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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지중해 여행, 대륙을 건너는 즐거움/ 006
프롤로그 : 왜 지중해인가?/ 012 1.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016 2.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 033 하워스/ 044 3. 프랑스 파리/ 054 오베르 쉬르 우아즈/ 067 4 이탈리아(1) 토스카나와 로마 피사/ 075 피렌체/ 083 로마/ 101 5 이탈리아(2) 시칠리아 팔레르모/ 115 체팔루/ 128 아그리젠토/ 136 타오르미나/ 142 시라쿠사/ 150 6. 튀니지 제르바/ 157 타타윈과 마트마타/ 166 카이로우안/ 180 수스와 엘젬/ 188 튀니스/ 193 7 모로코 마라케시/ 205 하실라비드/ 216 페스/ 227 8. 스페인 세비야/ 233 론다/ 249 알푸자라 마을/ 260 그라나다/ 268 코르도바/ 278 에필로그 : 메스키타 담벼락에서 띄우는 편지/ 288 함께 읽으면 좋을 책과 영화/ 2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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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든버러 시내에 있는 ‘엘리펀트 하우스’ 카페 입구에는 ‘Birth-place of Harry Potter’라고 쓰여 있다. 조앤 롤링은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다가 그곳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데리고 동생이 살았던 에든버러로 이사했다. 조앤은 훗날 이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털어놓았다. 조앤은 예전에 기차가 연착할 때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상상한 이야기, 즉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다가 우연히 마법사 학교에 가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바로 그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다.
--- pp.20~21 에든버러는 흔히 ‘북쪽의 아테네’라 불린다. 18세기 스코틀랜드에 계몽주의가 만개하면서 에든버러가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이때 활동했던 사상가들이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프랜시스 허치슨(Francis Hutcheson, 1694∼1746) 등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닮은 국가기념물도 ‘북쪽의 아테네’란 별칭에 일조했다. 건물 자체로 아테네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저무는 빛을 받는 기념물은 진짜 파르테논 신전이 부럽지 않을 만큼 눈부시게 빛났다. --- pp.29~31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영국의 국립공원 지역으로 ‘가장 영국적인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 하여 ‘영국 도보여행의 심장’으로 불린다. 크고 작은 호수가 많고 너른 구릉이 펼쳐진 모습이 아름다워, 작가들에게 창작의 원천이 됐다. 특히 시인 워즈워스는 학창 시절을 빼고는 평생을 이곳에 살면서 주옥같은 서정시들을 남겼다. 그라스미어는 주택 몇 채와 몇 개의 호텔과 식당만 있는 아담한 시골 마을이었다. 호젓한 이곳에 숙소를 정하길 잘했다. 그라스미어를 출발해 그라스미어 호수와 라이달 호수 둘레를 한 바퀴 돌아 원점회귀하는 길은 가히 워즈워스 둘레길이라 할 만하다. 워즈워스 무덤, 워즈워스가 살았던 라이달 마운트와 도브 코티즈 등을 모두 둘러보기 때문이다. --- p.36 브론테 세 자매는 모두 뛰어난 작가였다. 첫째가 〈제인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 둘째가 〈폭풍의 언덕〉을 쓴 에밀리 브론테, 셋째가 시인인 앤 브론테다. 박물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세 자매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썼다는 서재가 나왔다. 이곳에서 세 자매가 모여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세 자매의 아버지가 밤 9시면 울렸다는 종, 샬롯 브론테가 입던 옷, 에밀리 브론테가 착용했던 목걸이와 안경, 세 자매의 초상화와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지금도 이곳에 세 자매가 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 p.47 히스는 진달래과에 속하는 소관목으로 가시가 많아 그곳에 들어가면 다치기에 십상이다. 8월에는 붉은 꽃이 무더기로 피지만, 다른 계절에는 그저 검게 보인다. 