 수도 있다”(앞의 시)는 눈물에 대한 강한 믿음으로 시인은 이런 시도 남길 수 있었으리라.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눈물의 중력」 부분

눈물 한 방울의 무거움으로 등이 휘는 사람, 그렇게 등뼈의 통증을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 그가 바로 시인이라는 사람일 테다. 신철규 시인은 그런 ‘사람’이지만 때론 세상 곳곳에 날개를 감추고 있는 ‘천사’들을 알아보는 눈으로 일견 천사의 동족임을 들키고 만다. “날개 잃은 천사들이 축축한 몸을 끌고 거리로 몰려나온다”(「다족의 천사」)와 같은 구절을 좇다 “우비를 뒤집어쓰고 등을 돌린 채 직사의 물대포를 맞고 있는 사람”(「연기로 가득한 방」)의 날개 없는 등에서 “높은 곳에 있다고 해서 다 천사는 아니”(「다족의 천사」)라는 읊조림도 보태게 되니 어찌 동족이 아니라 하겠는가.

그리고 세월호…… 그 이름만으로 우리를 휘청거리게 하고 기울게 한 그 이름이 할퀴고 간 자리마다 시인은 시를 남겼다. 재난의 시기에 시인이 바로 그들 곁에 섰다, 라는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을 보태자면 신철규 시인이 손사래를 칠 수도 있겠으나 분명한 건 시인의 눈이 한 치도 그 배로부터 떠나지를 않았다는 사실이다. 잊지 않아야 하기에, 잊히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불러줘야 하는 이름이기에 시인은 “컴컴한 방에 검은 비닐봉지를 쓰고 앉아 있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가운데 “바다 가운데 강철로 된 검은 허파가 떠”(「검은 방」) 있는 현실을 우리에게 지칠 때까지 집요하게 그러나 억압적이지 않은 어조로 발화해주기에 이른다.

슬픔은 살아 있는 자라면 누구나 내쉬는 숨 같은 걸 테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은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슬픔의 자전」)라는 구절에서 제목을 빌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때의 가늠이 우리 사는 ‘지구’여서 더 슬픈 걸 그 앞에 다른 이름들을 넣어보면 실감이 난다. 화성만큼 슬프다는 거, 목성만큼 슬프다는 거, 천왕성만큼 슬프다는 거, 태양만큼 슬프다는 거, 이 먼 거리가 주는 현실감 없음과 달리 지구라는 현실, 지구라는 오늘, 지구라는 한국, 지구라는 서울, 지구라는 진도 앞바다는 얼마나 근거리이기에 이렇듯 내 턱을 간질일 수 있나.

신철규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사뭇 차분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쓰는 자의 단단함이 읽는 자의 옷깃 또한 여며주게 만드는 모양이다. “관을 불 속에 넣고 유족들은 식당에 간다 두 시간 남짓, 밥 먹고 차 마시기 적당한 시간”(「꽃과 뼈」)이란 대목만 봐도 말이다. “우리는 모두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으로 분리된다”(앞의 시)라고 나지막하게 말하는 시인에게 묘하게 몸이 기운다. 그의 깊은 사유가 빚은 힘일 것이다. 여러모로 이 첫 시집에 대한 할 말은 차고도 넘친다. 보다 심도 있는 읽을거리를 바란다면 시집 뒷면에 실린 신형철 평론가의 해설을 꼼꼼하게 읽어주시면 좋을 듯싶다. 더불어 “언제나 아이처럼 울겠다”던 신철규 시인의 등단 소감을 제목과 함께 오래 기억해주십사 거듭 간청 드린다. ‘아이’와 ‘울음’은 언제나 진실이며 정의 그 자체이니 말이다.

시인의 말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혼자 빠져나와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가만히 되뇌곤 했다.
그 이름마저 사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을 잠깐 뒤돌아보게 하는 것,
다만 반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게 하는 것,
그것이 시일 것이라고 오래 생각했다.

숨을 곳도 없이
길바닥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이
더는 생겨나지 않는 세상이
언젠가는 와야 한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겠다.

