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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

가짜 남편 만들기, 1564년 백씨 부인의 생존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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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8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280쪽 | 524g | 152*225*20mm
ISBN13 9791156122029
ISBN10 11561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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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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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원의 삶은 당시 지방 사족의 전형이었다. …… 유연도 마찬가지였다. 스승을 찾아가 기본적인 학문 텍스트를 공부하고 조용한 사찰을 찾아가 따로 공부를 하고, 때로는 친구들과 어울려 개고기를 먹는 등 그 역시 평범한 사족의 일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p.27

‘유유 사건’은 지방의 안정된 사족가문의 맏아들로서 과거를 준비하던 유유가 1558년 33세의 나이에 집을 뛰쳐나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시작되었다. 유예원과 유유의 처인 백씨는 유유가 정신이상으로 집을 나갔노라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다. 이상한 것은 그들이 아들과 남편을 찾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p.29

1579년 유유 사건의 재조사 때 추관이 유유에게 가출한 이유를 묻자, 유유는 이렇게 답했다.

아내를 맞이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아들이 없어 아버지가 업業이 박하다며[업박業薄] 나무라고 슬하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유유는 결혼한 지 3년이 지나도 자식이 없었다고 말하며 이것이 자신이 가출한 이유라고 진술했다.
---p.33

과도한 여성성, 곧 수치스러울 수도 있는 자신의 비밀이 아내는 물론 아버지에게까지 알려지자, 유유는 집을 뛰쳐나가 종적을 감추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대를 이을 장자가 온전한 남성이 아니고 그 때문에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사실, 또 그것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아내와 갈등 끝에 집을 뛰쳐나갔다는 사실이 외부로 노출될 경우, 그것이 유씨 가문에 불명예가 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p.37

유유는 집을 떠난 지 2년 만에 평안도 순안현順安縣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뒷날 유유 사건의 재조사를 요청해 유연의 억울함을 밝히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윤국형尹國馨은 1560년 순안현에서 ‘천유용天裕勇’이라는 이름으로 행세하는 유유를 만난다. 거지 같은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떠돌아다니면서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것을 호구지책으로 삼고 있었다.
---p.39

유유가 집을 나간 뒤 유유의 열두 살 아래 동생 유연(1538~1564)은 불가피하게 적장자의 역할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 1558년 유유가 집을 나간 뒤 이내 이관의 딸 이씨와 결혼했고, …… 유예원의 장례를 치른 것도, 집안의 일을 처리한 것도 유연이었다. …… 만약 1563년 채응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유연은 순조롭게 적장자의 지위를 계승하고 유지했을 것이다.
---p.41

《송계만록》은 채응규의 신원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채응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경산현의 관속이었다. 일찍이 유유의 여종에게 장가들었으므로, 그 집안 일을 엿보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채응규도 역시 집을 나가 우연히 다른 지방에서 유유를 만나 침식을 함께했기에, 유유의 마음을 일일이 기억하여 털끝만 한 일도 모르는 것이 없었다.
---p.43

유유는 대구인이다.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다른 지방에서 호구하다가 무뢰배 채응규와 오랫동안 같이 지냈다. 채응규가 그의 일기를 얻어 보고, 종실 아무개[곧 유유의 자부 이제]와 몰래 같이 모의하여 재산을 나누기로 약속했다.
---p.46

이듬해인 임술년(1562) 이제가 유연에게 편지를 보냈다. “들으니, 해주의 채응규란 사람이 실로 너의 형이라고 하더라. 너는 맞이해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유연은 편지를 받자 노비를 보내어 맞아오려 했으나, 노비는 그냥 돌아왔다. “유유가 아니었습니다.” 여름에 이제가 또 편지를 보내어 채응규가 의심할 바 없이 유유라고 하였다. 유연은 다시 사람을 보냈지만, 다시 또 그냥 돌아왔고, 말은 전과 같았다.
---p.55

이제는 1540년 유예원의 장녀와 결혼했고, 그 이듬해인 1541년 대구에서 서울로 주거지를 옮긴 뒤 계속 서울에서 살았다. 1563년 겨울 채응규가 서울에 나타났을 때는 이제가 대구를 떠난 지 21년이나 지난 뒤였다. 이런 상황이라 이제는 유유를 자칭하는 채응규가 정말 유유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p.56

