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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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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기의 아이들을 위한 반영화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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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1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72g | 142*225*20mm
ISBN13 9791170370369
ISBN10 1170370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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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007 서문

015 1장 영화란 무엇인가? : 역량과 유령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 변증법적 사물로서의 시네마 / 히치콕의 프랑켄슈타인 / [막간극] 영화적 이미지의 유령론 / 완전한 아카이브의 신화 / 특성 없는 영화를 위하여 / 오늘날의 시네필리아

073 2장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침묵과 웅변

그저 하나의 이미지 / 네 멋대로 해라, 게임의 규칙 속에서 / [간주곡] 파편들 사이에서 말하기 / 등가 교환의 미스터리 /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얼굴 / 『자니 기타』를 위한 변주: 첫 번째 변주와 두 번째 변주

151 3장 어떻게 영화하는가? : 독신과 불신

무방비의 순수 / 비평가로서의 에이젠슈테인 / 오브라즈, 혹은 물질적 추상 / 영화가 아닌 수단으로 ‘영화하기’

213 코다 『자니 기타』를 위한 세 번째 변주
222 주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이 책에는 서문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제목에 ‘입문’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띄어쓰기 없이 쓴 ‘반영화입문’이 ‘반영화에 대한 입문’이라는 뜻인지 ‘영화에 대한 반입문’이라는 뜻인지 그도 아니면 ‘영화입문에 반하여’라는 뜻인지 굳이 밝힐 생각은 없다. 더불어, ‘반(反)’이라는 한자어를 ‘anti-’의 뜻으로 쓴 것인지 ‘counter-’의 뜻으로 쓴 것인지도 밝히고 싶지 않다. 사실 이 책은 의미의 그러한 불확정성 가운데서 진동하고 있다.
--- p.7

어떤 분야를 대상으로 한 것이든 독자의 지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일맥상통한다-으로부터 출발하는 입문서라면 핵심적 물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방법적 모색의 과정들 자체를 독자가 오롯이 체험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 p.8

영화는 희망의 전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영화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편이 낫다. 다만, 영화가 그것의 존재를 통해 희망과 관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의 소멸을 통해 그리하는 것인지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희망의 전언과 관련된 영화란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와는 무관하다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화란 특정한 내용과 형식을 지닌 개별적인 영화 작품이나 그러한 작품들의 단순한 모임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 모두를 가능케 하는 어떤 (심지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념과 관련된 대상, 즉 시네마 또한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p.17

오늘날 정색하고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일상적인 수준에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한국영화’와 ‘미국영화’, ‘남성적 영화’와 ‘여성적 영화’ 같은 다분히 미심쩍은 구분을 활용하는, 질적 혹은 종적 가치나 특성에 대한 물음으로 대체되어버린 것 같다. 이론적인 영역에서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보다는 ‘영화란 무엇이었는가?’라는 고고학적 질문이 오히려 더 관심을 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영화를 매체 일반의 역사 속에서 파악하곤 하는 논의들에서 이런 경향은 한결 두드러진다.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한 반열에 오른 책 가운데서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라든지 레프 마노비치의 『뉴미디어의 언어』 등이 얼른 떠오른다. 여기서는 다른 매체들과의 관련 속에서 영화의 대안적 고고학이나 계보학을 서술하는 일이 보다 매력적인 일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 p.19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영화란 무엇보다 인간의 표정을 담는 것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영화감독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발언 자체는 분명 존중할 만한 것이지만 우리의 비평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그의 발언은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자신에게 다짐한 것(‘나는 무엇보다 인간의 표정을 담는 연출자가 되겠다’)으로 창작을 위한 개인적 지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영화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감독이란 이런 개인적 다짐을 존재론적 명제의 형식으로 말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이다. (...) 영화를 보는 관객 또한 얼마간 이런 특권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비평가에게는 결코 이러한 특권이 없음은 물론이고 비평가는 이러한 특권을 열망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꼭 비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대해 비평적인 입장에서 발언하고자 하는 이라면 그 누구도 이러한 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다. 비평이 규범적인 견해를 존재론적인 입장으로 위장해 말할 때 그것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p.21

