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4월 18일 |
---|---|
쪽수, 무게, 크기 | 274쪽 | 318g | 128*205*14mm |
ISBN13 | 9788932039985 |
ISBN10 | 8932039984 |
발행일 | 2022년 04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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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4쪽 | 318g | 128*205*14mm |
ISBN13 | 9788932039985 |
ISBN10 | 8932039984 |
MD 한마디
세상의 죽음을 탄식하는, '시인들의 시인' 김혜순의 시집. 그가 엄마와 이별하고, 코로나19라는 재난을 겪으며 써온 시들을 엮었다. 내내 서로의 언저리를 돌고 도는 죽음과 삶의 무한한 운동, 그 반복 가운데 더욱 짙어지는 생의 매일매일이 시 속에 선명하게 살아있다. -시 MD 박형욱
시인의 말 1부 지구가 죽으면 춤이란 춤 엄마 on 엄마 off 모음의 이중생활 죽으면 미치게 되는 건가 아파의 가계 흑마의 검은 얼굴 더러운 흼 체세포복제배아 엄마가 내 귓속에서 기침을 하는 엄마 백설 할머니 특공대 잊힌 비행기 인생의 마지막 필수 항목 세 가지 미지근한 입안에서 먼동이 튼다 검은 피아노의 사공 저 봄 잡아라 냉장고 호텔 흰머리 새타니 꼬꼬닭아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 멍멍개야 우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 빈집의 아보카도 엄마란 무엇인가 죽음의 베이비파우더 취한 물고기 민들레의 흰 머리칼 목젖과 클리토리스 죽음의 고아 거울이 없으면 감옥이 아니지 죽음의 유모 피카딜리 서커스 천 마리의 학이 날아올라 엄마는 나의 프랑켄슈타인 불면의 망원경 나는 엄마의 개명 소식을 들었다 2부 봉쇄 셧다운 죽은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꽃 erotic zerotic 고니 종鐘 속에서 3부 달은 누굴 돌지? 형용사의 영지 시인의 장소 내세의 마이크 결코후회하지않고사과하지않는육체를가진여자와 너무조용해서위로조차할수없는육체를가진여자와 주파수가다른곳으로떠난여자의 기원막대나선공명 포츠다머 플라츠 서울식 우주 다쉬테 도서관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우주엄마와 우리엄마 Yellowsand Blackletter Whitebooks *모래인 *시작 * 국가 * 피플 * 무한한 포옹 *언어 *눈동자 *몸과 몸 *경전 *모래증후군 *신기루 *별의 것 *결국 암탉의 소화기관 사막의 숙주 모래능 발 오아시스 사하라 오로라 아지랑이의 털 종 속 과 목 강 문 계 역 새는 왜 죽은 사람을 떠올리게 할까? 모래세안 모래화장 호스피스 정문에 과일이 왔어요 과일 소리치는 트럭이 도착하면 모래의 머리카락 진저리 치는 해변 눈물의 해변 불면증이라는 알몸 지하철 쇠 의자에 온기를 남기고 일어설 때, 나는 왜 부끄럽지? 해설 모래바람·박준상 |
죽는다는 것, 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일. 누구든 일생 한번밖에 경험할 수 없으니 경험담이라는 게 있을 수 없고 그래서 더 멀리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내게는 영영 일어나지 않을 일처럼. 그럼에도 가까운 이의 죽음을 맞았을 때는 더없이 절망하면서.
실려 있는 시들, 읽기 괜찮지 않다. 자꾸만 걸려 마음이 넘어진다. ‘엄마’라는 말 자체에도 멈칫 하게 되는데 엄마가 죽음을, 아니 죽음이 엄마를 붙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 제대로 읽을 수가 없다. 이건 좀 괴로운 의무감이다.
게다가 이 시집은 두꺼운 편이다. 시인이 들려 주고 싶은 말이 많았나 보다. 어쩌면 자신이 자신에게 들려 주려는 위로는 아니었을지. 엄마가 아프고 엄마가 죽을 것 같고 엄마는 죽고. 엄마의 자리에 세상 모든 아까운 이름들이 다 들어서도 달라질 게 없어 보이기만 하니 죽음이 이래서 공평하다고 한 것일까.
