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 실종 사건,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
”사라지려면 같이 사라지지, 하나만 사라질 순 없어.“
벌통을 열어 본 양봉 농민들은 깜짝 놀랐다. 꿀벌들로 가득해야 할 벌집이 텅텅 빈 것이다. 2022년 봄에만 전국적으로 최대 꿀벌 100억 마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꿀벌이 사라지자 벌꿀 생산량이 10년 전의 3분의 1 밑으로 내려갔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 100종 중 70종 이상이 꿀벌이 꽃가루를 옮겨 줘야 열매를 맺는다. 딸기 생산량이 줄어 ‘금딸기’가 된 일에 꿀벌이 사라진 현상도 한몫하는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우리의 식량도 사라지고, 결국 우리 인간들도 사라진다.
『로봇 벌 알파』는 지구 환경이 오염돼 꿀벌이 거의 다 사라진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꿀벌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 벌, 알파는 사라진 줄 알았던 진짜 꿀벌, 썬을 만나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썬은 ”모든 생명들은 죽어서 흙이 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일부가 되지.“라고 말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돌고 도는 자연의 동그라미’에서 누구 하나만 사라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강하고 영원한’ 것이 최고라 생각했던 알파는 썬과 함께하며, 노랗게 고개를 내미는 해와 별빛 가득한 밤하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역경을 무릅쓰고 꿀벌을 살리려는 노력과 희생으로 이어진다.
이 책은 근미래의 이야기이지만, 꿀벌이 사라진 현실을 동일하게 겪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주인공 알파처럼,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이미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에 맞서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책은 그런 아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응원을 더해 줄 것이다.
지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돌아보게 하는 책
비용과 생명, 무엇을 택할 것인가?
글로비를 만든 기업 연합, 얼스피스의 ‘안경 낀 연구원’과 ‘곱슬머리 연구소장’은 비밀 실험 끝에 ‘라인백 프로그램’을 알파에게 설치한다. 라인백 프로그램은 꿀벌을 찾아내기 위해 만든 것인데, 두 사람의 목적은 극명하게 갈린다. 안경 낀 연구원은 얼스피스 관계자들과 꿀벌을 없앨 방법을 논의한다. 친환경 기업이라는 탈을 쓰고 있지만, 얼스피스 기업들은 글로비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꿀벌이 모두 사라지길 원한다. 반면 곱슬머리 연구소장은 꿀벌이 멸종되기 전에 찾아 보호하려 한다.
”지키는 것보다, 완전히 새로운 걸 창조하는 게 비용이 덜 듭니다.“라는 연구원의 기계 같은 말에, 연구소장은 ”자연을 버리면 우리의 미래는 없어!“라고 응수한다. 평상시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는 말하지만, 일상에서는 싸고 간편한 일회용품을 선택하곤 하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된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 편리함만 생각하는 자세는 결국 돌고 돌아 미세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 같은 문제로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처럼 『로봇 벌 알파』는 대립되는 두 인물을 통해 아이들에게 지구에서 살아가는 한 생명으로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꿀벌이 사라지는 것이 나와 상관없는 먼 훗날, 먼 곳의 일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사는 우리의 생각과 의지의 문제임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의미 있는 삶과 더 나은 미래를
평범한 글로비와 달리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알파와 베타는 늘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라인백 프로그램에 오류가 나 버려졌던 베타는 쓸모 있는 존재가 되려고 얼스피스의 계획에 따른다. 이와 달리 알파는 한 번 사라지면 끝인 꿀벌을 지키는 길을 선택한다.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듯, 알파는 꿀벌을 지키기 위해 험난한 모험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알파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체험했고, 친구들을 얻었다. 더불어 생명 없는 ‘로봇’을 초월하는 힘을 자기 안에서 발견했다. 반면 베타는 인간의 쓸모에 맞춰 흉악한 모습의 말벌이 되어 꿀벌을 죽이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버려지는 게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니, 인간들이 원하는 대로 되고 말았어.“
베타는 뒤늦게 후회하며 절망한다.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다행히 앞으로 다른 선택을 해 나갈 수 있다. 말벌이 된 베타가 알파에게 꿀벌을 살리기 위한 정보를 전하기로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는 뜻깊은 선택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꿀벌 데이지와 여왕벌의 선택이다. 데이지는 타고난 운명대로 사는 삶에 늘 불만을 가졌다. 일벌로 태어나면 평생 일만 하다 죽어야 하는 신세이고, 여왕벌로 태어나면 아무 공로 없이 여왕이 되는 현실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삶을 거부하기로 선택하고 벌집을 떠나려는 데이지에게 여왕벌은 새 여왕벌의 교육을 부탁한다.
”선택한 대로 살 수 있는 건 행복한 거야. 하지만 데이지, 정해진 운명에 순종하며 사는 삶을 무시하지는 말아 주렴. 그렇게 사는 꿀벌이 있어야 우린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단다.“
여왕벌은 꿀벌의 역사가 이어지도록 희생해야 하는 운명에 순종하기로 선택하고, 말벌 군대와 맞서 싸운다. 각기 다른 선택이지만 데이지와 여왕벌 모두 진정 의미 있는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준다.
이처럼 이 책은 ‘선택’이라는 철학적인 주제를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지닌 사연을 토대로 여러 관점에서 풀어냈다. 또한 ‘꿀벌’과 ‘로봇’이라는 아이들에게 친숙한 소재를 활용해, 가볍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아이들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도록 이끈다. 『로봇 벌 알파』를 통해 아이들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뿐 아니라,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선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