춘수는 1562년 봄 평안병사의 군관(이자첨)이 해주 성내에 와서 숙박했을 때 그를 방문한 채응규가 오랫동안 귀가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춘수가 누구냐고 묻자 채응규는 “나의 표형 이 아무개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부음을 들어 애통하기 그지없다”라고 답했다. 춘수가 “전에는 일찍 부모를 여의었다고 했는데 지금 ‘비로소 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고 하니, 어인 말이오?”라고 묻자, 채응규는 “나는 실로 유유라네. 전에는 대개 종적을 감추고자 그렇게 말한 것이라네”라고 하였다.
---p.58

『유연전』의 진술은 그 자체로도 일치하지 않는다. 초반부의 진술에 의하면, 노비를 두 차례 보냈는데, 노비들은 모두 유유가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1564년 유연의 초사에 의하면 채응규는 ‘삼이가 오인한 것이고 자신은 채응규’이며 유유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1563년 겨울 채응규가 서울 이제의 집에 와서 머무르고 있을 때 유연이 다시 억종을 보내자, 채응규는 “예끼, 네놈은 유연과 음모를 꾸며, 전에 해주에 왔을 때도 도리어 나를 가짜로 만들려 했지. 노비로서 주인을 잊은 죄는 죽어 마땅할 것이야”라고 화를 낸다.
---p.66

추리해본다면, 채응규는 1562년 봄 해주 성내에서 이자첨을 만나서 자신이 유유라고 말했을 뿐 춘수에게는 말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채응규가 춘수에게 자신이 유유라고 말한 것은, 1563년 봄, 서울로 가서 석 달을 머무르고 돌아온 뒤이다. 왜 채응규는 1563년 봄 서울에서 3개월을 머무른 뒤 자신이 유유라고 말했을까. 아마도 자신이 유유로 행세하는 데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말일 것이다.
---p.77

채응규(=가짜 유유)를 만난 이제는 형색이 변한 유유를 알아보지 못하다가 채응규가 유씨 집안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내는 정보를 듣고 유유임을 인정한다. 상이한 외모와 일치하는 정보 사이에서 후자를 판단의 근거로 삼아, 채응규를 유유라고 인정한 것이다.
---p.79

이제와 심륭은 “진짜 유유가 틀림없다”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관에 알려서 따져야 한다”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향족을 모아놓고 같이 논의해 판단하자고 말했다. 유연은 김백천의 말을 따라 채응규를 잘 대우하면서 함께 대구로 돌아가기로 했다.
---p.86

대구부의 북쪽 접경지인 팔거八?에 이르러서 유연은 몽합과 의논한 뒤 채응규를 결박해 대구부를 찾아가 옥에 가두었다(1564년 억종의 초사, 『이생송원록』). 유연은 팔거에 이르러 채응규가 진짜 유유가 아닌 사기꾼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p.90

유연이 백씨에게 알리지 않고 채응규를 성급하게 대구부로 넘긴 것은 가짜라는 판단이 들었음과 동시에 분노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백씨에게 알리지 않은 데에는 유연의 의도도 작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이 가짜라고 확신하는 채응규를 만약 백씨가 진짜라고 한다면 유연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씨는 이미 해주를 다녀온 종들이 두 번이나 채응규가 유유가 아니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연을 압박해 서울로 가게 하지 않았던가.
---p.91

백씨는 이렇게 따져 물었다. ① 처음에 형으로 여기고 함께 오던 사람을 무슨 마음으로 결박을 지워 관부官府로 간단 말인가. 내가 그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슨 마음에서 그러는 것인가? ② 정말 가짜라면 처음 나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는 어떻게 진짜라고 했단 말인가? ③ 그리고 억종의 눈알은 무슨 일로 빼버리고자 했단 말인가?
---p.92

《명종실록》에 의하면, 대구부사 박응천이 유연의 편에 서서 채응규를 혹독하게 다스리고 고을 사람들을 모아 그 진위를 가리게 하자 고을 사람들은 박응천의 뜻을 알고는 모두 ‘유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채응규가 유유라고 믿었지만, 박응천의 의중을 따라 채응규를 유유가 아니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p.98

만약 내 말이 진실이 아니라면, 마땅히 은밀한 일을 증거로 대겠다. 혼인날 밤 아내에게 월사月事가 있어 단의短衣 밖으로 피가 배어 나왔고, 또 왼쪽 다리 깊은 곳에 콩알만 한 검은 점이 있다. 이 두 가지가 실로 분명한 증거가 될 것이다. 백씨에게 물어보라.
---p.101