나는 이번에도 거리감 딱딱 유지하며 읽었다. 죽음 따위 나와 전혀 관계없는 것처럼. 건방진 내 태도가 불쾌하다며 언제 어떻게 혼내러 올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울리고 싶지 않다. 시에서라고 달라질 것 같지 않다.
11 그곳에도 눈물 속에 조가비가 자라나요? 바람과 불이 이리저리 뭉쳐 다니나요? 그러면 그것들이 꽃이 되기도 하고 토끼가 되기도 하나요? 239 모든 낮은 떠나갔지만 여전히 살아 있고 발톱처럼 머리카락처럼 이미 죽었으나 자라는 것들이여 예감의 슬픔이여 끝의 성자여 243 왜 우리는 바다와 눈 맞추기를 좋아하나 왜 우리는 산과 등지고 앉기를 좋아하나 |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
“오케스트라가 착석하면 / 승선 중인 단 한 명의 승객이 운다 // 언어는 항상 왜 뒤에 올까? / 시는 왜 그림자를 찍어서 쓸까?” - <잊힌 비행기> 중
그것은 갑작스런 하선이었다. 그것은 준비되지 않은 철거이자 다시는 개발되지 않을 영토로의 전락이었다. 나는 딱 한 번 아버지의 집을 나서면서 울음이 났지만 참았고, 그 이후로는 울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자꾸 울었는데, 특히나 너네 아버지가 자꾸 운다, 라고 엄마가 내게 이르고 나면 곧바로 울먹거렸다. 나는 거울을 보는 것 같아서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자꾸 고개를 외로 틀었다. 아버지가 잘 들렸다.
인생의 마지막 필수 항목 세 가지
엄마가 자꾸만 아빠가 곁에 있다고 한다. 시계를 쳐다보면서 10시 20분이라고 한다. 12시 10분인데. 엄마는 시계를 볼 줄 모르게 되었다. 엄마는 매시간 아빠가 떠나신 그 시각, 10시 20분에 멈춘 시계다. 아빠랑 둘이 목욕하려 했더니 우리 형제들이 다 목욕탕 안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다 씻기고 나니 더 피곤하게 되었다고 태연히 말한다. 내가 엄마를 씻겨줬는데 이런 말을 하다니. 정신줄 놓지 마. 정신에 무슨 줄이 달려 있다는 말인가. 엄마가 정신을 구부러진 빨대로 빨아 마신다.
창밖을 내댜보던 엄마가 나에게 말한다. 내가 거울을 보면 내 모습이 흐릿해져가는 것 같애. 얼굴이 제일 흐릿해. 죽은 사람이 곁에 있어서 그런가. 그러더니 창밖에 택시를 보고선 택시가 사람을 태우고 가려고 기다리네, 내가 탈까? 한다. 그러더니 택시 타고 우리 밖에 놀러 나갈까? 기저귀 찬 사람도 태워줄까? 내가 아프지도 않은데 왜 여기 있니? 그렇게 묻는다. 불쌍하다. 암만 봐도 엄마는 성숙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늘 하나님아빠의 어린 자녀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아주 어린 의사로부터 임종실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엄마 옆 침대엔 엄마보다 30세 어린 여자가 작은 새처럼 동그마니 앉아 있다. 항상 웃다가 눈물을 쓱 훔친다. 죽기 직전까지 사회생활을 하느라 저렇게 겸손하다. 정신줄보다 끈질긴 사회생활. 그는 너무 빨리 마른다. 휴대폰 보기와 텔레비전 보기. 건강한 사람 방문 받기. 이제 뼈만 남았다. 새만큼 먹는다. 의사가 혈관을 못 찾는다.
