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0년 07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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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490g | 140*198*30mm |
ISBN13 | 9788931021219 |
ISBN10 | 8931021216 |
발행일 | 2020년 07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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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4쪽 | 490g | 140*198*30mm |
ISBN13 | 9788931021219 |
ISBN10 | 8931021216 |
프롤로그 ·여행으로의 초대 ·르퓌, 순례의 시작 ·또 하나의 길, 스티븐슨의 당나귀 길 ·르퓌에서 생프리바달리에까지 ·생프리바달리에에서 소그까지 ·소그에서 소바주까지 ·소바주에서 오몽오브락까지 ·오몽오브락에서 나즈비나스까지 ·나즈비나스에서 오브락까지 ·오브락에서 생첼리도브락까지 ·생첼리도브락에서 생콤돌트까지 ·생콤돌트에서 에스탱까지 ·에스탱에서 골리냑까지 ·골리냑에서 콩크까지 ·콩크에서 리비냐크르오까지 ·리비냐크르오에서 피자크까지 ·피자크에서 카오르까지 ·카오르에서 몽퀴크까지 ·몽퀴크에서 무아사크까지 ·무아사크에서 오빌라르까지 ·오빌라르에서 렉투르까지 ·렉투르에서 콩동까지 ·콩동에서 에오즈까지 ·에오즈에서 에르쉬르라두르까지 ·에르쉬르라두르에서 아르테즈드베아른까지 ·아르테즈드베아른에서 나바랑스까지 ·나바랑스에서 생장피에뒤포르까지 ·다시 파리로 에필로그 |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해서 알게 되고, 언젠가 그 길을 걸어보고 싶다고 생각한지는 꽤나 오래전이었다. 아마 당시의 내 삶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일상이었기에 뭔가 돌파구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침 그때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여 킬로미터의 프랑스 순례길을 알게 되었다. 한 달 가까운 시간을 혼자 걸으면서 오롯이 나 자신과 대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커다란 유혹으로 다가왔다. 허나 유혹은 유혹으로 그쳤고, 그 길은 언제나 마음속에서만 존재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지만 스스로는 알고 있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임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음에 두고 난 후부터 그 길에 관한 책은 의식적으로 읽지 않았다. 내가 그 길을 걷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오직 나의 내면과의 대화였기에 굳이 그 길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주하고 싶은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간혹 우연한 기회에 한,두권의 책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책을 읽을수록 마음 속 유혹은 커져가기만 했기에 아마 스스로 피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비록 내가 생각한 프랑스 순례길이 아니라 르퓌 순례길이었지만, 난 한번 걷는 것을 시도해보는 것조차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5번이나 걸었다는 말에 호기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꿈을 꾸는 것은 자유라지만 프랑스 순례길을 걷고 난 후 괜찮다면 르퓌에서부터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기 때문이다.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 종교도시 르퓌에서 시작하여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이자 프랑스 길의 출발점이기도 한 생장피에드포르까지 75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2010년 처음 이 길을 걸은 후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다는 저자는 그 후 여러 차례 순례길을 다시 걸었다고 한다. 그는 길을 걸으면서 순례길의 역사는 물론 곳곳에서 만나는 마을들이 품고 있는 프랑스의 문화와 그들의 일상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있었던 백년전쟁의 흔적, 신교와 가톨릭 사이의 전쟁, 이어진 종교적 박해, 순례자를 돌보았던 자선병원, 성당의 팀파눔과 그 부조가 전하는 종교적 교훈, 알제리와의 전쟁과 같은 근대의 역사는 물론 프랑스 예술가들의 자취와 프랑스인들의 소박한 음식을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마치 옆에서 보고, 듣고, 맛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책을 읽으며 그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 살펴보니 이미 오래전부터 프랑스에 거주했고, 프랑스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한다.