하늘에 있는 마리와 동식이에게
그리고 고향에 계신 할머니께
이 시집이 따스한 안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2017년 7월
신철규

회원리뷰 (27건) 리뷰 총점8.6

혜택 및 유의사항?
구매 뭔가 기본 베이스가 없는 사람인 저는 시집이 힘들어요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s***y | 2021.12.29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그 응축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구나 함축성 ㅋㅋㅋㅋㅋㅋ   그걸 파악하는 능력이 크지 않거든요   꽉꽉 닫힌 결말과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완벽한 1:1 상응되는 낱말 좋아하고요?   그런데 시집은 얇잖아요 그래서 함 시도 해 봤어요   요즘 책이 너~무 안 읽혔거든요. 무작정 손 가는대로 장바구니 넣고 주문한 거 같은데 &n;
리뷰제목

 

 

그 응축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구나 함축성 ㅋㅋㅋㅋㅋㅋ

 

그걸 파악하는 능력이 크지 않거든요

 

꽉꽉 닫힌 결말과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완벽한 1:1 상응되는 낱말 좋아하고요?

 

그런데 시집은 얇잖아요 그래서 함 시도 해 봤어요

 

요즘 책이 너~무 안 읽혔거든요. 무작정 손 가는대로 장바구니 넣고 주문한 거 같은데

 

아니 그래도 어디서 뭔가 들어보고 와우내 하니까 샀겠지 싶었는데

 

그 출처를 못 찾겠네요.

 

넵이었나..

 

암튼,

다른 책들은 출퇴근길에 조금씩 읽어서 없앨 수 있는데,

 

시집은 좀

 

각 잡고 침대에 편히 기대서 모르는 음악으로다가 방 좀 채워 놓고,

(아는 음악 나오면 흥얼거리느라 책 집중 못함)

 

손가락으로 한줄 한줄 따라 가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습니다.

 

그렇게  챕터 1을 끝냈어요.

 

초큼 뭐랄까 생각보다 5회 이상 반복해서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되어서

넘넘 다행이었읍니다.

 

키보드 워리어 겨냥하는 거 같기도 하고

모니터 뒤에 사람있어요!!!!!!!!!!!!!!!!!!!!

 

 

어긋나는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거 같기도 하고

 

잊을 수 없는 그날이 자꾸 떠오르고 그러네요.

 

얇다는 ㅋㅋㅋㅋㅋㅋㅋ 그 매력에 구입했지만

 

오히려 두꺼운 다른 책들보다 진도는 더디게 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머 오늘만 날이겠어요

 

계속 읽으려구요 올해가 가기 전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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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 단단한 무엇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플래티넘 배*니 | 2021.01.15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은 어쩌면 이번 시집 그 자체라고 해도 될 이미지가 아닐까. 눈물이 돌이 되게 하는 것은 그만 울어야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울 수밖에 없는 슬픔의 깊이라고 이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인식은,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울음은 무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인식이면서, 동시에, 나도 당신과 함께 끝까지 울겠다고 다짐하;
리뷰제목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은 어쩌면 이번 시집 그 자체라고 해도 될 이미지가 아닐까. 눈물이 돌이 되게 하는 것은 그만 울어야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울 수밖에 없는 슬픔의 깊이라고 이 시인은 말하지 않았던가. 이런 인식은,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울음은 무용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인식이면서, 동시에, 나도 당신과 함께 끝까지 울겠다고 다짐하는 인식이다.

이 시집이야말로 지난 몇 년 동안 눈물을 멈추지 못하고 끝까지 슬퍼한 자가 빋어낸, 돌처럼 단단한 눈물의 책이다.