자원봉사자가 와서 엄마의 머리를 깎았다. 엄마는 일평생 헤어스타일에 신경 써왔다. 호스피스 침대에서도 머리를 감으면 헤어롤을 손수 만다. 엄마의 자존심은 염색한 까만 머리의 부드러운 컬에서 나온다. 엄마가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엄마의 머리를 자원봉사자가 가위도 아닌 바리깡으로 쓱 둘러 깎아버렸단다. 그것도 3초 만에. 엄마는 내가 밥 잘 먹었어? 하면 대답한다. 응, 요새는 밥 많이 먹어. 머리 좀 빨리 자라라고. 옆 환자가 웃다가 기절한다. 이들에게 폭소는 치명적 노동이다. 가슴뼈가 부러진다. 그 환자의 불쌍한 아들과 임신한 며느리마저 울다가 웃는다.
호스피스에서도 아침이면 밥 주고 점심이면 밥 주고 저녁이면 밥 준다. 찻잔에는 얼룩이 남고, 수건에는 물기가 남는다. 다른 것이 있다면 모두 지나치게 친절하달까. 엄마는 마치 새집에 이사 온 듯 나에게 나는 이런 곳에 살아. 여기서 눈 뜨고, 여기서 눈 감아, 하고 소개한다. 내 집에 들어와볼래? 하듯이 내 손을 끌어당긴다. 하늘에서 내려온 벽돌들로 지은 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내가 엄마를 쓰다듬는다. 한없이 쓰다듬는다. 엄마는 여기선 나를 설거지하듯 씻겨준다. 냄비처럼 씻어줘! 한다. 나는 엄마의 구멍들을 계속 물휴지로 닦아준다. 한 번 닦을 때마다 지문이 지워지는 물휴지가 있다. 남동생들이 슬픔에 절인 배추 시래기처럼 까칠해졌다. 엄마를 꾸벅꾸벅 보러 오는 키가 큰 동생들의 방문을 엄마는 좋아한다.
이제 아빠가 촌스러운 잠바를 벗고,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번듯하게 찾아온다고 좋아한다. 아직도 아빠의 양복들이 호텔의 테일러 숍처럼 늘어서 있는 엄마의 집에서 옷을 찾아 입고 온다고 좋아한다. 엄마는 우리에게 아직도 그 양복들에 손도 못 대게 한다. 아빠는 손톱이 한 손에 5천 개씩 달려 있는 천수관음처럼. 매일 손톱을 다듬었다. 아빠는 손톱깎이를 좋아했다. 엄마의 집을 정리하다 보니 손톱깎이 케이스가 백 개도 더 나왔다. 여러 용도로 사용되는 족집게들도. 내가 요새 아빠 안 찾아와? 물으면 엄마는 대답한다. 나는 이제 내 아빠와 네 아빠를 구별하지 못해. 둘이 똑같아, 한다.
시인의 시에서 엄마를 자꾸 (나의) 아버지로 바꾸어서 읽는다. 브레인 포그의 상황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온 아버지는 어린아이의 편식처럼 시간의 감각만 골라서 잃어버렸다. 여태 돌아오지 않은 마지막 감각, 아직 회복되지 않은 마지막 영토일 뿐이라고 우기고 싶지만 장담하지 못한다. 평생 아버지와 불화하였던 남동생은 안개 속의 아버지가 귀여웠다고 하였다. 많은 영토를 회복한 아버지는 이제 귀여움을 잃었다. 동생과 나는 안도하였다.
“늙은 엄마들이 자기보다 더 젊은 엄마를 / 엄마 엄마 부르며 죽어가는 이 세계 // 눈썹을 파르르 파르르 매미의 날개처럼 떨다가 / 불길처럼 솟구쳐 오른 젊은 엄마가 / 늙은 딸의 얼굴을 불태우고 가는 이 세계” - <먼동이 튼다> 중
지팡이를 짚은 아버지와 지팡이를 짚은 엄마와 함께 길을 나선다. 예전에 나는 내 멋대로 그들과 띄엄띄엄 걸을 수 있었다. 이제 나는 앞서가는 아버지와 뒤처지는 엄마의 중간에서 갈팡질팡하기 일쑤이다. 속도를 맞추는 일에 문외한이었던 부부의 말년이 오롯이 내 손아귀에 있는데 내 품이 작아서 문제이다. 앞서가는 아버지를 멈추게 하고 뒤처진 엄마를 기다린다. 따스한 햇살 아래 고분고분한 두 사람이 천천히 나로 수렴한다.
