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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외

: 1987년도 제11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11이동
이문열 등저 | 문학사상 | 2001년 02월 2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7.4 리뷰 22건 | 판매지수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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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1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363쪽 | 530g | 153*224*30mm
ISBN13 9788970126593
ISBN10 8970126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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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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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석대는 그렇게 작아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속된 성공으로 그쳐서는 이미 실패의 예감이 짙은 내 삶을 해명할 길이 없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또 우리들의 석대는 그렇게 쉽게 그의 힘과 성공이 눈에 띄어서도 안 되었다. 보다 은밀하고 깊은 곳에 숨어 지금의 이 반을 주물러대고 있어야 했고, 그래서 내가 자유와 합리의 기억을 포기하기만 하면 다시 그의 곁에 불러앉혀주어야 했다. 내 재능의 일부만 바치면 그는 전처럼 거의 모든 것을 내게 줄 수 있어야 했다.
--- p.85
아직 같은 반이 된 지 한 시간밖에 안됐지만 그 아이만은 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담임선생님과 내가 처음 교실로 들어왔을 때 차렷, 경례를 소리친 것으로 보아 급장인 듯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그를 엇비슷한 60명 가운데서 금방 구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급장이 어서라기보다는 다른 아이들보다 모리통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앉은키와 쏘는 듯한 눈빛 때문이었다.

'한병태랬지? 이리 와봐.'

그가 좀전과 똑같은, 나지막하지만 힘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았으나 나는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다. 그만큼 그의 눈빛은 이상한 힘으로 나를 끌었다.
--- p.16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앞서 말한 그런 실없는 것들이나 묻고 있는데, 문득 그들 등뒤에서 그런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 왔다. 잘 모르는 나에게는 담임 선생이 들어온 것이나 아닐까 생각이 들 만큼 어른스런 변성기(變聲期)의 목소리였다. 아이들이 움찔하며 물러서는데 나까지 놀라 돌아보니 가운데 맨 뒤쪽에 한 아이가 버티고 앉아 우리 쪽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같은 반이 된 지 한 시간밖에 안됐지만 그 아이만은 나도 알아볼 수 있었다. 담인 선생님과 내가 처음 교실로 들어왔을 때 차렷, 경계를 소리친 것으로 보아 급장인 듯한 아이였다. 그러나 내가 그를 엇비슷한 육십 명 가운데 금방 구분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급장이어서라기 보다는 다른 아이들과 머리통 하나는 더 있어 뵐 만큼 큰 앉은 키와 쏘는 듯한 눈빛 때문이었다.

「한병태랬지? 이리 와봐.」

그가 좀 전과 똑같은, 나지막한 힘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손끝하나 까딱하지 않았느나 나는 하마터면 일어날 뻔했다. 그만큼 그의 눈빛은 이상한 힘으로 나를 끌었다. 하지만 나는 서울에서 닳은 아이다운 영악함으로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이게 첫 싸움이다 ―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며 버티는 데까지 버텨 볼 작정이었다. 처음부터 호락호락해 보여서는 앞으로 지내기 어려워진다는 나름의 계산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의 까닭 모를, 저의 절대적인 복종을 보자 야릇한 오기가 난 탓이가도 했다.

「왜 그래?」
--- p.18
실업자가 되어 한 발 물러서서 보니 세상이 한층 잘 보였다. 내가 갑자기 낯선, 이상한 곳으로 전학 온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전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거기서 빛났던 내 자랑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들만의 질서로 다스려지는 어떤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진 느낌 - 그리고 거기서 엄석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되살아 나왔다.

이런 세상이라면 석대는 어디선가 틀림없이 다시 급장이 되었을 것이다 - 나는 그렇게 단정했다. 공부의 석차도 싸움의 순위도 그의 조작에 따라 결정되고, 가짐도 누림도 그의 의사에 따라 분배되는 어떤 반. 때로 나는 운 좋게 그 반을 찾아내 옛날처럼 석대 곁에서 모든 걸 함께 누리는 꿈을 꾸다가 서운함 속에 깨어나기까지 했다.
--- pp. 76-77
석대와 나의 대화가 끝난 뒤에 석대가 도시락을 책상 위로 올려놓자 아이들도 모두 도시락을 펼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대여섯 명이 무언가를 들고 석대에게로 갔다. 그애들이 석대의 책상 위에 내려놓는 걸 보니 찐 고구마와 달걀, 볶은 땅콩, 사과 같은 것들이었다. 뒤이어 맨 앞줄의 아이 하나가 사기 컵에 물을 떠다 공손히 놓는 것까지 모두가 소풍가서 담임 선생님께 하듯 했다. 그런데 석대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그것들을 받았다. 기껏해야 달걀을 가져온 아이에게 빙긋 웃어준 게 전부였다.
--- p.
그 뒤 내 삶도 숨가빴다. 학교와 부모의 성화 속에 남을 학기를 어떻게 보냈는지조차 모르게 입시공부에 허덕이며 보낸 덕으로 나는 겨우 괜찮은 중학에 들어갈 수 있었고, 그때를 시작으로 경쟁과 시험속에 10년이 흘러갔다. 따라서 한동안은 제법 생생했던 석대의 기억은 차차 희미해지고, 힘들게 힘들게 일류고등학교와 일류대학을 거쳐 사회에 나왔을 때는 짧은 악몽 속에서나 퍼뜩 나타났다 사라지는 의미없는 환영에 지나지 않게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석대를 잊게 된 것은 반드시 내 삶이 숨가쁘고 힘겨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따. 그보다는 그동안의 내 환경에 그 시절을 상기시킬 요소가 거의 없었다. 일류와 일류, 모범생과 모범생의 집단을 거쳐 자라 가는 동안 나는 두번 다시 그 같은 억눌림 또는 가치박탈의 체험을 안해도 좋았기 때문이었다. 재능과 노력, 특히 정신적인 능력과 학문에 대한 천착의 깊이로 모든 서열이 정해지고, 자율과 합리에 지배되는 곳들만을 지나와, 그때까지도 석대는 여전히 부정의 이미지에 묻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 p.75
~ 저 화려한 역사책의 갈피에서와는 달리 우리반의 혁명은 갑작스럽고 약간 엉뚱한 방향에서 왔다. 그 이듬해 담임선생이 갈린 지 채 한달도 안돼 그렇게 굳건해 보였던 석대의 왕국은 겨우 한나절로 산산조각이 나고 그 철권의 지배자는 한낱 범죄자로 전락해 우리들의 세계에서 사라져 간 것이었다.

~ 학급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감과 아울러 굴절되었던 내 의식도 차츰 원래대로 회복되어 갔다.

~ 석대의 질서가 가졌던 편의와 효용성을 떠올린 때가 있었지만, 그것도 금지돼 있기에 더 커지는 유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 p.53, ---p.74
~ 저 화려한 역사책의 갈피에서와는 달리 우리반의 혁명은 갑작스럽고 약간 엉뚱한 방향에서 왔다. 그 이듬해 담임선생이 갈린 지 채 한달도 안돼 그렇게 굳건해 보였던 석대의 왕국은 겨우 한나절로 산산조각이 나고 그 철권의 지배자는 한낱 범죄자로 전락해 우리들의 세계에서 사라져 간 것이었다.

~ 학급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감과 아울러 굴절되었던 내 의식도 차츰 원래대로 회복되어 갔다.

~ 석대의 질서가 가졌던 편의와 효용성을 떠올린 때가 있었지만, 그것도 금지돼 있기에 더 커지는 유혹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 p.53,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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