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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한국의 암자 답사기

신정일의 한국의 암자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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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6쪽 | 448g | 128*188*20mm
ISBN13 9791188292868
ISBN10 1188292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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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산속 암자에서 만난 인연들

세상을 잠시 벗어나 가고 싶은 곳, 가서 천 가지, 만 가지로 흩어지는 마음 내려놓고 쉬고 싶은 곳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내게는 그런 곳이 암자다. 그때마다 여정을 잡았고 암자를 찾았다. 그때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사람의 인연이란 시절 인연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차를 마시는 방 위태롭기가 나뭇잎 같고, 작은 초가집에는 싸리문도 없다”던 옛날의 일지암을 떠올리며 눈을 들러 방을 보니 작은방 안에서 두 스님이 담소 중이다. 일지암의 마루에 배낭을 내려놓고 가만히 앉았다. 어디서 오셨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한 스님이 어디서 많이 본 스님이다. 어떤 스님일까? 그러나 생각이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런데 누군가 “신정일 선생님” 하고 내 이름을 부르자, 앞에 앉아 계시던 스님이 “신정일 선생님이라고요?” 하시더니 몸을 내미시며 “저 선생님 실상사에서 몇 년 전에 만났지 않습니까?”라고 반가워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실상사와 함께 만났던 순간이 홀연히 떠올랐다. 실상사에 계시다가 서울로 가셨고, 지금은 잠시 일지암에 계신다는 법인 스님이었다. 아하! 그렇구나. 세월은 만남과 함께 망각들을 예비해두고 있다가 어느 사이 그 뒤편으로 물러나고 말아, 몇 달, 혹은 몇 년을 지나지 않아 얼굴도 이름도 잊어버리게 만드는구나.

잊음이란 무엇일까? 옛사람은 “잊어버릴 줄 모르는 이 마음이 슬픔이오”라고 말했고, 니체는 “망각하는 법을 배우라”라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신기한 것이라서 만나서 사는 동안은 그렇게 절실하다가도 잠시만 못 만나면 서서히 잊혀져서 기억의 잔해만 남아 마음속을 떠돌다가 흩어져 버리기도 하고 또 어느 날 문득, 다시 만나기도 한다는 것을 새해 첫날 대흥사의 일지암을 오르고 내리며 깨달았다. “나는 고독하게 수 천리 흰 구름의 길을 가노라”라고 말하며 먼 길을 떠났던 붓다의 말과 함께 부휴자浮休子 성현成俔의 말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산다는 것은 떠돈다는 것이고, 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이다.
---「머리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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