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의 시사가 가장 적당한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딱 한 번씩 시사를 해도 캐스팅이 잘 되는 친구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더러 그가 천재라면 그의 첫 테이크가 다른 이의 열 번째 테이크보다 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베테랑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쉰세 번째나 백서른여덟 번째나 혹은 천 번째의 테이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이 천재를 이기고 신인이 베테랑들 사이에서 숨을 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유일하게 허락된 룰일지 모른다. 성우는 꼭 첫 테이크로 승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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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생각한다. 가위에 눌리는 것보다 무서운 게 있다고 말이다. 내가 모르는 사이 내가 가위가 될 수 있다. 날카로운 이빨로 관계의 끈을 자르고 목소리가 닿지 않을 만큼 사이를 벌려놓을 수 있다. 그때는 악몽을 꾸는 게 문제가 아니다. 악몽을 살게 될지 모른다. 그러느니 차라리 잠깐의 비명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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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는 몇 번이 적당할까? 당신에게 소중한 사람이 있다.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고, 다시는 눈을 마주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예기치 못한 한 번의 기회가 주어졌다. 단, 할 말은 정해져 있고 그것으로 끝이다. 되돌릴 수 없다. 당신에게는 몇 번 정도의 연습이 적당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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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 담긴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에 대해, 그제야 비로소 이해가 됐다. 우리에게 언젠가 깊은 상처를 남기고 딱지처럼 들러붙어 떠나지 않는 아픈 말들의 그림자가 모르는 이가 쓴 글, 낯선 이들의 이야기, 전혀 다른 세상에서 건네지는 대사를 통해 어느 정도 거둬지는 신비한 작용에 대해. 그 축복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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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나와 캐릭터를 잇고, 그 캐릭터와 다른 등장인물들을 맺어준다. 그리고 작품과 관객을 묶는다. 당신과 다른 이들을 연결하고, 당신이 지나온 날들과 오늘을 연결한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우리가 애초에 무엇이었는지 기억할 수 있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다. 그것이 목소리가 하는 단 하나의 일이며, 모든 일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