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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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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장 ] 비비언 고닉 선집-0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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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12월 22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20쪽 | 376g | 116*182*22mm
ISBN13 9788967359836
ISBN10 8967359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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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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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엌, 그 창문, 그 안뜰. 그것은 엄마가 뿌리를 내린 대기였고 엄마가 서 있던 배경이었다. 이곳에서 엄마는 똑똑하고, 웃기고, 활기 넘쳤고, 권위와 영향력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당신을 둘러싼 환경을 경멸했다. “여편네들이란, 으이구!” 입버릇처럼 말했다. “빨랫줄 앞에
모여가지고 이 집 저 집 욕이나 하고.” 엄마는 여기 아닌 다른 세상, 진짜 세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가끔은 당신이 그 세상을 원한다고 생각했다. 아주 열렬하고 절실하게. 엄마는 집안일에 열중하다가도 갑자기 모든 동작을 일제히 멈추고,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몇 분 동안 싱크대를, 바닥을, 스토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세상이 어디 있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데? 그게 대체 뭔데?
--- p.25

침묵, 길고 긴 침묵이 흐른다. 우리는 또 한 블록을 같이 걷는다. 침묵. 엄마는 가까이도 멀리도 아닌 허공을 바라본다. 나는 길을 인도하며 엄마의 걸음에 발을 맞춘다. 말을 하지도 엄마에게 말을 시키지도 않는다. 또 한 블록 침묵이 흐른다. “그 조지핀 허브스트란 여자 말이다.” 엄마는 말한다. “그 여자는 행동했고 해냈어, 그치?” 안심하고 행복해진 나는 엄마를 끌어안는다. “그 여자도 자기가 뭘 하는지 몰랐을 거야. 엄마, 그래, 근데 해내긴 해냈어.” “부럽네.” 엄마가 툭 하고 내뱉는다. “그 여자가 자기 삶을 살았다는 게 부러워. 나는 못 그랬다.”
--- p.115

우리 주변으로 흩어져 있는 편지(엄마가 이걸 처음 읽었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알고도 남을 것 같다)와 사진, 이 종잇조각들, 모아둔 서신들, 그 속에 남긴 옛 이야기들은 엄마가 살았거나 살지 못한 삶에 대해 말하고 또 말한다. 특히 엄마가 살지 못한 삶에 대해서. 그날 저녁 내내 슬프고 고요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줄곧 엄마에게 내려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 밤 엄마는 무척 어여쁘게 보인다. 결이 고운 흰머리, 보드라운 피부,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처럼 보이는 주름지고 지친 노인의 얼굴. 하지만 지난 세월은 엄마를 엄마만의 세계로 끌고 가고 눈에는 다시 그 혼란이 찾아온다. 엄마를 놓아주지 않는 저 끈질긴 삶이라는 혼란.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저미는 듯해 그 고통을 감히 느낄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정말 그렇네.” 나는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엄마의 부드러운 얼굴이 결심이라도 선 듯 확고하고 단단해진다. 나를 보더니 강철 같은 목소리로, 이디시어로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네가 다 써봐라. 처음부터 끝까지, 잃어버린 걸 다 써야 해.”
--- pp.3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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