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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 이동의 위기 탐구

[ 양장 ] 민음사 탐구 시리즈-06이동
리뷰 총점8.7 리뷰 3건 | 판매지수 585
정가
1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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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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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2년 12월 09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00쪽 | 284g | 98*164*20mm
ISBN13 9788937492112
ISBN10 893749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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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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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기후위기 시대의 철학을 시도한다. 새로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고, 이 존재자를 알아보는 방법, 이 존재자의 가치를 현실에 구현할 방법까지 제시해야 할 것이다. 존재자의 도입을 형이상학, 이들을 알아보는 방법을 인식론, 가치를 구현할 실천법을 윤리학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런 총체적인 시도에 관심이 있다면 그는 철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득 시도는 수사적으로도 적중해야 한다. 새로운 존재자를 도입하다가 날이 새거나, 문제의 존재자를 확인하기 어렵다거나, 가치가 모호해 보인다면 갈 길 바쁜 사람들은 모두 제 갈 길로 떠나가고 말 것이다. 모두에게 괜히 끌려왔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 하기란 욕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기후가 문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후 문제는 21세기의 남은 시간 동안 수습해야 하며 그다음 수백 년 이상 관리해야 할 우리 행성의 문제다. 나는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란다. 더불어 이 문제가 철학사를 지배했던 몇몇 문제만큼이나 무수한 방식으로 변주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책 속에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출장길까지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들어가며」중에서

이동이라는 인간의 운명은 계속될 것이다. 이동할 필요가 극적으로 줄어들 리도 없다. 그러나 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이동량, 특히 승용차와 비행기의 이동 거리 절대량을 실제로 줄여야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여유가 없다. 내일의 출근과 모레의 출장, 주말의 여행을 위해 제한된 구매력과 시간을 희생해 탄소 저감에 나서라고 할 여지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이들 질문 앞에서 이동의 위기는 더욱 깊어진다. 일상의 질문과 교과서적인 답 사이에 심연이 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을 초래한 원인은 그렇게 오래된 것이 아니다. 특히 이곳 한국에서는 수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너무 흔하고 익숙해서 보이지 않는 지배자가 있다. 바로 자동차 이야기다.
---「2장 이동하는 인간의 조건」중에서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개통식 치사에서 재무, 기술, 심성의 영역에 있는 혼종을 언급하고 있다. 고속도로의 건설을 위해 재정적으로 원조나 차관을 사용하지 않았고, 기술 면에서도 외국 엔지니어의 기술 지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심성의 측면에서 박정희는 이 고속도로가 “민족의 능력”을 “시험”10하기 위한 도전 과제였다고 갈파한다. 이것은 식민지에서 벗어난 지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은 신생 근대국가가 교통 시스템이라는 혼종을 관리할 역량을 스스로 기르기 위한 시험이었다는 이야기다. 교통망 자체를 변형할 역량의 부재가 이 시험을 통해 도전하려는 혼종이었다.
---「3장 자동차와 한국 현대사」중에서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무언가가 아름답다는 판단과 숭고하다는 판단은 사람들에게 그보다 고양된 윤리적 판단을 내리게 만드는 준비 운동과 같다고 보았다. 도시에서 창발되는 질서를 미나 숭고의 자리에, 기후위기를 윤리적 판단의 자리에 집어넣어 보자. 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나타나지만, 그 자신의 이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의미인 창발된 질서는 지구 가열이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하고, 이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다는 사실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할 수 있는 모든 것의 기반이다. 좀 더 최근의 진단 또한 곱씹을 가치가 있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 이졸데 카림은 독일어권의 마을 내부 골목길에 도입된 ‘만남 구역’에 주목한다. 도로교통법, 신호등, 교통경찰 등에 의해 작동하는 대로와 달리, 만남 구역에서는 “일반적인 속도 제한 이외에는 규정, 교통 표지판, 신호등이 거의 없”다. 교통은 참여자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관리된다. 여기에서 함부로 가속 페달을 밟지 않으려면 “교통 참여자들은 배려와 주의의 원칙 그리고 함께라는 원칙”을 내면화해야만 한다. 이러한 원칙은 차를 탄 사람보다는 걷는 사람이 많은 골목길의 리듬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다. 각자의 길을 가는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 속도를 침해하지 않기 위한 조건이 이 만남 구역이다.
---「4장 납치된 걷기 공간」중에서

자동차 지배에 균열을 내고, 자동차 주행거리 그 자체를 더 줄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이 장면은 더 넓은 영역에서 재현되고 도시는 녹아내릴 것이다. 고밀 개발 자체로는 이런 장면을 막을 수 없다. 도표 2의 곡선을 아래로 끌어 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 밀도가 유지되더라도 인구당 차량 주행거리 자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수십 수백 개의 15분 도시 사이를 잇는 광역교통망을 바꾸는 것이 문제의 핵이라고 생각한다. 동력 기관은 결국 이 광역교통망에서 필요하다. 하나의 광역권을 이루고 있는 수십 수백 개의 15분 도시를 자동차 지배 공간이 아닌 방법으로 연결해 내는 것. 이것이 이동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우리의 목표다.
---「5장 도시를 구하는 방법」중에서

억울한 죽음이 무엇인지 조명하기 위해, 새 사또가 부임하면 사또 관사에 등장하는 귀신(대개 처녀) 이야기의 구조를 떠올려 보자. 새로 온 사또가 다행히 용감한 사람이어서 자신과 대면할 수 있다면, 귀신은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 부조리를 설명한 뒤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호소한다. 기막히게도 관료적이지만, 결국 관료는 수단이고 이들의 의무는 부조리한 죽음을 당한 당사자의 감정을 풀어 주는 데 있다. 실제로는 사라져 없어지는 당사자의 감정을 반사실적 상상속에서나마 구현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집단적 합의가 이런 귀신 이야기의 바탕에 있을 것이다. 길은 억울한 죽음을 부르는 공간이다. 지난 30년간 운수사고로 죽은 사람은 총 26만 9775명이다. 길 위에서 도시가 하나 사라졌다. 길을 짓는 건설 현장에서 일어난 죽음처럼 길과 직접 관련된 죽음까지 더하면 그 수는 늘어날 것이다. 분산되어 있어 사람들에게 잘 눈에 띄지 않지만, 이 수는 같은 기간 동안 죽은 777만 명의 사람에 비해서도 4%가량이다.
---「7장 대지에서의 죽음」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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