채응규가 첫날밤 이야기를 자신 있게 증거로 제출했던 것은, 그리고 백씨가 그 증거가 진실이라고 확인해주었던 것은 두 사람 사이에 공모가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곧 채응규와 백씨 사이에 채응규가 가짜로 몰릴 경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첫날밤의 월경과 ‘검은 점’을 증거로 내세우기로 이미 약속한 바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p.103

백씨의 행동은 납득하기 어렵다. 백씨가 정말 채응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랐다면, 그는 당연히 관정으로 가서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정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그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이미 채응규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p.107

가출한 유유가 돌아오지 않고, 또 아들이 없었으므로 백씨는 사실상 과부와 다름없는 처지였다. 만약 유유가 죽은 것으로 확인된다면, 백씨는 적장자의 처로서 총부의 권리, 곧 봉사권과 후사 지명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었다.
---p.109

사헌부의 논조는 총부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남편이 사망하고 아들이 없는 총부인 형수는 시동생에 의해 축출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형이 후사를 남기지 않고 죽었을 경우, 동생이 그 집안의 종통을 계승하는 형망제급兄亡弟及의 법이 작동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p.110

남편도 자식도 없는 자신이 쫓겨날 가능성이 있었다. 물론 백씨는 총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는 유유가 사망한 것이 아니라, 가출했다는 것이었다. 남편이 사망하지 않았으므로 후계를 지명하는 총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p.111

채응규와 백씨 중 누가 먼저 사기극을 제안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백씨에게는 그것을 제안할 만한 충분한 동기가 있다. 또한 채응규의 입장에서도 그 제안은 받아들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정말 유유로 인정받는다면 버젓한 사족으로서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관속과 무당, 사기꾼의 위치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p.113

남편에게 불량한 아우가 있어 재물을 탐하는 것이 한정이 없어, 진짜를 가리켜 가짜라고 하면서 형을 결박해 관에 가두고 큰 재앙을 떠넘기려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본래 광증을 앓고 있는데 구금당한 뒤 병이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다행하게도 태수께서 갇혀 있는 것을 면하게 해주셔서 병을 치료하고 있는 중에, 유연이 지키는 자에게 뇌물을 써서 형을 죽이고 그 흔적을 감추었습니다. 바라옵건대 유연의 죄를 논하시어 이 아낙의 억울함을 풀어주소서.
---p.116

채응규가 사기꾼인 것, 곧 가짜 유유라는 것이 확정된다면 헤어날 수 없는 곤경에 빠질 사람이 있었다. 백씨가 바로 그 사람이었다. 백씨의 문제는 심각했다. 채응규와의 간통 혹은 공모 과정에 대해 추궁당할 경우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
---p.118

채응규가 해주에 있을 때 스스로 유유가 아니라고 답하는 편지를 써 보내자 백씨가 받았다. 어떻게 부인이 평소 알지 못하는 남자와 서찰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가? 만약 그 서찰을 받고서 내심 유유라고 생각했다면, 그가 결박을 당해 관에 잡혀갔을 때 마땅히 관을 찾아가 직접 만나보고 남편을 위해 일이 잘못되었음을 따지기에 겨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도리어 강 건너 불 보듯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p.119

세상에서 이 옥사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유연의 죽음은 이제가 재물을 다투었던 흉모에서 시작되어 채응규의 간사함에서 이루어졌고, 위관의 손에서 결정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전적으로 백씨의 손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말하겠다. 만약 백씨가 채응규의 편지를 받고서 의심하지 않아야 할 데에 대해 의심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사족을 가탁하여 마땅히 분변해야 할 때에 분변하지 않은 일이 없었더라면, 억지로 명분도 없는 상복을 입고 죄 없는 동생을 죄에 빠트리는 일이 없었더라면, 이제의 음모와 채응규의 간사함을 어디에 베풀 수 있었겠는가?
---p.121

춘수 역시 유연을 유유(=채응규)의 살해범으로 몰아야만 하였다. 남편이 사기꾼임이 밝혀진다면, 그녀는 남편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기행각의 전모를 털어놓아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혹독한 고신이 있을 것이고 결국은 처벌을 받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백씨가 유연을 유유 살해범으로 고소했으므로 춘수에게 고소는 손쉬운 판단일 수 있었다.
---p.122

동생이 형을 살해한 사건은 사기꾼의 사기극을 덮으면서 빠르게 퍼져나갔을 것이다. 원래 살인사건은 왕에게 보고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곧 대구부에서는 경상도 관찰사영을 거쳐 서울의 조정으로 마땅히 보고서를 올려야 했다. 하지만 대구부가 보고하기도 전에 간관이 왕에게 계사를 올려 유연의 처벌을 요청했다.
---p.131

동생이 형을 살해한 것은 10악十惡에 해당하는 중죄였다. 명의 《대명률》을 채용한 조선의 형률 그 첫머리는 10악의 종류를 열거하면서 시작된다.