- 해설, 신형철
댓글 0 1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1
구매 장마 속 슬픔 [시집-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YES마니아 : 골드 스타블로거 : 골드스타 책****벤 | 2020.08.08 | 추천3 | 댓글0 리뷰제목
이렇게 긴 장마는 내 기억에 없다. 지금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지난 기억을 지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길고긴 장마 안에서 이 시집을 읽는다. 장마가 시 속에도 그득하게 담겨 있다. 자연이 가져온 장마와 사람이 만들어낸 장마와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장마와 눅눅해서 불쾌하기 그지없는 장마와 사람을 살린 장마와 사람을 살리지 못한 장마가 몽땅 들어 있다. 이렇게 묘할 수가, 이;
리뷰제목

이렇게 긴 장마는 내 기억에 없다. 지금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 지난 기억을 지웠는지도 모르겠다. 이 길고긴 장마 안에서 이 시집을 읽는다. 장마가 시 속에도 그득하게 담겨 있다. 자연이 가져온 장마와 사람이 만들어낸 장마와 더위를 식혀 주는 시원한 장마와 눅눅해서 불쾌하기 그지없는 장마와 사람을 살린 장마와 사람을 살리지 못한 장마가 몽땅 들어 있다. 이렇게 묘할 수가, 이 시기에 이 시집을 읽고 있다니. 맑은 날 펼쳤더라면 금방 말라 버릴 습기로 제대로 읽어 내지 못했으리라 싶다. 그렇다고 이 장마가 고마운 건 결코 아니다.

 

시들은 온통 젖어 있고 물에 잠겨 있고 물에 잠겨서 슬픔을 흔들고 있다.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난 이들의 말없는 아픔과 하소연이 이렇게나 많았더란 말인가. 물은 슬픔의 뒷면이었던가. 거듭되는 슬픔은 슬픔의 결을 흐리게 하고 만다. 시를 읽을수록 나는 점점 둔해졌다. 뒤로 가면서 만나는 거친 시어들마저 둔해진 내 얼을 깨우지 못하고 만다. 이런 무기력, 이런 죄책감, 이런 원망은, 딱 싫은데. 나의 이 불평마저 시인은 냉엄하게 나무란다. 그런다고 네 죄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면서.  

 

전체를 고르는 대신에 한두 행씩만 골라 옮겨 보았다. 전체는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골라낸 구절들은 좋았기 때문이다. 부분의 이끌림, 내가 품을 수 있을 만큼의 크기를 뜻하는 것이겠지. 시인이 뿌려 놓고 있는, 아픈 세상을 염려하는 말들 중에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이것밖에 못 품어서 한심하다고 해야 할까, 이만큼이라도 건져 올렸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장마의 습도가 너무 짙어서 요즘은 슬퍼하는 방법을 못 찾겠다.   

 

16

내가 고개를 숙일 때 당신은

사막이었다가 사막의 선인장이었다가 사막의 밤을 횡단하는 기구였다가 금방이라도 녹아내릴 눈사람이었다가

 

18

글자가 지나가지 않으면 나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21

당신은 금방이라도 돌아올 것처럼 모자를 탁자 위에 올려두고 갔군요

 

22

자신이 고독하다는 생각이 그 고독에서 벗어나게 해줄 때가 있다

 

31

역전과 추월이 불가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앞차의 꽁무니만 바라보고 있다

 

33

그러나 어떤 짐승도 가만히 엎드려 재앙을 기다리지 않는다

 

44

멀리 있는 것들이 궁금할 때가 있다

 

49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먼 곳으로

마음을 보내고 있었다

 

70

비밀이 많은 자는 늙지 않는다

 

74

자신이 만든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지는 낙엽들

 

108

하나의 슬픔이 다른 모든 슬픔을 아우를 때

하나의 거짓이 다른 모든 아픔을 짓누를 때

 

116

잘 웃는 사람은 잘 울기도 한다

 

131

삶의 절반 동안 기억해야 할 일들을 만들고

나머지 절반 동안은 그 기억을 허무는 데 바쳐진다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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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49건) 한줄평 총점 9.2

혜택 및 유의사항 ?
구매 평점5점
좋아요 아껴 읽고 있습니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ES마니아 : 플래티넘 m**t | 2022.03.23
구매 평점4점
간접경험의 중요함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s***y | 2021.12.29
구매 평점5점
너무 좋았습니다.
1명이 이 한줄평을 추천합니다. 공감 1
y******1 |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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