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8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376쪽 | 580g | 153*224*19mm |
ISBN13 | 9791156122289 |
ISBN10 | 1156122287 |
발행일 | 2022년 08월 31일 |
---|---|
쪽수, 무게, 크기 | 376쪽 | 580g | 153*224*19mm |
ISBN13 | 9791156122289 |
ISBN10 | 1156122287 |
머리말 프롤로그 세조 연보 1. 권력을 찬탈하다 1장 세종의 아들 1. 이유의 탄생과 성장 ● 아버지 충녕대군|부왕 세종|세종의 여러 아들 중 하나|태조의 현신 2. 대군, 그 이상 ● 왕자 이유의 국사 참여|수양대군의 대두 2장 문종의 동생, 단종의 숙부 1. 형과 아우의 공생 ● 협력 혹은 견제|문종의 요절 2. 수양의 고립 ● 단종 즉위|의정부 사람들|인사 전횡: 황표정사|안평과의 갈등|고명 사은사행 3장 계유정난, 핏빛 서사 1. 수양의 사람들 ● 한명회·권람|신숙주|홍윤성|양정·홍달손 2. 수양, 단기로 나서다 ● 정변의 징조|호랑이 등에 오른 편 가르기|계유년 그날 4장 수양 천하 1. 정난의 결과 ● 영의정부사 겸판이병조사 수양|정난공신 책봉 2. 이징옥의 난 발발과 진압 ● 김종서의 사람 이징옥의 반발|중외병마도통사 수양의 군사권 장악 3. 세조의 즉위 ● 단종의 양위: 세조의 즉위|왕실의 확립|좌익공신 책봉 2. 권력으로 강제하다 5장 권력 구조의 개편 1. 6조 직계제의 부활 2. 하위지와의 갈등 ● 하위지의 반대|이계전의 수모 6장 상왕 복위 모의 사건의 진압 1. 발단 ● 김질의 고변|성삼문과의 대질|하위지·이개·박팽년의 연루 2. 전개 ● 모반 대역|집현전 혁파|상왕 단종의 연루 3. 결과 ● 효수|사육신 4. 영월의 노산군 ● 금성대군의 역모|상왕 단종, 노산군으로 강등|노산군의 죽음 7장 난언의 횡행과 처벌 1. 정권을 부정하는 난언들 2. 난언의 실상 ● 왕실의 저주|불궤의 도모 3. 난언의 정치적 파장 ● 친세조 종친의 연루|공신의 무함 8장 훈척 중심의 국정 운영 1. 훈척의 형성 ● 수빈 한씨의 아버지 한확|장순왕후의 아버지 한명회|의숙공주의 시아버지 정인지 2. 체찰사제의 운용 ● 인사 전권 행사|훈척 중심의 국정 처결|윤자운의 사례 9장 전 국토의 충실화: 사민 1. 북방 영토의 개척 ● 4군과 6진과 행성|세종 대의 사민 2. 소복책의 강구 ● 4군 폐지|하 삼도민의 북방 이주 10장 자전자수의 이상: 진관 체제의 확립 1. 진관 체제의 성립 ● 익군과 군익도|군익도 체제의 전국 확대|진관 체제의 확립 2. 군정의 확보 ● 군역|호패법|군정의 추쇄|보법의 실시 11장 여진 정벌: 위의의 강조 1. 경진북정 ● 야인정책|경종의 필요성|모련위 정벌 2. 정해서정 ● 건주위|건주위 추장 이만주 참살 3. 권위를 가탁하다 12장 천제의 친행 1. 세조 이전의 원단제 ● 태조~태종 대 원단의 기우·기곡제|세종 대 원단제의 논란| 2. 환구제의 친행 ● 준비|친제 13장 연석 정치 1. 경연과 강무의 운용 ● 군왕 존엄의 강조|공신의 무례와 세조의 경고 2. 술자리의 정치성 ● 국정 운영의 장|불경·무례의 난무 14장 지방 순행 1. 순행의 목적·준비 ● 민정의 파악과 군정의 감찰|준비 2. 황해도·평안도 순행의 실제 ● 사전 조치|여정 3. 순행의 실효 ● 지방 통치의 감찰|친왕 세력의 확보|위의의 과시 15장 불교적 신이와 상서 1. 불사의 주역 ● 호불의 군주|불경의 언해와 편찬 그리고 신미|원각사 건립 2. 사리 분신과 서기 ● 관세음보살의 현신|서기|생불의 출현 16장 편찬 사업과 국가 재정의 표준화 1. 율령을 넘어서는 전장제도의 모색: 만세성법의 편찬 ● 『경국대전』 편찬의 전사|『경국대전』 편찬 2. 