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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단골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

어른이 되면 단골바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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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3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284g | 125*190*17mm
ISBN13 9788932321981
ISBN10 893232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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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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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서른다섯. 요리 보고 저리 보아도 어른인 나는 그렇게 어릴 적 희망을 종이비행기에 접어 날려 보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집도, 차도, 노후 대비도 아스라이 사라졌다. 그런 소망을 가질 때 당연히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지금 내게는 없다. 집이 없고, 뚱뚱한 지갑이 없고, 근사한 할머니로 늙기 위한 연금이 없다. 나의 노년에도 지구가 안전하리라는 보장이 없고, 혐오가 놀이가 된 시대에 무사히 나이 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없다. 안전한 미래는 지난주에 길을 걷다 도둑맞았고, 눈부신 희망은 어제 드라이마티니와 바꿔 먹었다.
--- 「머리말」 중에서

애호하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깊고 넓은 세계가 있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살펴야만 보이는 세계, 손으로 더듬어야만 느낄 수 있는 세밀한 결, 여러 번 곱씹고 음미해야만 알 수 있는 기쁨이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 사람이 보는 세상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믿는다. 사랑에 빠지는 일은 아무리 계속해도 질리지 않는다. 온 마음을 다해 무언가를 좋아해 본 사람은 알지 않을까. 그 마음으로 인해 세상이 달라진다는 걸.
--- 「머리말」 중에서

시 한 편을 쓰는 것보다 26주짜리 카카오 적금을 드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질 때, ‘결국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니겠냐’는 말에 일의 의미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을 때 간다. 내 삶의 디폴트값이 늘 월세나 연금 따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을 때, 아무리 영화를 보고 글을 써도 삶의 의미를 묻지 않게 될 때 간다. 그러니 어찌 보면 칵테일을 마시는 일이란, 정말 사치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 「마시는 만큼 우리의 세계는 넓어질 테니까」 중에서

바의 이름은 낮섬(낯섦)이었다. 낮의 주인이 카페인 낮섬을 운영했고, 밤의 주인인 내가 바 낯섦을 운영했다. 낮에는 한적한 섬 같은 곳이었으면 했고, 밤이면 모든 게 낯설어지는 공간이길 바랬다. 나는 그곳에서 여름가을겨울봄 그리고 다시 여름, 계절이 한 바퀴 돌 때까지 칵테일을 팔았다.
--- 「바에 앉아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대하여」 중에서

내일 종말이 오면 마셔야 할 술 역시 직관적인 해석을 더해서 나는 위스키 플로트를 만들기로 한다. 잘 깎은 얼음을 넣은 잔에 미네랄워터를 70%정도 따르고, 바 스푼을 뒤집어 물 위에 위스키를 살살 띄워준다. 투명한 물 위로 갈색 위스키가 층을 이루는 모습이 아름다운데, 종말을 맛보고 싶다면 스트레이트로 마시길 권한다. 금방 정신을 잃어 세상이 끝나는 줄도 모를 수 있을 테니까.
--- 「낯섦의 술 처방」 중에서

아픈 사람 앞에서 칵테일을 마신다는 건 어쩐지 못할 일 같다. 우리는 저마다의 감옥에 살고, 모두에게는 각자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가 있다지만, 누군가의 십자가는 외면할 수 없을 만큼 더 커 보인다. 어째서 사람마다 지닌 고통의 평균값은 이렇게도 다른 건지. 왜 그냥 주어진 대로밖에 살 수 없는 건지. 그런 생각을 할 때면 종교를 가지고 싶어진다. 이 부조리함에는 마땅히 이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삶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태도뿐이라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사실이다.
--- 「인생 술 총량의 법칙」 중에서

취향을 얻기 위해 경험을 하고, 경험을 얻기 위해 지갑을 여는 건 내가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하는 일이다. 손에 남지도 않는 일을 위해 돈을 쓴다고 이모는 타박을 했지만, 고집스러운 경험주의자의 기를 꺾지는 못했다. 물건을 산다고 해서 내가 그 물건의 이미지처럼 변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경험은 나를 본질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경험 소비여, 번영하라!
--- 「경험주의자의 소비」 중에서

에그시의 마티니는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 레시피와 정반대다. 보드카 대신 진, 흔들지 말고 저어서. 그는 아마 ‘젓지 말고 흔들어서’에 질릴 대로 질렸으리라. 다들 제임스 본드의 마티니를 기억한다 이거지? 나는 킹스맨의 마티니를 기억하게 해주겠어. 이런 마음이었을 수도 있다. 티스비가 10년이 넘게 한 연극 생활을 접고 갑자기 가게에서 일하는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게 그에게 맞는 옷일 거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티스비는 자신인 채로 사랑받을 수는 없는 걸까. 상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바꿔야만 사랑할 수 있는 거라면, 그게 티스비에게 맞는 사랑일지도 알 수가 없었다.
--- 「마티니를 마시고 싶은 기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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