10악: 모반, 모대역, 악역惡逆, 부도, 대불경, 불효, 불목, 불의, 내란

이 중 유연의 범죄는 ‘악역’에 해당하는데, …… 자기보다 높은 항렬의 존속을 살해하거나, 같은 항렬의 연장자를 살해하는 경우가 곧 악역이었다.
---p.133

사죄에 해당하는 범죄는 지방과 서울에서 각각 심리할 수 있었다. 지방의 경우 관찰사가 차사원差使員을 정해 해당 고을의 수령과 함께 추문하게 하고, 그다음 또 차사원 2명을 정해 고복考覆하게 하고, 다시 직접 추문한 뒤에야 왕에게 보고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 유연이 형을 살해한 것은 동일한 사죄지만 강상죄綱常罪라는 점에서 그 성격이 달랐다. 강상죄는 삼강오상, 곧 유가의 기본윤리인 삼강과 오륜을 어긴 죄였다. 강상죄는 지방에서 심리할 수 없고 서울로 옮겨 삼성교좌三省交坐로 심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p.134

삼성교좌 추국은 의금부에서 사헌부와 사간원, 정승이 참여하는 재판이란 의미다. 의금부는 반역사건, 강상범죄, 관원의 일반 범죄, 사족여성 범죄의 재판을 맡는다. 의금부의 재판을 추국이라 하는데 ……
---p.135

사족부인의 경우는 범죄가 강상과 실행失行에 관계된 것이라야만 비로소 국옥鞫獄이 이루어졌다. 백씨 역시 의심스러웠지만, 그가 강상죄를 범한 것도, 실행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를 의금부에 가두고 조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는 백씨가 ‘살인’의 피해자였던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채응규의 진짜?가짜 분변을 포함하여 백씨가 어떤 조사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또 유연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목숨을 잃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p.144

신이 아무리 형편없다 하더라도 그래도 사람 사이에 살고 있는데, 봉사하는 것을 빼앗기 위해 동기간을 죽인다는 것은 결코 그럴 이치가 없습니다. 하늘의 해가 환히 임하고 계시니, 신의 억울함은 굳이 발명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신을 한두 해 가두어 두었다가 신의 형이 죽었는지 아닌지를 철저히 조사한 연후에 신의 몸을 죽여 가루로 만들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원래 신장은 한 번에 30대 이상을 칠 수 없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었으나, 법은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다. 신장이 42대에 이르도록 고문을 하자 고통을 견디지 못한 유연은 김석 등이 그랬던 것처럼 거짓으로 자복하였다.
---p.149

유연의 논리를 따르면, 이제는 유예원이 유연에게 좋은 밭을 따로 상속한 것을 질투하여 백씨?심륭과 공모하여 채응규를 내세워 가짜 유유 행세를 하게 사주한 것이다.
---p.153

유연의 처 이씨는 이제의 친구인 이관의 딸이었고 두 사람을 중매한 것은 다름 아닌 이제였다. 유예원이 유연에게 토지를 별급할 때 증인 또한 이제였다. 이제는 그 별급토지에 대한 어떤 권리도 없다. 또한 이제와 유연의 처 이씨는 친구의 딸이라는 윤리적인 관계가 있다. 설령 이제가 음모를 꾸며 유연을 죽이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 땅은 아내인 이씨가 있는 이상 자형인 이제의 몫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p.154

서형과 명예를 놓고 경쟁관계에 있던 자들은 서형이 유연의 뇌물을 받고 유유를 살해하는 데 협조했을 것이라는 소문을 냈고, 그 소문만으로 서형은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당하고 종신토록 벼슬길이 막혔다. 소문은 소문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p.160

《경국대전》은 고신에 대한 규정을 마련해 두었다. 신장은 1회에 30도 이상을 칠 수 없고, 한 번 고신하면 3일 안에 다시 고신할 수 없었다. 또한 무릎 아래를 치되 정강이에는 닿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것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p.163

백씨는 채경백에 의지해서 유씨 집안의 종통을 이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제사권은 물론 모든 재산은 백씨의 손에 쥐어질 것이었다. 백씨는 유연이 유유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 유유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성불구자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런 백씨가 아직 유유가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유의 핏줄이라면서 채경백을 양자로 입양한 것은, 사실상 대담한 범죄에 속하는 일이었다.
---p.169

