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연필을 깎아주세요. 쓰기 시작하면 속도가 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코르시아 서점의 친구들』(스가 아쓰코, 문학동네, 2017) 같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이 카운터석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단편소설을 읽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그러고 보니 오가와 씨는 단골손님과 친숙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책을 읽은 사람이 다이다이 서점을 와보지 않아도, 거기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글을 써달라고 했다. 코르시아 서점이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지만, 서점의 분위기가 조금이라도 전해진다면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다. 그래서 오가와 씨의 이야기도 쓰고 있다. 틀림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이 글을 읽을 것이다. (…)
가끔 뚝뚝 끊어서 보내는 원고를 읽고 감상을 써서 보내거나, 은근슬쩍 부담을 주기도 한다. 다지리 씨의 원고가 활력소입니다, 라는 소리를 들으면 좀처럼 써지지 않는 글도 조금 속도가 붙는다. 물론 이런 게 그의 일이지만 고맙게도 한결같아서, 그래서 어떻게든 조금씩 쓰고 있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책에 오가와 씨 같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책과 만난다. 이 책이 몇 명의 독자와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첫 번째 독자는 이미 있다.
---「단골손님」중에서
고양이는 사람만큼 겉으로 나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시라다마는 어릴 때부터 순한 고양이였기 때문에 할아버지 고양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서점에 데려가지 않자 죽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잘 있냐고 주뼛주뼛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아직 건강하지만, 확실히 나이는 들었다. 이빨이 조금씩 빠지고 있고 근력도 약해지고 있는 듯하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털도 조금 푸석푸석해졌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건 나도 모르게 잊어버리고 만다. 언제나 응석을 부리고, 손님들도 귀여워하며 내내 칭찬하기 때문에 할아버지 고양이가 됐어도 어리광쟁이다. 자기를 봐주길 바랄 때는 등에 매달리고, 아직도 장난감 낚싯대로 재롱을 부린다.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그건 기분 탓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같이 잘 때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면, 언젠가 다가올 이별을 조금은 각오한다. 콩콩콩. 나랑 같이 살아서 좋았냐고 물어봐도 소용없는 것을 생각한다. 되도록 오래 이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나도 시라다마의 쌕쌕거리는 숨소리에 이끌려 눈 깜짝할 사이에 잠이 든다.
콩콩콩.
---「콩콩콩」중에서
어젯밤에 먹다 남은 카레 같은 기억이 여기에도 있을까? 문을 연 후 지금까지 몇 명의 손님이 왔었는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노래와 말, 혹은 사람…… 가지각색의 무엇인가가 누구나의 기억과 조금이라도 겹치면 됐다. 같지는 않겠지만, 저마다의 비슷한 감정을 끌어내는 기억의 조각.
맞아 맞아, 그런 거 있었어.
오늘은 토요일이었는데, 왔던 사람의 얼굴을 전부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손님이 없었다. 창문도 열지 않아서 바람에 문이 열린 일도 없다. 어쩌면 손님이 열었던 것보다 내가 열었던 게 훨씬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그런 게 아니라면 이런 날도 좋다. 멀리서 온 손님과 느긋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고. 창문 너머에는 미국풍나무 잎이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있다.
---「투명한 손님」중에서
어디나 그렇겠지만, 여러 번 가면 망설이지 않고 앉을 수 있게 된다. 처음 온 손님은 어디에 앉을까 두리번거린다. 앉은 후에는 역시…… 라며 자리를 바꾸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낯선 곳에 가면 주뼛거리며 바로 자리를 정하지 못한다. 망설인 끝에 가급적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를 고르고 만다.
서점에서 가장 앉기 좋은 자리는 책장 쪽에 있는 오토만이 딸린 녹색 의자일 것이다. 그 의자에 앉으면 모두 잠들 것 같다고 한다. 실제로 잠드는 손님도 가끔 있다. 나 역시 잠든 적이 있다. 아무도 없을 때 쉬려고 잠깐 걸터앉았다가 5분 정도 깜박 잠든 적이 있었다. 특기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주 잠깐 선잠이 든 사이에 꿈을 꾼다. 그래서 그런 때 전화가 울리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허둥거린다.
이 녹색 의자는 손님이 주셨다.
---「녹색 의자」중에서
전쟁을 다룬 책 읽기, 영화 보기, 텔레비전 보기. 지금까지 많이 해왔던 일이다. 하지만 얼굴을 맞대고 체험담을 듣는 경험은 그 무엇과도 달랐다. 기억의 단편은 그 사람과 함께 내 기억 속에 남는다. 소년이었던 A씨가 본 장면이 수십 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A씨의 말과 그 존재로 내 눈에 비쳤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의 수만큼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런 식으로 직접 이야기를 듣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알고 싶으니까 읽는다. 입장이 다르면 풍경도 변하기 때문에 모든 입장에서 보고 싶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권력자의 눈과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의 눈은 서로 다른 것을 본다. 오오카 쇼헤이의 『들불』(소화, 1998)을 읽어보면, 지극히 평범한 생활을 해온 사람이 인육을 먹기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전쟁터가 어떻게 사람을 이상한 상황으로 몰아넣는지를 뇌리에 새길 수 있다.
---「A씨 이야기」중에서
린코 짱이 서점의 서가를 보고 “여전히 약자의 책만 가득하네. 그런 면에서 전혀 흔들림이 없네”라고 중얼거린 적이 있다. 나는, 그런가 하며 서가를 바라보고, 의식한 적은 없지만 확실히 약자들뿐이네, 하고 수긍했었다. 미나마타병 환자에 한센병 요양소 입소자, 전쟁의 무수한 피해자, 이런저런 이유로 차별당하는 사람들, 의지할 데 없는 사람……. 마음이 가는 책을 고른 것이다. 귀를 기울이고 싶은 것은 가냘픈 목소리로, 그 목소리는 사람을 억누르려고 하는 큰 목소리보다도 힘차고 매력적이다.
그런데 린코 짱은 훗날 첫 번째 책의 추천사에서 “약자의 이야기가 쓰여 있다는 의미뿐 아니라 약해진 사람들을 위한 책이 놓여 있다는 의미도 있었다”고 했다. 서가를 보고 있을 때나 린코 짱의 사진을 보고 있을 때, 때때로 그 말들을 떠올리며, 지금도 흔들리지 않고 있을 수 있을지 생각한다.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