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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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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5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440g | 132*225*19mm
ISBN13 9788937464041
ISBN10 893746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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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이야! 그런데 너의 아버지는 멋진 사나이더군. 쓸데없이 시를 읽고 영지 경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것 같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야.”
“우리 아버지는 황금 같은 인간이지.”
“네 아버지가 얼마나 소심한지 눈치챘어?”
아르카지는 마치 그 자신은 소심하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놀라운 일이야.” 바자로프가 계속해서 말했다. “이 진부한 낭만주의자들이라니! 자신의 신경계를 흥분 상태로 몰아가고…… 뭐, 그러다 균형이 깨지지. 그나저나 잘 자! 내 방에는 영국식 세면대가 있는데 문은 안 닫히네. 어쨌든 그건 장려할 만해. 영국식 세면대 말이야. 그건 곧 진보니까!”
--- p.36

“그는 니힐리스트예요.” 아르카지가 다시 한번 말했다.
“니힐리스트.” 니콜라이 페트로비치가 중얼거렸다. “그건 무(無)라는 뜻의 라틴어 니힐에서 나온 말이구나. 내가 판단할 수 있는 한에서는 그렇다. 그러니까 그 말은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뜻하는 거냐?”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는’이라고 말해야지.” 파벨 페트로비치가 동생의 말을 받아치고는 다시 버터를 바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에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사람이죠.” 아르카지가 지적했다.
“똑같은 것 아니냐?” 파벨 페트로비치가 물었다.
“아뇨, 똑같지 않아요. 니힐리스트란 어떤 권위에도 굴복하지 않는 사람, 하나의 원칙, 설사 그 원칙이 사람들에게 아무리 존경받는 것이라 해도 그 원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에요.”
--- p.45

“훌륭한 화학자는 그 어떤 시인보다 스무 배는 더 유익합니다.” 바자로프가 끼어들었다.
“그렇군요!” 파벨 페트로비치가 웅얼거렸다. 그는 막 잠들 것처럼 눈썹을 살짝 추어올렸다. “그렇다면 당신은 예술도 인정하지 않겠군요?”
“돈 버는 기술을 말하나요, 아니면 그까짓 치질을 고치는 기술을 말하나요?” 바자로프는 경멸조로 비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 p.51

“우리는 우리 스스로 유익하다고 인정한 것을 위해 행동합니다.” 바자로프가 말했다. “오늘날에는 부정이 무엇보다 유익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정하는 것이고요.”
“모든 것을?”
“모든 것을요.”
--- p.91

“브라보! 브라보! 들어 봐라, 아르카지……. 현대의 젊은이들은 바로 저런 식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 거란다! 생각해 보렴, 그러니 어떻게 그들이 너희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니!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무식하다고 소문나는 게 싫어서 싫든 좋든 노력을 했지.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냥 ‘세상의 모든 게 다 부질없어!’라고만 하면 돼. 그럼 그걸로 끝이야. 젊은이들은 기뻐하지. 그리고 사실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이 그저 얼간이에 불과했는데 이제는 갑자기 니힐리스트가 되어 버렸구나.”
--- p.99

“(……) 넌 우리의 쓰라리고 괴롭고 고독한 생활을 위해 태어난 게 아니야. 너에게는 오만함과 적개심이 없고, 젊은 용기와 젊은 혈기가 있지. 그런 건 우리 일에 맞지 않아. 너희 귀족들은 고상한 겸손이나 고상한 흥분을 넘어서지 못하지. 하지만 그 모든 건 다 하찮은 것들이야. 예를 들어, 너희 귀족들은 서로 주먹질도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우리는 싸우기를 원하지. 그럼 어떻게 될까! 우리의 먼지가 네 눈을 파고들 테고, 우리의 진흙이 널 더럽히겠지. 그래도 넌 우리만큼 성장하지 못했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도취하고, 또 스스로를 비난하며 쾌감을 느껴. 그런데 우리는 그런 게 지겹거든. 우리에게 다른 종류의 인간들을 내놓으란 말이야! 우리가 무찔러야 할 대상은 다른 인간들이라고! (……)”
--- p.318

이 묘에 예브게니 바자로프가 묻혀 있다. 멀지 않은 작은 마을에서 이미 노쇠한 노부부가 종종 이 묘를 찾아온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무거운 걸음으로 걸어온다. 철책으로 다가온 그들은 털썩 쓰러져 무릎을 꿇은 채 오래도록 비통하게 울고, 아들이 누운 자리에 놓인 말 없는 돌을 한참 동안 유심히 바라본다. 짧은 말을 몇 마디 나누고, 돌에서 먼지를 털어 내고, 전나무 가지를 다듬고, 다시 기도를 한다. 그러고 나서도 그들은 이 장소를 떠나지 못한다. 이곳에 있으면 아들과, 아들에 대한 추억과 좀 더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기도가, 그들의 눈물이 과연 부질없단 말인가? 사랑이, 성스럽고 헌신적인 사랑이 과연 전능하지 않단 말인가?
---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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