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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306쪽 | 348g | 128*205*30mm
ISBN13 9788932041230
ISBN10 893204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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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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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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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 엘리노어
이렇게 조용한 지구를 상상해본 적 있어?
인쇄된 글자처럼 쓸쓸해

내가 죽었다는 사실이
내게 너무 늦게 전해지는 건지도 몰라

손바닥만 따뜻해지는 불 앞에 모여 앉아서

가늠되지 않는 오후 속에서
후, 후 숨 쉬는 연습을 하고 있어

재를 터는 것처럼
뜨거운 것을 부는 것처럼

열기가 불행을 미뤄주는 것처럼
우리가 잠깐 잡았던 손처럼

끝난 것의 끝을 기다리면서
오래 헤어지는 연애를 하는 것 같다
---「아이들 타임」중에서

죽은 나비를 오랫동안 쥐고 있었어

사람들은 시차를 두고 밥을 먹었다

나는 가끔 혼자였다
일어나면 물을 마시고 많이 걷지는 않았다
그림자가 빠르게 눈앞을 지났다

성당 앞에서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는 글귀를 보았다
정말로 문이 열렸으므로 도망쳤다

각자가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 먹는 동안
슬픔은 언제나 배가 불렀고
지구는 반만 어둡고 반만 밝았고

얼음이 갈라졌다
물이 너무 많은 지구와
가보지 못한 나라와
너무 쉬운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자기 몫의 도시락을 싸는 사람과
매일 한 번씩은 죽지 않겠다고 결심하던 사람
누가 떠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다 알 것 같았다 온기가 누구의 것인지 헷갈리는 것이 좋았다

모든 일은 빛이 있는 곳에서 벌어졌어

냉기가 스며드는 창가를 견디고 있다
망가뜨리고 싶어서 신을 찾았다

그들이 아직도 나를 쥐고 놓지 않는다
---「빛이 떠나는 경로」중에서

미안해 지구

기계 팔 위로 눈이 내린다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노래를 부르며 지구를 빙빙 도는 로봇 청소기

기계에도 영혼이 있나요?

* 2508년, 사이보그와 인간의 마지막 전쟁이 있었다. 유례없는 대규모의 전쟁이었으며 미처 지구를 떠나지 못한 인간들의 기록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두꺼운 스모그와 대기오염, 그치지 않는 방사능 눈으로 2888년 현재, 지구 접근이 금지된 상태이며, 로봇 청소기 롤라디가 다음 세대를 위해 지구를 청소하고 있다. 상기 자료는 인간과 사랑에 빠진 사이보그 뮤리엘이 죽기 직전 전송한 일기로, 유일하게 이 시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료이나 지나치게 감정적인 대목들이 눈에 띈다. 사이보그 감정 연구가들은 지구 마지막 시기의 사이보그들을 잃은 것을 큰 손실로 꼽는다. 뮤리엘의 일기에 의하면 그는 성기 돌출형 인간 최용석과 연인이 되었다. 최용석은 대항군에서 중요한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이보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넘겨버리고 만 것이죠. 뮤리엘의 첫 의도를 알 수는 없으나 마지막에 최용석을 사랑하게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가 우리를 속이려 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네요. 그런다 한들 그 의도를 지금의 우리가 파악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지구의 진정한 주인 자리를 두고 두 종족은 오랫동안 전쟁을 지속했다. 세 차례의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 뮤리엘은 홀로그램으로 최용석의 모습을 전사 해내어 죽을 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기록은 일기가 아닌 소설이다. 지구에 홀로 남은 사이보그는 소설을 쓴 것이다. 왜 소설을 썼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뮤리엘의 죽음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거듭 강조한다.
---「리와인드*」중에서

아름다운 것이 많아서
삶과 문장을 자주 착각했다

빈 병을 주워 들고 숨을 불어넣는다
내벽에 습기가 어렸다 사라진다

누가 자꾸 나에게 숨을 불어넣는 것 같아

리튬
내게도 내장이 있어요
붉고 움직이고 기능하는 것

사탕을 깨물 때마다 신의 목소리가 들린다

밝다 따뜻하다 빛난다
거짓말을 당장 이백 개라도 지어낼 수 있어요

내가 공간을 익히는 방식이에요
---「파이어워크」중에서

겨우살이와 입맞춤
이미 죽은 사람의 생일

우린 왜 그런 것이 기쁠까

떠나지 못한 목소리가 유령처럼 불어난다
붉은 실은 온전히 레이지 로자몽의 취향

종이 울리면 누군가 홀리holy라고 소리친다 holy-홀리데이
발음의 유사성으로 인해 누군가는 그것을 홀리holey라고 착각하고
절망에 빠져 인생은 구멍투성이라고 비명을 지르는데

구멍이 있으므로 누군가는 빠지고 빠진 채 나오지 않고 영영 돌아오지 않고 간혹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으므로 홀리holey가 홀리holy를 완성한다고
아주 홀리홀리하군!
---「홀리데이 파티」중에서

아파트가 견딜 수 있는 하중은 최대 몇 킬로그램인가요?

시작되었다

햇빛 쏟아져 들어오고
밤이 오면 커튼부터 내려

평온하게 잠든 누군가의 머리 위로 떨어질 것 같다

어떤 이야기는 추락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다른 세계로 낙하하는 여자애의 이야기도 있지만



전부 변하고 말 것이다
---「뒤표지 시인의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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