당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에이젠슈테인의 글은 지금 읽어보면 꽤 예언적으로까지 비친다. 특히 “렌즈라고 하는 ‘눈’을 관객의 눈과 (직접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온전히 융합함으로써 관객을 영화의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어 왔다”는 언급은 오늘날의 숱한 상호작용적 VR 장치들을 미리 염두에 둔 주장으로 읽힐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입체영화나 텔레비전 같은 당대의 ‘뉴미디어’를 통해 오늘날의 인터넷과 가상현실이나 증강현실 같은 장치들을 미리 내다보았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그의 발언이 예언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 p.26

무척이나 낡은 영화 교과서에서라면 몽타주의 중요성을 역설한 에이젠슈테인은 미장센의 우위를 내세운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과 이론적으로 대립하는 인물로 그려질 것이다. 이런 인위적인 대립 구도는 이들의 논의에 대한 무척이나 피상적인 이해에 근거해서 설정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영화에 대해 각각이 품고 있는 상이나 가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에이젠슈테인과 바쟁은 몽타주나 미장센에 대한 강조 때문이 아니라 영화를 유령으로 보는지 아니면 역량으로 보는지의 여부 때문에 대립하는 인물들이다. 영화의 존재론과 관련해서, 에이젠슈테인이 유물론적 유령주의라 부를 만한 입장을 대변한다면 바쟁은 관념론적 역량주의라 부를 만한 입장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이 두 입장은 전적으로 대립한다기보다는 궁극적으로 통합된다. 달리 말하자면, 유령과 역량은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
--- p.51

반면, 오늘날 상당수의 시네필들은 역량주의적 논법에 기대면서도 정작 자신이 가설로 삼고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예 고려하지 않거나 심지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영화는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주장은 종종 이런 무책임을 위장하는 방편으로 쓰이곤 한다. 나는 이를 역량 없는 역량주의의 시네필리아라고 부르고 싶다. 이처럼 기만적인 시네필리아는 지질학자보다는 풍수지리를 보는 지관(地官)의 태도 비슷한 것을 낳는다. 지관이 보는 산천의 형세는 얼핏 생각하기엔 지질학자가 보는 풍경과 유사해 보인다. 그런데 지질학자는 이 풍경이 바로 그러한 상태로 있게끔 하는, 혹은 어떠어떠한 상태로 변화되게끔 하는 불가시적 운동에 대한 가설을 반드시 요청하는 반면에 지관에게는 그러한 가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는 산천의 형세가 어떤 심상과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이것이 어떤 운과 관련된다는 식의 정성적 통계를 ‘체험’으로 습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 p.65

오늘날 학술적 매체연구의 조건이라 할 유령주의는 변증법적이지 않다. 일종의 메타적 매체로서의 범용 기계가 여타의 매체들을 통합하는 일방적 과정만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범용 기계의 범용성(universality)은 모든 사물을 상품화하는 동시대 자본주의의 보편성(universality)에 상응한다. 물론 그것은 추상적 일반화에 입각한 거짓 보편성일 뿐이다. 본디 역량주의에 근거를 둔 시네필리아가 오늘날 종교화된 유령주의가 되었다면, 유령주의에 근거를 둔 매체연구는 오늘날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프로그램의 역량주의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추상은 유령이 아닌 만큼이나 역량 또한 아니다. 알고리즘은 산출/출력(output) 할 뿐 생산/제작(production) 하지 않기 때문이다.
--- p.70

이미지를 보는 것이 곧 시네마를 보는 것을 뜻하지는 않으며 그 역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이미지의 중요성을 폄하할 필요도 없다. 그것이 시네마라는 모호한 대상과 단단히 엉기게 된 역사적·심리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탐구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터다. 끊임없이 변모하는 시네마의 자화상은 무엇보다 거기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지위의 변화를 통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곤 했던 것이 사실이니 말이다. 시네마가 역량과 유령 사이에서 진동할 때, 이미지는 그 떨림을 가장 예민하게 감지해내는 진동판이었다.
--- p.84

평론가로 활동하던 무렵부터 이미 고다르는 영화와 고전적인 방식으로 연결된 욕망의 관객성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꼈을 뿐 아니라 그 소멸의 징후가 영화적 인물들과 그들의 얼굴마저도 변형시키고 있음을 감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다르는 결코 퇴행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에게서 배워야 하는 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단순히 고전적 관객성을 회복하려 들기보다는 영화적 몽타주를 가능케 하는 새로운 종류의 얼굴을 찾아 나선다. 쿨레쇼프적으로 편집에만 의거해 의미와 가치를 산출해내는 무표정한 얼굴도 아니고, 그 자체만으로 내면의 긴장을 표현해내는 메소드 연기의 얼굴도 아닌 그런 얼굴을 말이다.
--- p.134