저자는 이처럼 르퓌 순례길을 걸으며 만나볼 수 있는 프랑스 역사와 문화, 예술의 흔적들을 살피며 책을 읽는 우리들로 하여금 시공을 초월하여 마치 곁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듯하게 만들어준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면 프랑스 길은 물론 르퓌 길 역시 성야곱을 찾아가는 순례길이라 해도 종교적 내용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지만, 종교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종교사찰이나 성지에 가면 그 종교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지만, 딱 거기까지이다. 종교 역시 그 이상을 넘어 나에게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산티아고로 향하는 순례길 역시 나에게는 종교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길은 아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글은, 저자가 처음 르퓌에서 출발하면서 말한 ‘순례자의 세계에 차별과 배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도 중요하지 않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중요하지 않으며, 가난한지 부유한지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길을 묵묵히 걸을 뿐이다. 순례자의 세계는 완전히 평등한 세계다.’(46쪽)라는 말과, 생장피에드포르까지 걷고 나서 파리로 돌아오면서 ‘순례는 새롭게 태어남이다.’(342쪽)라고 했던 말이다. 어쩌면 처음 시작하면서 했던 말과 돌아오면서 했던 말에 그가 전하고자 했던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 생각에는 그 두 마디가 순례길을 걷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이 읽혀졌기 때문이었을 게다. 흔히 순례길은 혼자서 걷지만 여럿이 걷고, 여럿이 걷지만 결국 혼자 걷는 것과 같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달 가까이 같은 길을 걷다보면 길 위에서 혹은 숙소나 식당에서 많은 사람들과 자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말은 나누지 않지만 때로는 같은 곳을 보고서 걷기도 하고, 때로는 같은 공간에서 부대끼기도 하겠지만 날이 밝으면 또 혼자서 떠나야 할 것이다. 그러기에 저자의 처음과 마지막 글을 읽으면서 중요한 것은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일 뿐, 국적도, 성별도, 종교도 심지어 나이마저도 중요하지 않으며 오직 그렇게 묵묵히 걷다보면 새로운 나와 만나게 된다는 말이라고 생각했지 싶다.
어느 책에선가 순례길이란 ‘매일 아침 낯선 집 대문을 나서 길을 걷다가 다시 낯선 집에서 하루를 마감하는 일’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말이 하도 인상적이어서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다. 내가 순례길을 걷게 된다면 거기에 더하여 길을 걷는 동안 오롯이 나 자신과 대면하고 싶다. 아무도 나를 아는 이 없고, 나 역시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길 위에서 나의 육체적 한계를 시험하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친구에 대하여, 나를 스쳐갔거나 내가 스쳐온 수많은 사람과 공간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살아갈 삶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새롭게 태어나고 싶은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혼자서 꿈꿔온 일이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불현듯 지금이라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걷기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한다. 예수의 12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야고보의 행적을 따라 걷는 이 길은 애초에 종교적인 의미를 띠고 있었지만, 지금은 딱히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더라도 전세계의 많은 이들에게 가장 걷고 싶은 곳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과거 TV프로그램에서 3명의 배우들이 순례길의 코스 중근에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고, 순례객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는 내용이 방영되어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나는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본 적도 없고 앞으로 갈 일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저자가 소개하는 코스와 그곳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기회가 된다면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생활하는 저자가 다섯 번에 걸쳐 찾았던 순례길을 소개하면서, 그곳에 담긴 역사와 문화를 함께 소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단지 코스를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소대들을 통해서 '인문학적 정보'를 함께 풀어내고 있다. 저자가 걸었던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 ‘리옹에서 남서쪽으로 110킬로미터쯤 떨어진 종교도시 르퓌에서 출발해 남서쪽으로 걷다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에 있는 작은 마을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끝나는 750킬로미터의 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서쪽 끝 산티아고까지 750킬로미터의 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전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 코스인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에 속한 지역이다. 저자는 ‘어느 길을 걷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길을 나서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책에는 저자가 마주치는 장소와 관련된 역사와 문화는 물론, 그와 관련된 시와 영화 그리고 저자의 상념들이 적절하게 소개되고 있다. ‘인문학’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모네의 그림과 에밀 졸라의 소설을 통해서 화두를 이끌어내고, 그리고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하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르퓌, 순례의 시작’이라는 항목으로부터 생장드피에드포르에 이르는 순례길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 코스만 5차례에 걸쳐 주파했을 정도로, 이 길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깊은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마주치는 장소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만큼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저자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풀어내는 한국에서의 추억, 그리고 프랑스의 역사 혹은 문화에 견주어지는 한국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하겠다. 특히 각 항목의 끝부분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노트’라는 메모를 통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숙식을 비롯한 각종 편의시설에 대해서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역시 여러 번에 걸친 저자의 순례 경험에서 나온 조언이라 하겠다.
