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스마트폰, 결국엔 사람을 잡고 말지!”
버스 안, 거슬리는 목소리가 내게 경고를 날렸다. 내 앞에 선 할아버지가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할아버지에게선 양말 고린내와 상한 커피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내 스마트폰의 운명을 어떻게 저렇게 확신하신대.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 내 손 안의 작은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이 훨씬 중요하니까.
지금 메건이 케일 카루소에 관해 문자를 보내오고 있다. 케일 카루소. 현재 내 일기장 속지에 한껏 멋낸 글씨체로 쓰여 있는 이름. 물론 그 옆엔 내 이름이 있다.
케일은 할리를 사랑한다. 케일 프린스-카루소 부인, 할리와 케일, 영원히
마지막 말은 화살이 관통하는 하트 안에 썼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 시작될 참이었다.
--- p.5
나는 호흡이 점점 느려졌다. 그리고 마지막 한 모금을 들이쉬었다. 이제 숨 같은 건 더는 필요 없나 보다. 그 대신에 몸이 떠올랐다. 두둥실 떠오르더니, 바람에 나부끼는 풍선처럼 느닷없이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눈밭에 널브러져 있는 내 몸이 보였다. 하얀색 구급차와, 들것에 실리는 여성도 보인다. 옅은 금발에, 푸른빛이 돌 만큼 창백하고 새하얀, 주름진 얼굴이다.
‘저 할머니가 운전한 거야?’
억울한 생각이 뜨겁게 치솟았다.
운전할 나이는 지났잖아.
그리고 눈앞이 까만 액체로 덮였다.
--- p.13
“이 놀이공원의 주인이시죠? 그러니까 뭐든 마음대로 바꿀 수 있잖아요. 우리 교통사고도요. 우리 둘 다한테 기회를 주세요.”
끝에 가서는 너무 부탁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전략을 바꾸고 목소리 톤도 바꾸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다시 살아난다면 전 이 할머니하고 사이좋게 지내면서 교통사고 문제도 입증할 수 있어요.”
“이 할머니 이름은 수전 맥밀런이다. 네 이름은 뭐니?”
“할리 프린스요. 안녕하세요.”
“이런 상황에서 너나 나나 무슨 수로 안녕하겠니. 엘리, 안 그래요?”
수전 할머니가 엘리를 보며 말했다.
“허리케인은 위험한 차예요. 사지 모터스가 결함을 인정하고 고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쳐요. 할리가 도와주면 내 말을 믿어 줄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엘리는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 활짝 웃었다. 저 웃음을 믿어도 될지 모르겠다.
“여러분의 의견을 수용하겠습니다. 내키지 않으면 롤러코스터는 안 타도 돼요. 두 사람 다 다른 결말을 맞게 될 거예요. 상상을 뛰어넘는 결말을요.”
--- p.20~21
나는 긴 머리 웨이트리스 버전의 엘리를 빤히 쳐다보며 할리와 거의 같은 질문을 속으로 던지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더 이 몸에 있어야 하는 건가요?’
나는 같은 질문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한다. 그것보다 먼저 하는 질문도 있다.
‘내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건가요?’
그런데 지금은 불평이 아니다. 나는 이 부드럽고 매끈하고 젊은 몸 덕분에 행복하다. 오늘, 나는 삶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란다. 아무 데도 아프지 않고, 온몸이 건강하다. 눈, 귀, 치아, 목소리까지. 가엾은 할리는 젊은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어 미칠 지경인 것 같지만, 그런 할리를 탓할 수는 없다. 각질이 비늘처럼 일어난 내 늙은 피부가 내가 그랬던 만큼 끔찍할 테니까.
엘리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원한다면 지금도 놀이공원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크리스마스는 그곳에서 맞죠. 둘 다 롤러코스터를 타면서요.”
엘리는 정말 그럴듯한 여성의 모습이었다. 갈색 눈동자에 황금빛 같은 것이 반짝인다. 등까지 늘어뜨린 길고 까만 머리칼은 건강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그나저나 저 어린아이를 이렇게 놀려야만 할까?
“저 정말로 제 진짜 인생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할리는 투덜거리며 금발을(나는 머리카락을 회색으로 두는 것이 싫다. 백 살이 넘는다고 해도 그럴 것 같다) 손가락으로 빗어 넘겼다. 손가락이 중간에서 걸렸다. 이 아이는 짧은 머리가 익숙한 것이다. 머리가 짧으면 손가락만으로 빗어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지금의 가늘고 긴 저 머리는 다르다.
--- p.64~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