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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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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8월 25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32쪽 | 212g | 112*190*15mm
ISBN13 9791167901255
ISBN10 116790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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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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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던 방을 보고 싶지만 지금 살고 있는 사람에게 실례일 것 같아 그냥 전체를 본다. 이 집에 대한 익숙함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걸, 올 때마다 느낀다. 전엔 할머니는 여전히 이 집에 계실 것 같고, 나만 멀리 떨어져나온 것 같았는데 요즘엔 할머니가 지금 나의 집에 같이 있는 것 같은 마음도 든다. 떠올리면 언제든 내 곁에 있는 것처럼.
--- p.15

이 공간엔 언니와 나, 둘뿐이다. 사람들 속에 있는 것도 좋지만 고요한 방 안에 혼자 있는 것도 좋아지는 요즘이다. 혼자 살 때는 오히려 느끼지 못했던 기분. 시원하게 몸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 방에 누우면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 되는 기분이다. 이 세상에 내가 있구나. 나라는 사람이 숨을 쉬고 있구나. 여러 모습으로 여러 마음으로 종일 말하고 움직이다가, 몸과 마음에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나인 채로, 나로 살아 있는 상태로 나 자신이 되고 내 세상이 되는 것.
--- p.37

어릴 때 나는 잘못을 했을 때 야단을 맞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 내가 잘못을 하고, 야단을 맞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다시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밤엔 날 안아주고 그런 일은 없었지. 부모라고 자식을 다 사랑하는 건 아닌가 보다 하면서도 나는 왜 매일 사랑을 바랐을까 모르겠어. 다행히 이제 더는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 그냥 그랬나 보다, 하게 되어버린 일일 뿐. 물론 왜인지 온전히 편안한 인생은 아닌 느낌이 들지만. 이대로도 괜찮도록 살아봐야지, 할 뿐이야. 어느 날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날 괴롭히는 기억들이지만 대부분의 날들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지나갈 수 있는, 그런 일과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 pp.53~54

원하는 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언니는 어디로 돌아가고 싶어 할까 생각해보던 밤. 묻지는 않고 혼자서 짐작해보던 밤이었다. 나는 어느 때로도 돌아가고 싶지 않고, 언니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잠든 언니 옆에서 하모니카로 생일 축하 노래를 최대한 작게 연주해봤다.
--- p.69

그날은 딱 이 정도로 쌀쌀한 날이었다. 어제의 쌀쌀함도 내일의 쌀쌀함도 아니고 딱 오늘 정도의 쌀쌀한 온도와 바람. 나만 알 수 있는 똑같은 날씨를 만나면 나는 잠시 그 어느 날로 돌아간다. 돌아가서 따뜻한 밥과 국과 물과 아이스크림과 새 칫솔을 떠올린 뒤 다시 나온다.
--- pp.94~95

잊고 살다가도, 차근히 할 일을 하며 살다가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종종 그날을 떠올리면 죄인이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들을 보냈어. 없던 일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닌데. 서른 즈음에 알았어.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더라도 엄마에겐 따뜻한 말을 듣고 싶었다는 걸.
--- p.102

밥을 잘 먹고 잠을 잘 자고, 그게 사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자주 쓰거나 대단한 미래를 꿈꾸며 살지는 않지만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어차피 바꿀 수 없고 오늘 나는 그 어느 날의 나보다 괜찮으니까.
--- pp.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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