히스는 브론테 세 자매 작품의 단골 아이템이며, 특히 에밀리 브론테는 〈폭풍의 언덕〉의 주인공 ‘히스크리프트’란 이름을 히스에서 따오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어린 캐서린과 히스크리프트는 거친 무어지대에서 깔깔거리며 뛰어놀곤 했다. 히스 군락지를 지나 하염없이 걸었다. 하늘의 구름이 무겁다. 회색 구름 한 덩이가 내려와 머리를 짓누르는 것 같다. 지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올라 폐허의 워더링하이츠 앞에 섰다. 건물 앞으로 광활한 구릉이 펼쳐졌다. 막막하다 못해 적막했다. 여기서 산다면 무얼 할 수 있을까? 히스크리프트의 광기는 브론테가 하워스에서 느꼈던 그 적막함에서 나온 건 아니었을까? --- pp.50~51 초저녁의 레스토랑은 한적했다. 따뜻한 붉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안으로 들어가 와인을 한 잔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출발점이라 꾹 참았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베를렌과 헤밍웨이 등이 살았다는 기록이 사진과 함께 붙어 있었다. 시인 폴 베를렌(1844~1896)은 말라르메와 함께 프랑스 상징주의의 시조로 불린다. 무엇보다 유명한 건 혜성처럼 등장한 17세 천재 시인 랭보와의 사랑이다. 폴 베를렌은 말라르메와 랭보 등의 시를 평한 평론집 〈저주받은 시인들〉을 발표해 두 사람을 유명인으로 만들었고, 그 제목처럼 스스로 저주받은 시인의 삶을 살았다. --- pp.57~58 서점이 결정적으로 널리 유명해진 건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 〈율리시스〉(Ulysses, 1922)를 출판해서다.당시 조이스는 이 작품을 영국 잡지 〈에고이스트〉에 연재했는데, 외설적이라는 독자의 항의가 빗발치자 미국 잡지 〈리트 리뷰〉에 옮겨 연재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이 일로 단행본 출판은 엄두로 못 낼 형편이었는데, 1922년 과감하게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1천 부를 무삭제판으로 출판했다. 책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면서 실비아의 서점은 1941년 문을 닫는다. 이후 1950년대에 들어 프랑스에 유학 중이던 미국인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 1912~?)이 1951년 ‘르 미스트랄(Le Mistral)’ 서점을 센 강변에 열면서 문학가와 예술가들의 안식처가 된다. 이 서점은 1964년에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로 이름을 변경하면서 옛 실비아 비치의 맥을 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점은 영화에도 많이 등장했는데, 특히 〈비포선셋〉의 주인공들이 재회한 곳으로 나오기도 했다. --- pp.60~61 |
[프롤로그]
왜 지중해인가? 지중해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대륙의 가운데 있는 바다다. 세 대륙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어 지중해(地中海)란 이름이 붙었다. 지중해에 접한 나라들은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눈앞의 바다를 건너가면 닿을 수 있는 땅이 있다는 사실이, 그 바다를 건너보고 싶게 만든다. ‘문명은 동쪽으로부터’라는 말은 지중해 역사에서도 확인된다. 기원전 약 1100년부터 지금의 레바논 지역에 살던 페니키아인들이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남부에 식민 도시를 세웠다. 그중 가장 번성했던 도시국가가 튀니지의 수도 튀니스에 있었던 카르타고다. 기원전 약 700년에서 500년에 걸친 시기에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지중해를 누비고 다녔다. 그들은 동쪽 흑해에서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 남부, 스페인 해변까지 방대한 영역에 식민도시를 건설했다. 이를 마그나 그라에키아(Magna Graecia, 위대한 그리스)라고 부른다. 당시 지중해 서쪽은 카르타고, 동쪽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이 지배했다. 두 세력은 지중해 한가운데 있던 시칠리아서 부딪친다. 시나브로 그리스가 쇠퇴하고, 기원전 257년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통일한다. 로마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시칠리아 섬에서 카르타고와 싸운다. 이것이 기원전 264년에서 146년까지 벌어진 포에니전쟁이다. 총 3회에 걸친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는 지중해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떠올랐고, 카르타고는 장렬하게 멸망했다. 