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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정풀이
2. 신을 받음 3. 저승사자 4. 대내림 5. 맑은 혼 6. 베 가르기 7. 생명돋움 8. 시왕 9. 길 가르기 10. 옷 태우기 11. 넋반 12. 뒤풀이 |
黃晳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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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candy@yes24.com
`이미 문학사가 되어 버린 작가' 황석영이 지난 달 장편 소설 『손님』을 출간했다. 『손님』은 황해도 신천에서 벌어진 기독교인들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소재로 삼고, `황해도 진지노귀굿' 열두 마당을 얼개로 쓴 작품이다. 지노귀굿은 망자(亡者)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넋굿'으로서 작가는 주인공 류요섭 목사로 하여금 망자들과 대면하게 하여 북쪽에서 `신천 미제 양민 학살 사건'으로 규정한 이 사건의 `또 다른 진상'을 풀어나간다. 그것은 1950년 인천 상륙 후 45일 동안 3만 5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사건의 뿌리가 기독교와 맑시즘이라는 한국 근대사의 두 `손님'의 대립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손님'은 조선 민중이 천연두를 서병(西病)으로 파악하여 이를 막아내려고 일부러 높여 부른 칭호이다. 작가는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인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손님이라 규정짓고 1장 부정풀이부터 12장 뒤풀이에 이르는 지노귀굿 한판으로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을 잠재우며 화해와 상생을 촉구하고 있다.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류요섭 목사는 고향 방문단 일행으로 북한에 가게 되는데, 요섭의 방북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그의 형 류요한 장로가 숨을 거두게 되고, 그 며칠 사이 요섭은 알 수 없는 꿈과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요섭은 화장하고 남은 형의 뼛조각 하나를 챙겨넣은 채 평양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는데, 홀연 형의 유령이 나타나 요섭의 몸에 들어오게 되고 형제는 한 몸이 되어 함께 평양으로 향한다. 북한에 머무르는 동안 요섭은 형의 헛것과 하나가 되기도 하고 둘이 되기도 하며 그들의 고향인 신천 찬샘골로 향한다. 그곳에서 요섭은 당시 기독 청년이었던 형이 연루된 끔찍했던 45일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몸서리치며 눈물 짓는다. “소싯적부터 사타구니에 거웃이 날 때까지 한 마을에서 뒹굴어온 넘들”이 서로를 죽였다. 당시 스러져간 검은 유령들은 요섭에게 떠올라 저마다 그 때를 이야기하며 소설의 말미에는 산자와 죽은 자들의 해원이 이루어진다. 『손님』은 굿판에서처럼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동시에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등장하며 제각각 다른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가는 과거로 떠나는 `시간 여행'을 씨줄로, 등장인물 각자의 서로 다른 삶의 입장과 체험을 통하여 하나의 사건을 모자이크처럼 총체화하는 작업을 날줄로 삼아 이 둘을 서로 엮어 한 폭의 베를 짜듯 촘촘히 구성하는 작업은 한 사건이 빚어진 상황을 풍부하게 해체하고 반영하여 결과적으로 황석영만의 새로운 서사와 리얼리즘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의 리얼리즘 형식은 보다 과감하게 보다 풍부하게 해체하여 재구성해야 한다.(중략)역사와 개인의 꿈 같은 일상이 함께 현실 속에서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서도 안 되고, 화자는 어느 누군가의 관점이나 일인칭 삼인칭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 각자의 시점에 따라 서로를 교차하여 그려서 완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한 인물과 사건을 두고도 모든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과 시각의 다양성으로 자수를 놓듯이 그릴 수는 없을까. 객관적인 서술 방법도 삶을 그럴싸하게 그린다고 할 뿐이지 삶을 현실의 상태로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다. 삶이 산문에 의하여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면, 삶의 흐름에 가깝게 산문을 회복할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 나의 형식에 관한 고민이다.” -작가의 말에서 개인과 역사가 맞물리는 복잡 다난함이 드러내는 리얼리티에의 추구, 한국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세계사적 보편성으로 끌어올리는 강한 서사의 힘. 1989년 방북과 해외 체류 그리고 5년간의 복역. 그 굵직한 역사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한 작가가 분명 모색하고 궁리할 수 있는 것이다. |
찬샘골이라고 말하자마자 그는 사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고향마을의 이름을 입밖에 내놓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찬샘골이라는 말은 처음에는 무슨 향내나는 산열매 같은 맛으로 혀끝에 맴돌다가 발효시킨 생선의 썩은 냄새로 돌변하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었다. 수채화로 연두색의 여린 잎사귀를 가득 차게 그린 화선지 위에 먹구름 같은 물감이 왈칵 덮치듯이 쏟아져 번져가는 것처럼...
