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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은어

사랑의 은어

리뷰 총점8.7 리뷰 9건 | 판매지수 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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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7월 08일
쪽수, 무게, 크기 232쪽 | 344g | 133*205*13mm
ISBN13 9788967359270
ISBN10 8967359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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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더 가볼까, 더 들어가볼까, 아가리 벌린 괴물처럼 서울은 계속해서 장면을 보여주었다. 골목이라는 말은 여기에 붙이기에 너무 정겨웠다. 한국의 이상함을 서울에 가면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아, 여기는 한국이다. 한국의 무서움, 한국의 추함, 한국의 옛날. 바로 지금 우리 곁의 광인……. 맛 간 이들과 눈을 마주치면 (멀쩡한 사람은 길에 서 있는 내 눈을 안 본다) 안 될 것 같았다. 구석을 뒤지고 다니면 점집이 나오고 파출부 전단이 나오는, 들쑤실수록 찐득하고 검은 물이 찔꺽찔꺽 나올 것 같은 그런 아가리……. 우중충하며 절대로 멈추지 않는 무언가들.
--- 「서울을 돌아다니며 한 생각」 중에서

엄마는 불쌍한 얼굴로 울다가도 웃긴 말을 잘했다. 웃어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으면, 엄마 우스운 말도 잘하지? 엄마 캐릭터 있지? 그러면서 이 상황에서도 머리가 팍팍 돌아가는 능력을 자찬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가슴에 퍼지면서 나는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웃어도 복은 안 오는 것 같지만, 바닥에 털썩 누워 울다가도 웃는 힘은 나를 지켰다. 비참함에 테두리가 녹아버릴 것 같을 때도 마지막 자존심 한 가닥 지켜주는 것은 유머였다. 내가 나를 웃길 수 있으면 된다. 웃음은 몸 안에서 터져 나온다. 웃고 나면 별것 아닌 기분이 든다. 유머는 우리의 자부다.
--- 「맛있는 것 앞에서 환장을 하고 먹지」 중에서

우리는 바보 같을 때 동시에 바보 같아지고 천재 같을 때 동시에 천재 같아진다. (…) 그러니 둘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반을 잃는 것과 다름없다. 그때 그랬잖아 말하거나 아 하면 어 하고 대답해줄 사람이 없어지는 것이고, 맥락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유머가 없어지는 것이다. 사랑은 편지에 나를 미워한 적은 있지만 싫어한 적은 없다고 썼다. 우리는 서로의 악취를 맡을 수 있는 사이다.
--- 「친구는 동료가 된다」 중에서

그 사람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있대도 따라가보려는 것이다. 나를 보지 않아도 좋을 그 눈이 언제 어떻게 빛나는지 그것을 알고 싶다. 처마 밑에 매어둔 감이 익으며 달아지는 철에 나는 사람의 눈에 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 「즐거운 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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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원고를 다 읽고 조금 부러웠다. ‘조금’이라고 적었지만 그 조금이 점점 확대되면서,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한나는 내가 살았으면 했던 그 질감으로 한 시절을 살아내고 있었다. 자기가 자기를 보살피는 게 뭔지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입술을 깨물며 삼킨 감정이 자리할 시공간을 공들여 구축해내는 작가의 문장은, 내가 놓쳤거나 일부러 삭제해버린 존재들을 떠올리게 했다. “미로는 좋은 애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좋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손가락 마디마디 분홍색」은 좋아서 몇 번이나 울면서 읽었는데, 지금부터라도 ‘미로’를 놓치면서는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사람도 나오고 장소도 나오고 음식도 나온다. 색깔도 나오고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과즙도 나온다. 뭐가 나오든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을 듬뿍 받은 후라서 어떻게든지 살아서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이 좋은 이유가 모든 존재에 공평하게 내어준 시선 때문은 아니다. 작가는 오히려 이미 충분히 관심받는 존재들은 살짝 밀쳐놓고, 우리 삶에 배경처럼 존재하는 것들을 전면화한다. 버려진 공터에 쓰레기를 버리는 게 아니라 꽃을 심는 생활, 쟤 정말 이상해 말해버리기 전에 나의 이상함을 떠올려보고는 이상하게 웃음이 나버리는 생활,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저녁에 몸을 일으켜 공들여 만든 음식을 먹는 생활. 나와 너를 소외시키지 않으면서 구체적으로, 또박또박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 어디를 펼치든 살고 싶다는 마음을 챙기게 되는 것도 그래서다.
- 임승유 (시인)
서한나의 글을 처음 읽은 밤에는 잠을 못 잤다. 못 잔 이유는 많지만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너무 커다란 반가움 때문이었다는 얘기. 신문에 그의 칼럼이 실리는 날이면 눈 뜨자마자 찾아 읽는다. 도대체 매체들이 서한나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고 뭐 하는지 답답해하면서. 이렇게까지 말맛 있게 쓰는 작가가 우리 또래에 또 있던가. 나는 대체 불가능한 서한나를 따라 브루클린에 가고 가수원과 유성을 배회하고 천변을 걷고 술집에 앉고 낯선 냄새를 맡고 아직 안 먹어봤지만 알 것 같은 맛을 보고 더 볼 것도 없이 지긋지긋한 장면에서 환장하게 좋은 사유를 건져 올린다. 그러다 만나보지 못한 사람들을 아끼게 되고 가보지 않은 장소들을 그리워하게 되고 야해지고 명민해지고 서울을 이상하게 여기게 된다. 서한나가 서울 아닌 장소에서 모아 온 보물들을 궁금해하며 이렇게 부탁한다. 더 말해달라고. 더 가르쳐달라고. 그는 지금 내가 가장 기다리는 작가다.
- 이슬아 (작가,헤엄 출판사 대표)
레즈비언의 경험은 언어의 부재라는 역사가 누적된 끝에 전인지적 차원에 머무르곤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언어 외적 차원에서라도?서한나식으로 말하자면 표현할 단어가 있기 전부터 존재해왔다. 존재감 뚜렷한 그 물질은 우리로 하여금 굳이, 싶으면서도 위반을 감행케 하고 언어 없이 말하기라는 모순을 저지르게 하여 레즈비언의 공통언어를 시어라 일컫게 한다. 명확함에도 사라져버리고 사라졌어도 명확한 그 시의 역사가 서한나의 삶으로 활자화되었다. 『사랑의 은어』라는 제목은 시의 역사와 그의 삶을 한데 요약한다. 같은 환경에서 같은 운명에 놓인 이들이 서로 비밀을 유지하기 위하여 독특하게 사용하는 말, 은어를 발명해서라도 사랑을 표현하고 마는 시도들.
내가 한나를, 그의 빛과 윤곽을 처음 알아본, 그래서 본의 아니게 아우팅을 해버린 날은 평소에도 놀림을 받는데 책에도 놀림 가득한 어조로 등장한다. 이 책에는 그의 모습이 그대로 담기어 있으니 독자들에게 그럴 만하지 않았는지 드디어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서한나의 은어를 알아듣는 사람들은 “어떻게 몰라!”라는 내 말에 호응해줄지 모른다. 내가 서한나를 처음 만난 그날처럼, 더 많은 사람이 그를 발견하게 될 순간이 왔다는 게 마치 내 일인 양 뿌듯하다. 그보다 이 책이 은어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던 사랑과 그것을 발명할 줄 아는 더 많은 사람을 발견해낼 일이 기대된다.
- 이민경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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