“엄마는 오지 말라고 한다. 이런 곳에 오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떠나려고 하면 언제 올 거냐 한다. 장의사에게 얘는 내일 올 거라고 한다. 1시가 아니라 2시쯤 올 거라고 한다. 나는 내가 알아서 올 거라고 한다. 그러면 다시 얘는 1시에 올 거라고 한다. 조금 있다가는 내일 안 오고 모레 안 오고 글피 안 온다고 했다고 서럽게 운다. 엄마 스스로 오지 말라 해놓고 서러운 거다. 그렇지만 다시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오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글피 오지 말라는 말은 내일 오라는 말이라는 것.
······
안 오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가면 얼른 가라고 한다. 얼른 가면 서운해한다. 더 있으면 가라고 한다. 나는 매일 계단을 내려간다. 내려가서 엄마를 보고 또 내려간다. 그리고 또 내려간다. 엄마는 누구는 아직 한 번밖에 안 왔고 누구는 아직 안 왔다고 한다. 자주 가면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 돌아가면 보고 싶다고 한 번만 다녀가라고 한다.” - <검은 피아노의 사공> 중
내게 내면이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로 언제나 아버지와 적대적이었다. 긴 시간 아버지가 모르는 전쟁을 치뤄왔다. 나는 사소한 전투에서조차 이겨본 적이 없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전시 상황임을 아예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전쟁의 종식을 선언할 수도 없었고, 그저 아버지가 알아차릴 필요가 없는 휴전의 시간만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가 손을 들어 항복을 외치고 있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제발 그 손을 내리세요...
“날마다 태양은 몇 사람을 삼키고 서쪽으로 돌아가나? // 태양마저 입속의 혀처럼 삼켜지면 / 엄마의 그림자만 한없이 부려진다 // 따끔따끔 검은 눈물 억만 개 / 그 아래 나무들이 가던 길 잃고 서 있다” - <서울식 우주> 중
많은 것이 나아졌다. 기온이 올라가자 아버지는 춥지 않아 좋다고 말하였고 많지 않은 양의 식욕이나마 되찾았다. 나는 슬픈 난감과 충돌 직전에 몸을 틀어 피했고 아버지는 나를 정확히 응시할 수 있게 되었으며 엄마의 정신은 마음껏 정상이다. 일은 언제나 벌어지고 나는 되도록 서둘러 수습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기대하지도 않고 절망하지도 않는다. 나는 상투적으로 늙어 가는 중이다.
호스피스 정문에 과일이 왔어요 과일 소리치는 트럭이 도착하면
호스피스 할머니들 꽃무늬 팬티 벗어 휘날리며 밖으로 달려 나오고
링거대에 호박 수박 참외 매달고, 휠체어에 지팡이 매달아 밖으로 달려 나오고
젖가슴은 딱딱해, 젖꼭지는 아파, 딸기 자두 사과 가슴 앞에서 솟아오르고
사과는 계속, 계속 정오를 알리고
호스피스 할머니들 몸속에서 씨앗이 터지고 그 씨앗들 마음 급해 우선 꽃 같은 미소부터 침대마다 피어
침대에서 솟아오른 과일나무들이 호스피스 가득 일렁이고
나는 뭉그러져 썩은 열대 과일들을 종류대로 뜨거운 쟁반에 담아 들고
온 얼굴에 암이 퍼진 소녀는 매일 아침 양쪽 어깨에 물지게를 지고 물을 나르고, 그 소녀의 물을 마시면 하루만에 과일나무마다 과일이 탐스럽게 열리고 그 과일을 먹으면 누구나 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퍼지고
갓 죽은 할머니는 처마 밑에서 그 물을 받아먹으며 점 점 점 어려지고
그렇게 그렇게 작아진 난자가 이번 달은 이번 달은 태어나지 않았으니 얼마나 좋아 하고 있고
모래밭에 떨어뜨린 그 난자 하나를 찾아야 한다고 간호사는 우왕좌왕하고
그리고
호스피스는 다시 하얀 암전
김혜순 / 지구가 죽으면 달은 누굴 돌지? / 문학과지성사 / 274쪽 /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