끊임없이 계속해서 이미지를 비결정적이고 중립적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그래야만 그것이 다른 이미지들과 교통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고다르가 몇몇 영화들에서 발췌한 동일한 클립들을 거듭해서 작업에 다시 끌어들이는 이유다. 그걸 그의 게으름이나 안이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비결정화와 중립화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가? 물론 망각을 통해서다. 제목만 듣고 쉬이 떠올리게 되는 것과는 달리 『영화의 역사(들)』은 망각의 힘과 유용성을 타진하는 작업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영화의 한 부분에서 고다르는 “영화는 도피의 산업일 뿐인데 왜냐하면 무엇보다 거기가 기억이 노예로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p.147

『영화의 역사(들)』과 같은 고다르의 작업은 때로 우리의 망각을, 그것도 아주 적극적이고 집요한 망각을 요청한다. 이 장의 앞부분에서 나는 고다르가 단지 영화감독이 아니라 이상적인 영화 관객의 모델이 되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에 대한 고다르식의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스틱스 강을 건너 죽음으로까지 갔다가 돌아온 연인들만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망각을 통해 이미지들의 비결정성과 중립성을 되찾은 이들만이 이미지들을 새로운 관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영화의 역사(들)』에서 『자니 기타』의 대화 장면은 정확히 이러한 맥락에서, 그것도 오직 소리로만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는 그들이 얼굴을 마주한 상태에서 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이미 알고 있다 해도 반드시 잊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들이, 그리고 이미지들이 다시 교통할 수 있다.
--- p.150

비평은 선을 긋고 우열을 나누려 드는 불쾌한 작업이라고 여기는 세인들의 태도는 ‘대체로 사실에 근거한 편견’이라 해도 좋다. 사람들을 더더욱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그러한 작업이 임의적이고 상대적인 취향이 아니라 보편적인 판단에 입각해 있음을 수시로 표명하려 드는 비평의 오만이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할 보들레르는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라는 글에서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신뢰하고 주먹이 단단한 사람이라면 혹평을 할 때 에두름이 없이 직설적이어야 한다고 역설하기까지 한다. (...) 그런데 21세기가 된 지금, 비평은 터무니없이 낡아빠진 근대의 유산일 뿐이며 비평가란 사라져가고 있는 족속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의 경우, 오늘날 비평가라 불리는 이들은 종종 사교의 언어로 말한다. 형편없는 영화의 특별 시사회가 끝난 후 감독에게 다가가 건네는 공허한 덕담(‘영화 잘 봤어요. 대박 기원할게요!’)과 다를 바 없는 언어로 말한다는 뜻이다. 수준이라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사교의 언어로 말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와일드나 보들레르와 같은 이들이 염두에 두고 있었을 비평가와는 아예 무관한 존재라고 해야 옳다.
--- p.154

영화는 예술인가? 예술이라면 어떤 예술인가? 앞에서 나는 시네마를 예술에 기대어, 예술과 더불어, 예술에 거슬러, 혹은 심지어 예술을 쪼개며 출현하는 것으로서 기술했다. 이는 영화란 여타 예술들의 존재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활동이면서 그 자체로 예술이라고는 할 수 없는 활동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p.158

우리는 어떤 영화를 보고 나서 이따금 ‘정말이지 영화적이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때 ‘영화적’이라는 표현에는 영화를 진정 영화답게 만드는 요소들과 조건들이 고루 충족되어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단순히 기술적인 의미-’이번 전시는 영화적인 설치 환경에서 진행된다’든지 ‘이 소설에는 영화적인 몽타주와 유사한 기법이 있다’고 말할 때처럼-에서가 아니라 이처럼 미적 가치 판단이 개입된 뜻으로 ‘영화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엄밀히 말하자면 터무니없이 잘못된 용법이다. 적어도 오늘날의 비평이나 학술 담론의 장에서 통용되는 용법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1장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듯 우리는 한 편의 영화를 (다른 영화보다 더 혹은 덜) ‘영화적’이게끔 하는 보편적 속성들의 집합을 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불가능성은 놀라운 암시를 함축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생각 또한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대상을 바로 그 대상이게끔 하는 요소들과 조건들의 집합을 구성할 수 없는 경우, 그것도 오직 그 경우에만 우리는 그 대상이 진정 ‘영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 p.162