곧 이시발에 의하면, 당시의 추관과 조정의 사대부들은 형을 죽인 놈을 잡아 법대로 처결했다고 하여 서로 축하하는 말을 했고, 유연의 억울함을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진실을 알고 유연의 죄를 벗겨주려 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같이 배격했다는 것이다.
---p.173

《선조실록》은 ‘4대의 계보와 집안의 세세한 일까지도 일일이 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천유용이 유유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하였다. 다만 유유는 1564년 채응규의 출현과 유연의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p.176

천유용이 진짜 유유임이 확인되자 사건의 재조사가 불가피해졌다. …… 결국 채응규는 장련(지금의 은율)에서, 춘수는 해주에서 체포되었다. 하지만 채응규는 해주를 5리 남겨두고 칼로 목을 찔러 자살하였다. 서울까지 압송된 것은 춘수 한 사람뿐이었다.
---p.178

적어도 유유 사건은 전체 기획에 백씨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떻게 보면, 유유 사건은 남편과 자식(아들)이 없는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 기획한 처절한 생존전략일 수도 있다. 채응규가 도망한 뒤 채경백을 백씨가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여 키운 것 역시 그 전략을 실행에 옮긴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183

이제가 ‘처가의 가산을 유연이 독차지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유연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가 유연을 유유의 살해범으로 만들어 사형을 당하도록 기획했다면, 그것은 채응규가 가짜 유유임이 드러나도록 처음부터 계획했다는 모순에 처한다.
---p.199

누이가 사망한 지 21년이 지나서 재혼한 자형에게 뜬금없이 자신이 소유한 토지의 절반을 떼어준다는 것은 사회관습상 있을 수 없는 행위다. 뿐만 아니라 유유에게는 처 백씨가 있고 동생 유연이 있다. 그들을 설득할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p.202

이제는 춘수가 씌운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고 고문 끝에 옥중에서 죽었다. 유연은 고문으로 인한 고통을 참지 못하여 죄를 인정했지만, 이제는 끝내 인정하지 않고 결국 장형杖刑으로 사망했던 것이다. …… 춘수의 초사에 의거해 이제는 유연 집안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채응규를 교사하고 결과적으로 유연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악인이 되었다.
---p.215

백씨의 고소 이후 사건은 동생이 적장자의 지위와 형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형을 살해한 살인사건이 되었다. 그것은 사족체제의 이데올로기적 근거인 유교적 가부장제, 나아가 종법적 질서를 근저에서 파괴한 것이었다. 그것은 사족사회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p.219

이제를 악인으로 만든 것은, 곧 유연을 죽였던 사람들과 국가 사법시스템의 과오를 덮어버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곧 그 희생양이었던 셈이다.
---p.222

백씨를 조사하지 않고 백씨에 대해 언급을 기피한 데는 가부장제하에서 남성의 성적 무능력을 덮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p.224

『유연전』은 문학이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사건의 본질을 교란하고 가부장제의 모순을 은폐하는 데 문학의 언어가 동원된 것이었다. 20세기 이후 국문학사 연구가 시작되면서 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라, 한국문학사에서 소설의 발달사를 규명하기 위해 『유연전』은 소설이 되고 말았다. 다시 한번 더 왜곡이 일어난 것이다.
---p.235

‘제3의 성’을 갖는 사족 남성의 존재 같은 난감한 문제는 은폐되어야만 마땅하였다. 1579년 백씨를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사건을 덮어버린 것은 그 내부에 성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제를 악인화하는 과정에서 백씨가 적장자권을 놓지 않기 위해 채응규과 공모해 사기극을 벌이고 유연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사실을 은폐했다. 나아가 사족남성이 갖는 성적 문제가 야기할 일체의 문제도 아울러 덮었던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유연전』은 유교적 가부장제와 사족사회의 모순을 근저에서 은폐하는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p.244

남성도 여성도 아닌 존재로서의 괴로움으로 집을 떠난 자, 적장자에게서 후손을 보지 못해 절망하는 자, 사기극으로 신분 상승을 이루려는 자, 성불구의 남편을 대신할 가짜 남편을 만드는 자, 형수의 무고로 목숨을 잃은 자들이 있었다. 이것이 16세기 후반 ‘매끈한’ 조선 사회의 구체적 삶의 모습이었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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