이 지역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저자가 소개하는 코스가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아직 프랑스나 스페인을 다녀온 적이 없기에, 그저 책의 앞부분에 소개된 지도를 염두에 두고 상상을 펼쳐야만 했다. 하지만 저자가 마주친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은 때로는 한국에서의 경험이나 역사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어, 독자인 나에게도 적절하게 이해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콩크에서 리비냐크로우까지’라는 항목에서, 저자는 노천광산이 있었던 드카즈빌이라는 곳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석탄산업의 쇠퇴로 인한 광부들의 파업은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는데, 저자는 문득 1990년에 개봉된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의 줄거리를 소환하고 있다. 강원도 사북 탄광을 배경으로 문성근과 심혜진 그리고 박중훈 등이 등장하는 영화는 나 역시 인상적으로 보았던 작품이다.
그밖에도 저자는 시와 소설 그리고 영화와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을 인용하면서, 순례길 곳곳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바로 그러한 책의 성격이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이라는 부제를 적절히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자신이 거쳤던 코스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섭렵하여 독자들에게 전해주는 세심함이 충분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철저한 준비 과정에서부터 구체적인 장소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 역시 답사의 정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졌다. 혹시 나중에라도 이 코스를 걷게 된다면, 반드시 챙겨야할 목록에 이 책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걷기를 무척 좋아해서 남들은 진저리를 내던 군 생활에서의 행군을 무척 좋아했다.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군장을 메고 딱딱한 군화를 신고 걷는 산악 또는 도로에서의 행군은 비록 몸은 힘들지라도 적어도 걷는 그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생각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걸으면서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각과 규칙적인 걸음이 빚어낸 리듬감으로 인하여 비로소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다소 과장된 표현일 수 있지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종일 앉아서 컴퓨터를 바라보는 업무를 오랜 시간 반복하다보니 걷기가 주는 촉감과 움직임, 그리고 그로 인하여 떠오르는 많은 생각은 분명 나 자신의 현재는 물론이고 지나온 길과 나아갈 방향에 대한 것으로 이어지니 걷기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을 반영하는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스페인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프랑스 르퓌 순례길을 안내하는 이재형 작가의 『프랑스를 걷다』는 이런 점에서 읽어보고 싶었다. 성스러운 장소에 대한 여정으로서의 순례길이 이제는 새로운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일상의 길로 탈바꿈하면서 그 길을 걷는 것은 이제 삶의 새로운 방향에 대해 갈구하는 이들에게 깨달음을 전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길은 또 다른 삶의 현장이다. 순례자는 길에서 몸을 움직이고, 걷고, 생각하고, 관계를 맺고, 소통하며 또 다른 삶의 순간을 산다. 부디 이 책이 그에게 떠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키게 되기를, 그리고 그가 길 위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 p. 6 中에서 -
TV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위치한 숙소를 운영하는 컨셉의 방송을 접한 적이 있다. 그만큼 '산티아고 순례길'은 우리에게 순례길의 대명사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책 『프랑스를 걷다』는 그에 비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프랑스 남부 르퓌(Le Puy)에서 스페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프랑스의 소도시 생장피에드포르(Saing-Jean-Pied-de-Port)로 이어지는 750킬로미터 여정의 '르퓌 순례길'을 소개하고 있다. 눈치빠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르퓌 순례길'은 프랑스를 기점으로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또 하나의 연장선임을 알 수 있다. 프랑스 남부 지방을 따라 형성된 이 길은 많은 언덕과 계곡은 물론이고 고요한 숲길과 초원으로 이루어진 순례길로서 전 세계 순례자들을 불러 모으는 색다른 느낌의 순례길이라 할 수 있다.
똑같이 걷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산책로와 순례길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이 다름은 단순히 그 규모에 근거한다기 보다는 산책길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기 때문에 걷기의 과정에 포함된 모든 것들이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것에 반하여 순례길은 산책길에 비하여 그러한 제약에서 벗어나서 걷기는 물론 걷기와 함께 조금씩 바뀌는 풍경과 고요한 시간으로 인하여 사색의 시간을 꽤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저자는 순례길을 걷는 것을 '새롭게 태어남'이라고 정의한다. 아직 이 길을 걷지 못한 나로서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저자의 그러한 생각을 가늠하게 된다. 정말 순례가 성경 속의 요나가 고래 배 속에 갇혀 있다가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는 여정을 뜻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순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요나처럼 고래 배 속에 갇혀 있다가 또 다른 나, 새로운 나가 되어 그곳에서 나와 더 넓은 곳으로, 더 높은 세계로 걸어 나간다. 요나는 큰 물고기에게 씹힌 것이 아니라 삼켜져서 물의 동화작용에 의해 변형되어 새로운 요나로 태어나는 것이다.