엄밀히 말하자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견지하는 이상 그 누구도 결코 에이젠슈테인적인 유령주의를 제대로 수용할 수 없다. 에이젠슈테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그 자체로 잘못 제기된 것이다. 이 물음으로부터 출발해 영화에 대해 사유하다 보면 실체화의 오류(fallacy of reification) 속에서 맴돌 수밖에 없다.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영화’를 문장의 주어 자리에 둠으로써 그것이 모종의 속성을 지닌 실체이기라도 한 것처럼 간주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영화가 ‘무엇’일 수 있다는 생각은 그것이 주어의 자리에 있음으로써 생기는 존재론적 환상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시네필리아, 즉 영화에 대한 사랑이란 것 또한 일견 멋스럽게 들리기는 해도 결국 유아적인 말놀이에 불과하다. (...) 영화와 관련해 에이젠슈테인처럼 묻고자 한다면 ‘영화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어떻게 영화하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시네마는 명사적 실체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동사적 수행을 통해 발생하는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제 중요한 문제는 어떠한 수행들이 가능한지를 파악하는 일이 된다.
--- p.174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보이기/감추기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영화하는가?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와 정면 대결하는, 다소 기이한 영화 입문서

다소 길고 기이한 제목을 단 이 책의 목차는 단 세 줄의 의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각각 영화를 이해하는 것과 보고 비평하는 것, 그리고 실천하는 일을 관통하는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즉 이 책은 영화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며, 그것들에 대한 이론적, 비평적 논의들을 밀도 높게 소개하고, 이를 동시대의 관점에서 재정의하거나 때로는 진중하게 비판한다. 영화에 대한 전통적인 사유와 대결하고 최신의 논의를 소개하는 이 책의 진중함은 우리가 ‘입문서’를 상상할 때 흔히 떠올리는 가벼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책은 시종일관 영화 ‘입문서’를 표방하고 있다. 저자인 영화평론가 유운성은 서문의 첫머리에서 이 책이 ‘특정 분야에 학문적으로 접근하려 하는 이들보다는 교양 독자 일반을 대상으로 구성된’, ‘교과서보다는 교양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문제는 저자가 통상적인 입문서의 서술 방식을 대단히 ‘모욕적’으로 생각한다는 데 있다. 즉 그가 ‘수식이나 전문 용어를 빼고 추론의 과정을 생략하고 흥미를 돋구는 결과만을 요약하고, 최신 동향에 대한 정보와 잡기를 곁들인’ 책을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입문서’란 무엇인가?

- 독자의 지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 즉 미래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하기
유운성은 ‘독자의 지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 즉 ‘미래에 대한 믿음’에서 이 책을 서술했다고 말한다. 즉 입문서는 ‘핵심적 물음을 둘러싸고 펼치는 방법적 모색의 과정들 자체를 독자가 오롯이 체험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야 하며, 자신이 대결하려는 문제의 한복판으로 독자를 인도해야 한다. 각각의 이론적 도구를 떠받치는 정리와 추론 자체에 독자를 깊숙이 끌어들이면서, 핵심적 물음을 둘러싼 논쟁과도 끊임없이 대면하게끔 해야 한다.

즉 이 책의 독자는 영화와 영상 일반에 대해 이해하고 싶어하는 이들로 가정된다. 대체로 한국어로 씌어진 영화 입문서는 영화를 창작하거나 비평적으로 사유하려는 이들이 아닌, 즐기려 하는 이들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이 책 역시 그런 즐거움에 일조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독자를 단순히 개인적이고 감각적인 측면에 머무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 책은 단순히 용어와 개념을 ‘가르치기’보다는 독자와 함께 영화가 변화하는 양상과 그것이 지시하는 의미, 그리고 영화를 사유한 이들의 문제의식에까지 도달하려 한다.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독자에 대한 절대적 믿음’의 의미다.

영화란 무엇인가 - 영화의 전통적인 역사와 사유를 동시대로 끌어오기
오늘날의 영상은 공연과 미술, 건축, 음악, 심지어는 문학에 이르는 여러 예술 장르를 가로지르고 있다. 이제는 미술관이나 공연장, 연극 무대에서 모니터나 스크린을 보게 되는 일은 더 이상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만큼 각각의 예술 분야에서 영상과 관련된 여러 실험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영화나 영상에 대한 담론들은 이처럼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만나게 되는 영상 이미지를 사유할 적절한 개념들을 아직 지니고 있지 못하다.