포에니전쟁을 계기로 로마는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다. 전성기의 로마제국은 지중해와 접한 세 대륙을 모두 지배하고, 지중해를 ‘내해(內海)’, ‘로마의 바다’로 만들었다. 당시 지도를 보면, 로마의 영토는 완벽하게 지중해를 둘러싸고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어이없다’라고 표현했는데, 그보다 더 적합한 말이 있을까 싶다. 문명은 발전하면 쇠퇴하기 마련이다. 476년 서로마제국은 멸망했다. 서유럽 로마제국이 무너진 후, 수많은 왕국이 난립한 중세시대가 시작된다. 로마를 무너뜨린 게르만족은 로마 문명을 이어받을 능력이 없었다. 로마 문명 밖 변방의 야만족(로마 문명과 비교했을 때 수준 높은 문명을 이룩하지 못했다는 의미)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중세의 비극이다. 중세는 사회 통합 이념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야만족의 문명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양 문명의 기저에는 그리스·로마 문화와 기독교가 깔려 있다. 야만족의 문명화 과정은 중세를 지나 근대까지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식민지 지배와 그 결과 벌어진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비극이 이를 증명한다. [작가의 말] 왜 지중해에 꽂혔을까? 2019년 1월 우연히 모 항공사의 유럽 특가 항공권을 지르면서 여행이 시작됐다. 여행은 여행을 부르는 법인가 보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유럽 여행이 북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지중해 여행으로 커졌다. 특가 항공권은 런던 IN 로마 OUT이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여행 코스를 짰다. 그럭저럭 런던~파리~마드리드~로마 코스를 잡았다. 그런데 출발 날짜를 며칠 앞두고 갑자기 시칠리아가 껴들었다. 자료를 찾다가 시칠리아에 홀딱 반한 것이다.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 이탈리아를 말하지 마라”란 괴테의 말은 꼭 나를 두고 한 이야기 같았다. 기꺼이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며 버스와 기차 예약을 취소했다. 그렇게 떠난 시칠리아에서 지중해의 자연과 역사에 푹 빠졌다. 봄철 유럽 여행을 끝내고, 가을에는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를 다녀와 지중해 서쪽 여행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중해 동쪽 여행을 앞두고 코로나로 발길이 묶였다. 지중해 여행을 꿈꾸는 분들을 위해 이 책의 여행 코스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여행의 출발점은 로마제국 전성기의 가장 북쪽의 경계인 하드리아누스 성벽(Hadrian’s Wall)으로 정했다. 자료를 찾아보다가 로마제국의 영토가 여기까지 미쳤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성벽은 영국,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 섬의 중앙부에 자리한다. 지중해와는 좀 거리가 있지만, 거기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와 지중해를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점을 하드리아누스 성벽으로 정하니 그 북쪽이 궁금해졌다. 로마제국의 영향이 미치지 않았던 지역은 문명이 발달하지 못했을까? 지금의 모습은 어떨까? 이런 궁금증은 출발점을 하드리아누스 성벽 북쪽의 에든버러로 옮기도록 만들었다. 에든버러에서 여행을 시작하길 잘했다. 에든버러는 조앤 롤링이 동화 같은 에든버러성을 바라보며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성했던 도시다. 에든버러를 여행하면, 조앤 롤링처럼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술술 쓰일 것 같았다. 에든버러에서 내려와 하드리아누스 성벽을 둘러봤다. 거대한 초원에 길고 긴 성벽이 신기루처럼 흐르고 있었다. 성벽을 보고 내려와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와 하워스의 평화로운 구릉을 걸었다.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가장 영국적인 시골 풍경이 펼쳐진다는 곳으로,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국립공원이다. 평화로운 호수와 구릉의 땅에 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렀다. 그 중 널리 알려진 사람이 워즈워스다. 그가 산책하던 호수를 걸으면서 워즈워스의 흔적을 찾아봤다. 그리고 하워스는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현장이다. 