- p. 162 中에서 -
'르퓌 순례길'이라는 낯선 여정은 길과 주변의 풍경에 대한 묘사로 실감하게 된다. 고요한 숲길을 걸으면서 고독한 순례길로서 당나귀와 함께 이 길을 걸었던 루이스 스티븐슨(『보물섬』의 저자)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길 곳곳에 마련된 순례자를 위한 숙소와 자선병원, 그리고 평범한 농촌과 탄광 지대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우리가 미처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의 안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보이는 것에 그치게 된다면 그저 색다르다는 정도의 느낌에 머물 수밖에 없다. 마치 그런 점을 의식한 것처럼 저자의 시선은 그저 보이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길 곳곳에서 마주하는 것들에 담겨진 역사와 사회적인 의미를 이끌어내면서 '르퓌 순례길'이 역사와 함께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오브락 자선병원'과 같이 순례자를 위한 장소가 길 곳곳에 생겨난 이유는 거꾸로 생각하면 순례자가 길에서 보호받기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생각할 수 있으며 각 건물들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프랑스의 신교와 구교의 갈등, 프랑스 대혁명에 따른 박해를 설명하는 부분은 이 길이 단순히 그냥 보여지고 지나치는 것으로만 볼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또한 오방 광산을 중심으로 한 마을의 흥망성쇠와 근로자의 투쟁은 우리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의 '사북 항쟁'을 연상케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길은 한국과 프랑스라는 엄청난 공간적인 간극을 넘어서서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길이기에 길을 걷는다는 것은 곧 역사를 밟아가는 과정임을 일깨워주고 있는데, '백년전쟁' 기간에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은 물론이고 최근 프랑스 현대사에서의 알제리 독립에 따른 상처 역시 이 순례길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그저 '르퓌 순례길'에 대한 단순한 안내서가 아님을 보여준다.
어디 그뿐인가. 프랑스의 예술과 문화 역시 이 길을 걸으면서 느낄 수 있는데, 건축물에 새겨진 그림과 조각을 통하여 프랑스의 예술을 논하다가 순례길에 위치한 마을의 저마다의 특산품과 음식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마을에서 기르는 거위를 보면서 오리의 푸아그라와 거위의 푸아그라에 대한 비교는 물론이고 자신이 추천하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푸아그라 전문점에 대한 소개, 바게트가 왜 프랑스인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주식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이 순례길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프랑스 역시 극우파에 의하여 인종 차별적인 발언과 함께 이민족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심심찮게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순례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나눔은 물론 스스럼없이 그들의 축제와 결혼에도 이방인인 순례자를 초대하는 모습에서 국적과 출신을 뛰어넘는 공존과 연대의 가치를 느끼는 부분도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단순한 사람들의 순례자에 대한 환대로서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깔린 공존과 차별없는 모습은 과거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거창한 역사적인 사건을 통하여 자유, 평등, 박애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더라도 그러한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하는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읽다보면 『프랑스를 걷다』가 '르퓌 순례길에서 만난 생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프랑스의 역사와 예술, 문화는 물론 사회적인 가치를 느끼는 것은 지나친 확장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날 마들렌을 홍차에 찍어 먹다가 문득 그 맛에 의해 떠올리게 된 과거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더듬어가는 회상을 담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떠올린다면 그러한 지적은 오히려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해서가 아닐까?
『프랑스를 걷다』를 읽고 '르퓌 순례길'에 대한 동경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하지만 이 책은 그저 '르퓌 순례길'에 대한 소개를 위한 책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르퓌 순례길'의 여정을 통하여 20년 이상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알게 된 것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진리를 발견하는 인문학적인 여정을 그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굳이 '르퓌 순례길'은 아니더라도 주변의 길을 걸으면서 느껴지는 그 변화의 순간을 통하여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삶을 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저자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고자 한 부분은 아닐까?
* 이 리뷰는 출판사 문예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