이 책은 영화와 영상을 둘러싼 오늘날의 이론적, 비평적 논의를 조건 짓는 기본적인 문제를 다시 파악하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저자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역량’과 ‘유령’이라는 개념을 다시 설정하고 앙드레 바쟁과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고전적 논의를 이러한 개념 아래 다시 검토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고유의 특성을 지니지 못하게 하는 영화의 비실체성, 즉 사실상 모든 예술의 조건이 되는 영화적 특성을 다시 가늠하게 한다.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영화하는가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영화를 깊이 사유했던 세 명-앙드레 바쟁, 장뤽 고다르,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의 논의를 설명하고 그것들과 때로는 정면으로 대결한다. 이를 통해 저자는 그들의 고민과 관심사가 현대적인 논의와 맞닿아 있으며, 우리에게 깊은 이론적 가능성과 미로를 동시에 제공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저자는 동시대 영화감독이나 비평가라면 누구든 참조하거나 의식할 수밖에 없는 세 명의 이론을 독자와 함께 이해하고, 그 해석을 두고 벌어졌던 역사적 논쟁과, 현대 미디어 연구의 접점이 뒤엉킨 어떤 곳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가령 일반적인 입문서들처럼 단순히 몽타주와 미장센이라는 조악한 개념적 대비로 에이젠슈테인이나 바쟁을 이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데, 이는 그들의 이론이 어떤 절충주의와 극단주의를 오가며 독특한 사유를 펼쳐 보여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이젠슈테인은 영화를 어떤 실체가 있는 장치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유하는 방식, 그리고 특정한 방식으로 세계를 인식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영화는 명사적인 어떤 실체가 아니라 동사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쇼트는 단순히 프레임의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고 분절하는 전통적인 영화적 개념이 아니라, 어떤 이미지의 덩어리(cluster)를 어떻게 배치하고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사유에 가깝다. 즉 이는 예술 일반, 혹은 나아가 세계 일반과 관련된 수행의 원리이기도 하다. 유운성은 에이젠슈테인이 후기에 제안한 ‘오브라즈’와 ‘이조브라제니에’라는 개념쌍을 재검토하고, 그것의 이론적 유용성과 문제적 지점을 함께 짚는다.

“나는 진정한 입문서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꽤 명확한 상을 지니고 있다”(유운성)

이는 에이젠슈테인의 이론이 전통적인 영화를 이해하는 것뿐 아니라 오늘날의 3D와 VR, 미술관의 무빙 이미지를 이해하는 데 일정 부분 유효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와 연극을 동시에 사유했고 입체영화를 상상했던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적 개념들은 현대의 VR이나 가상현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다듬어져 있다. 나아가 영상을 무대나 전시장 등 영화관이 아닌 공간에 배치할 때의 이론적 틀거리가 아직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에이젠슈테인의 개념들은 충분히 동시대의 비평적 논점을 제공한다.

그러나 저자의 목표는 그런 과거의 에이젠슈테인을 다시 읽자는 식으로 독자들에게 안온한 학습의 공간을 제공하기 위한 것에 있지 않다. 이 책은 에이젠슈테인이 영화를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서 정의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연계해서 이해하려고 하는 의도는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나아가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을 그가 하지 않은 방식으로 접합해서 읽는’ 비평적 사유에까지 독자들과 함께 나아가려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비단 에이젠슈테인 뿐 아니라 고다르와 바쟁, 그리고 영화의 역사와 이론에서 있었던 주요한 국면과 이론가, 비평가, 감독들의 논의, 현대 미디어 이론을 함께 다루며 이 책은 변화하는 영화와 무빙 이미지의 가능성의 조건들을 다시 검토하려 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소수의 연구자들 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 영역의 젊은 연구자들, 학생들, 창작자들을 영화와 영상을 이해하는 동시대적 문제틀로 이끈다. 이 책을 지금까지는 없었던 완고하고 밀도 높은 영화 ‘입문서’로 만드는 것은, 독자를 철저하게 믿는 필자의 투철한 희망이다. 그리고 이 책은 그 희망의 기이하고 단호한 궤적이자 증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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