조선 건국의 정당성 완결: 『동국통감』 편찬 ● 정도전의 『고려사』|세종의 『고려사』 편찬 곡절|『동국통감』의 편찬 3. 세입·세출의 표준화 ● 공안과 횡간|횡간의 제정 4. 권력과 권위가 충돌하다 17장 역린 1. 선위 권유 ● 정창손의 파직|정인지의 능상·불경 2. 공신의 역모 ● 봉석주의 역모|양정 참살 3. 세자의 대리 ● 발영시·등준시|탐주|원상제의 실시 18장 권신 전천의 경고: 불경과 신임 사이 1. 이시애의 난 ● 함길도의 동향|이시애의 반란|정토군의 편성과 출정|공방|북청 거산 전투|진압 2. 한명회·신숙주의 위기 ● 남용신의 환열|군군신신의 경고 19장 공신 사이의 대립 1. 적개공신의 대두 ● 새로운 충신의 등장|적개공신 책봉 2. 신구 공신 사이의 경쟁 20장 군신 권력의 역전 1. 세조의 승하 ● 선위|승하 2. 남이 옥사 ● 유자광의 고변|남이 역모|적개공신 몰락 3. 공신시대의 개막 ● 익대공신 책봉|사옥 에필로그 참고문헌 찾아보기 |
계유정난으로 권력을 잡고, 결국 2년 후 단종을 폐한 후 왕위에 오른 세조의 주변에서는 늘 피 냄새가 났다. 단지 계유년의 참극만이 아니었다. 왕위에 오른 후, 그 정통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세력이 있었고, 함께 목숨을 걸고 자신을 왕위로 올린 공신 세력들에게 둘러싸여 운신의 폭이 좁았다. 이를 타개하는 데도 역시 피냄새를 풍길 수 밖에 없었다. 반란은 물론 반란의 조짐마저 무자비하게 꺾었고, 그 대가는 참수, 나아가 효열이었다. 임금과 신하 사이와 목숨을 건 동지 사이를 오기는 공신들에게도 “임금은 임금, 신하는 신하”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자신에게 무례를 범한 이들에게 과하게 굴었다. 역시 죽였다. 그러면서도 훈척, 즉 공신들은 척결하지 못하고 그 세력을 그대로 다음 대, 예종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었다.
세조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한 것이라 믿었으리라. 할아버지 태종이 그러했듯, 자신은 어린 임금(단종)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정사를 좌지우지하는 세력(김종서, 안평대군 등)을 처단했다고 발표했고, 또 스스로 그리 생각했으리라. 그리고 자부했을 것이다. 임금의 자리에 오른 후, 조선이라는 나라를 체계화했고, 군사력을 증강했고, 법을 세우기 위해 단 하루도 쉬지 않았다. 자신이 임금이 된 것은 그랬어야 할 이치라고 여겼을 법하다.
김순남은 세조라는 인물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거의 시간 순으로 따라가면서 그의 인물됨보다는 그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중심을 보여주고 있다.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 세종을 돕던 시절, 세종이 죽고, 형 문종마저 죽은 후 단종이 즉위한 이후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 즉위 이후 권력을 공고히 해가면서도 공신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그들과 한몸이 되어 편 가르는 국정을 운영해 간 과정, 그 과정에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변모시켜간 과정, 재위 후반부에 새로운 세력을 키워가며 권력 재편을 노렸던 과정, 하지만 결국은 실패한 결과 등을 보여준다.
