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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 끝의 아이들

붉은 실 끝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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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1월 24일
쪽수, 무게, 크기 224쪽 | 260g | 128*195*15mm
ISBN13 9791191842128
ISBN10 119184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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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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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는 흘끗 유리를 보고 씩 웃었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미소가 다른 사람의 것보다 빠르게 흩어지는 느낌이 유리를 스쳐 갔다. 아, 잘 안 보인다는 게 이런 거구나. 뭔가를 해도, 하지 않아도, 정물처럼 늘 거기 있던 것같이 희미했다. 존재감이 적은 게 아니라, 생명력 자체가 적다는 느낌이 들었다. 흔들흔들, 언제 꺾여도 말라도 이상하지 않을 들풀처럼.
--- p.25 「3 희미한 아이」 중에서

문득 ‘에오’가 이야기해 준 붉은 실 생각이 났다. 자신과 자신보다도 강하게 이어진, 자신과 다른 초능력자가 있을 거라는 말. 에오를 만났을 때는 유리가 어렸기에 그것이 운명의 상대, 연인 같은 거라고 막연히 짐작했었다. 하지만 시아와 자신 사이에도 그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비록 노리개처럼 고운 매듭은 아니더라도.
--- p.26 「3 희미한 아이」 중에서

‘우리’가 그랬지. 다른 우주에서도 시아와 나는 엮여 있다고. 붉은 실처럼. 유리는 그게 무슨 말인지 닷새 전만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같은 학교 같은 학년 같은 반. 그 외 무언가를 같이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와 엮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런데 50여 시간 남은 지금, 자신은 그 애의 죽음을 막겠다고 한밤중 학교에서 땀 밴 손을 깍지 끼고 있었다.
--- p.129 「8 분필 굴러가는 소리가 아니야」 중에서

사랑이라. 유리는 멍한 와중에 생각했다. 사랑인가? 이렇게 앞뒤 없이 위험한 일을 저지르는 게, 사랑인가?
처음엔 그냥 걱정되는 마음뿐이었다. 그다음에는 너네가 뭔데, 운명이 뭔데 얘까지 건드리냐는 짜증이 섞였다. 시아가 자신의 걱정을 가져가려 시도한 다음에는 딱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 게 다 섞이면 사랑이 되나?
--- p.155 「9 걱정 없는 밤길에」 중에서

“괜찮아. 내가 걱정되는 길로만 가면 낭떠러지야.”
“낭떠러지를 찾아가는 여행이라니.”
“미안해. 이런 식으로 걱정하는 사람이라.”
--- p.158 「9 걱정 없는 밤길에」 중에서

대신 걱정해 주는 능력. 자신이 말하면 시아는 그것을 걱정하고, 그러므로 걱정은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유리는 울음을 참으며 속으로 말도 삼켰다. 목구멍으로 자꾸만 치받고 올라오는 말. 울음 섞인 말.
제발 너를 걱정해.
네가 죽을까 걱정해.
내가 너를 죽일까 걱정해.
제발. 제발. 제발.
--- p.196 「11 온 우주가 바라는 죽음」 중에서

“이런 지구 망해도 상관없어.”
토토가 손을 뻗어 창문을 열고 방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씩 웃으며 유리의 뺨을 가볍게 때렸다.
“너한테나 상관없겠지. 한꺼번에 확 사라지는 낭만적인 멸망 같은 건 오지 않아. 한 명씩, 가장 취약한 계층부터 비참하게 죽을 거야. 살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다가. 마지막 인간의 존엄성을 내버려 가며. 그런 미래를 방관하긴 싫어.”
--- p.201 「11 온 우주가 바라는 죽음」 중에서

“가자.”
유리는 속으로만 덧붙였다. 우주가 더 이상 출렁이지 않는 곳으로. 우리가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너의 멸망으로.
--- p.218 「13 너를 혼자 두지 않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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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혜 작가는 어떻게 이렇게 십 대의 영혼 한가운데에서 이야기를 그려 내는가.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세상 전체를 등에 짊어지고 산다. 상처받고 아프지만 친구를 구하기 위해, 세계를 구하기 위해 쉼 없이 뛰어다닌다. 어른의 눈으로 내려다보며 손가락질하지도 않고 바닥에 드러누워 울며 투정하지도 않는다. 어른이 된 아이의 마음으로 주위의 친구들을 그저 끌어안는다. 왜 이 작가가 청소년에게 그토록 사랑받는지 새삼 또 깨닫는다. 그렇기에 그는 십 대 시절에 위로받지 못한 어른의 마음까지 같이 위로해 준다. ‘나’, 그리고 나와 붉은 실의 인연으로 이어진 시아는, 특별한 힘이 있지만 그렇기에 이해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시아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쓸데없이 걱정하는 아이 취급을 받지만, 실은 걱정으로 그 일을 일어나지 않게 하며 남들을 돕고 있다. 하지만 세상 전체를 구하려면 그의 희생이 필요하고, 나는 그 일을 감당해야만 한다.

아무도 겪지 않았으면 싶은 잔혹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도, 마치 누구나 어렸을 적에 다 겪었을 아픔처럼 느껴진다. 온갖 환상적인 세계를 넘나들며 초능력 대결을 펼치는데도, 어째서인지 지금 어디선가 아이들이 겪고 있을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전삼혜 작가의 신비로운 힘이다. 하나의 붉고 짙은 인연은 여러 세계에서 다채로운 사랑으로 전개되고, 그 다양한 가능성의 우주는 하나하나가 빛나는 단편이기도 하다. 책을 덮으며, 우리가 지금 만나는 인연들을, 그들과의 여러 다른 세계에서의 색다른 삶을 상상한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우리를 돕고 지켜 주고, 구원해 주는, 작은 신과도 같은 강한 사람들을.
- 김보영 (소설가, 『얼마나 닮았는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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