소설의 현장에서 에밀리 브론테가 느꼈을 적막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 영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갔다. 본격적으로 지중해에 발을 담그려면 마르세유가 제격이지만, 파리로 결정했다.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고,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봤기에 안 갈 수가 없었다. 덕분에 헤밍웨이와 우디 앨런을 가이드 삼아 어두워지는 파리의 골목길을 황홀하게 걸었다. 파리에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으로 건너갔다. 중세시대 피사와 피렌체 등에서 화려하게 피어났던 르네상스 문화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신과 인간에 대한 인식이 예술로 승화된 작품들을 보면서 다리에 힘이 빠지는 ‘스탕달 증후군’을 유감없이 느꼈다. ‘영원한 도시’ 로마를 거쳐 시칠리아로 내려갔다.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한가운데 자리한 덕분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도시. 카르타고, 그리스, 로마, 비잔틴 제국, 프랑스, 스페인 등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다가 1861년 이탈리아의 통일과 더불어 비로소 이탈리아 영토로 편입됐다. 고대 그리스 유적이 그리스보다 많이 남아 있어 신기했지만, 영화 〈시네마 천국〉의 촬영지인 체팔루가 더욱 끌렸다. 그리고 대륙을 건너 북아프리카 옛 카르타고의 땅 튀니지로 갔다. 로마와 맞짱을 떴던 위대한 카르타고의 흔적과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된 베르베르인의 땅을 둘러봤다. 튀니지 다음은 아프리카와 유럽의 문화가 뒤섞인 신비로운 모로코. 사하라사막과 아틀라스 산맥, 그리고 지중해를 품은 모로코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으로 모로코에서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으로 넘어갔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이슬람의 영토였기에 이슬람과 기독교 문명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이질적 문명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매혹적이었다. 여행 코스를 국가로 정리하면, 영국-프랑스-이탈리아-튀니지-모로코-스페인 순이다. 영국을 제외하면 모두 지중해의 서쪽에 발을 담그는 나라들이다. 지중해 여행은 지중해를 접하는 3개 대륙 다양한 나라의 독특한 자연과 문화를 만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지중해에는 까마득한 고대시대부터 근대시대까지 파란만장한 역사와 그 역사를 수놓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샘솟는 이야기가 인문학이고, 그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행이 인문학적 여행이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지중해’라는 새로운 여행 코스 제안이기도 하다. 대개 유럽 여행이 이웃한 여러 나라를 넘나들지만, 지중해를 중심에 놓으면 아예 대륙을 건너다니게 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지중해를 둘러보고 서양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오늘날 모습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유럽도 별거 아니네!’ 할 정도는 아니지만, 까닭 모를 환상과 편견은 사라졌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도 지중해 여행의 선물이 아닐까 싶다. 여행은 결국 자신과의 만남이다. 낮에 여행지를 돌아다닌다면, 밤에는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낮이 문화적 충격의 연속이라면, 밤은 고요한 사색의 시간이다.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밤의 시간이었다. 유럽과 북아프리카는 한국과 약 12시간의 시차가 있다. 그곳 그 시각의 밤은 나를 찾는 사람도 없고, 내가 찾을 사람도 없는 시간이었다. 오롯이 나 혼자인 시간이 말할 수 없이 편했다. 홀로 와인을 홀짝이고, 일기를 쓰고, 여행을 정리하는 시간이 여행만큼이나 행복했다. 여행만큼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도 드물다. 독자 여러분도 자기만의 여행 코스를 짜고 곰곰이 연구해 코스를 수정하고, 길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코로나가 빨리 끝나 다시 여행의 시대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북한산 바라보는 정릉동에서 진 우 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