그의 시각은 주로는 <실록>에 의존하고 있는데, <실록>이 어쩔 수 없이 살아남은 자, 승리한 자들의 기록임에는 분명하지만, 없는 일을 기록하지 않았다는 최소한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다소는 세조의 시각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지만, 그건 또한 세조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종친이었던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그를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김종서가 국정을 농단하고, 안평대군이 이미 딴 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세조의 권력 찬탈은 김순남이 이야기하는 대로, 국가 시스템을 사적인 힘으로 무너뜨린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세조는 그 원죄를 죽을 때까지 업고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이후의 그가 임금으로서 세운 업적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폭력적인 방식으로 임금이 되었지만, 그가 임금이 됨으로써 나라가 더 나아졌다고 해서 그의 행위를 눈감고, 심지어 명군이라고 칭찬해야 할까? 그게 조선이라는 나라, 그 시대에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고개를 끄덕여야 할까? 난, 적어도 아니라고 본다.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 권력은 그 정당성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세조 대 내내 흩뿌려졌던 피는 그 대가라고 본다. 세조를 명군이 아닌가 고민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많은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세조, 이유 조선의 7대 임금이요. 할아버지 태종처럼 정난을 일으켜 조카를 따르던 많은 신하들을 죽이고 보위에 오른다.
세조는 세종이 아직 왕이 되기전인 1417년 충녕대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다. 왕조국가에서 둘째는 애매한 위치다. 사실 자신의 목숨 보전하기도 힘든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8형제(적자 기준)를 둔 대표적인 집안 몇 군데는 늘 형제의 난이 일어났다.
첫째는 태조 이성계다. 그의 맏아들 진안대군은 왕조가 개창되고 얼마 있지 않아 사망한다.
제2자였던 이방과는 아버지를 닮은 무인이었으나, 왕조개창의 공은 동생인 정안대군(후에 태종)에게 더 있었다. 전실 소생인 셋째인 익안대군은 태종을 지지했고, 넷째인 회안대군은 태종과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다섯째, 여섯째는 모두 형의 편에 선 왕자였고, 일곱째와 막내는 태종에게 죽임을 당했다.
둘째는 세종대왕이다. 그의 맏아들 문종(향)은 적장자로 세종 말년의 치세에 기여했으나, 39세의 나이로 비교적 이른 나이에 붕어한다. 둘째 세조, 셋째 안평, 넷째 수양의 편에선 임영대군, 다섯째 광평은 요절했다. 여섯째 금성은 단종복위 사건으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했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던 일곱째 평원대군도 요절해서 세종말년의 숭불을 촉진시킨다. 막내는 영응대군으로 세종이 총애하여 승하할 때 영응대군의 집에서 생을 마쳤다. 이들은 형제끼리 다투고, 한 형을 지지하거나 또는 요절하는 등 아버지에세 슬픔을 안긴다.
셋째는 현대가다. 현대가 정주영 회장의 첫째 아들은 교통사고로 현대가 아직 오늘날의 규모가 되기 전 작고했다. 둘째는 현대차 정몽구 회장으로 왕자의 난을 일으켜 다섯째 동생인 정몽헌회장과 대립했다. 셋째는 현대백화점 회장, 넷째는 정신질환으로 자살했다. 여섯째는 정치인 정몽준, 일곱째는 현대해상 정몽윤, 여덜째는 정몽일 등 팔형제가 아버지의 대권을 두고 대립한 이력이 있다.
세조 이유는 무에 뛰어났고, 공법 제정이나 한글 창제에도 관여했을 만큼 나랏일에도 능했다. 하지만 세종대왕 승하 후 형인 문종의 비호가 아니었다면 권세를 탐해서 죽을뻔한 위기에 있을 수도 있었다. 셋째인 안평과 대립했다.
왕좌에 오른 이유는 단호하면서도 유능했다. 진관체제 확립, 국가 운영의 만세성법인 <경국대전>과 <동국통감>의 편찬, 검약을 기치로 국가 세출의 표준화를 도모한 「횡간」 제정 등 왕조의 기반과 토대를 굳건히 했고 왕권을 강화했다.
훈신들과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 정치적인 면에서 홍윤성의 만행 등을 눈감아주고, 신하들과 술자리를 많이 했다.
군주평전 세번쨰로 태종, 세종에 이어 세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마지막은 성종이다.
다만, 명군의 이야기는 조금 부족하고, 폭군 또는 편가르는 정치 이야기가 조금 더 비중이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