--- p.12 |
자자, 이젠 돼서. 그만들 가자우. 순남이 아저씨의 헛것이 말했고 일랑이도 그 옆을 따른다. 그래, 가자우. 다른남녀 헛것들도 벽에서 스르르 일어나 바람에 너울대는 헝겊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득하게 먼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서로 죽이고 죽언것덜 세상 떠나문 다 모이게 돼 이서. 요한이 아우에게 말했다. 이제야 고향땅에 와서 원 풀고 한 풀고 동무들도 만나고 낯설고 어두운 데 떠돌지 않게 되었다.
--- p. |
자리를 옮겨서 땅바닥의 흙을 파냈다. 두어 줌 파내니까 축축하고 나뭇잎 섞인 흙이 나오다가 한뼘쯤을 더 파내니 그제야 부드럽고 바알간 속흙이 나왔다. 그는 잔돌멩이들을 골라내고 손바닥으로 자리를 다진 다음에 간수했던 모피 주머니를 꺼냈다. 가죽끈을 풀고 안에서 작은 도장처럼 생긴 형의 뼛조각을 꺼내어 구멍 속에 놓았다. 요섭은 그 위에 흙을 덮는다. 그리고 아기를 잠재울 때처럼 손바닥으로 땅 위를 토닥이며 두드려주었다. 형님 이제야 고향에 돌아온 거요, 하고 요섭은 소리를 내어 말하고 싶었다.
--- p.254-255 |
요섭은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의 뒤통수를 지나 얼굴을 다시 돌아본다. 이쪽 통로에는 없는 것 같다. 그는 커튼을 젖히고 어둠속으로 들어선다. 화장실의 빈칸 표시등이 파랗게 반짝인다. 문을 밀고 들어섰다. 비행기의 굉음이 귓바퀴에 멍멍하게 가득 찬다. 거울 위에 피로한 초로의 얼굴이 떠 있다. 그는 손을 씻고 세수를 한다. 종이타월로 얼굴을 박박 문질러 닦고 맨손바닥으로 다시 얼굴을 쓸어내린다. 요섭이 문을 향하여 돌아서는데 갑자기 자신이 타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거울을 힐끗 본다. 형이 거기에 떠올라 있었다. 그는 쫓기듯이 문을 밀치고 나온다. 그리고 커튼을 젖히고 통로로 나오는 데 저어기, 자신의 자리에 요한 형이 앉아 있었다. 류요섭 목사는 잠깐 멈칫했다가 형을 향하여 눈길을 똑바로 맞추고 형이 앉아 있는 좌석으로 걸어나갔다. 가까이 다가서니 빈 좌석이다. 앉으려고 몸을 돌리는데 뒷전에 형의 얼굴이 보인다. 그는 그대로 눌러앉는다. 요한 형의 환영을 등으로 깔아뭉개면서 요섭은 등받이에 푹 기대앉았다. 요섭아, 요섭아. 그는 깜짝 놀라서 궁둥이를 얼른 들었다가 다시 앉았다. 요섭은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허튼 짓 하지 말라우요. 한번 갔으문 그만이지 왜 자꾸 나타나구 기래요? 난두 너하구 고향 가볼라구.
--- p.37 |
사랑할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때가 있느니라.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251)
--- p.251 |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p.161 |
그러나 참극은 거의가 사실일 것이다. 악몽은 사실이지만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 생생함을 잃어버린 말은 또한 얼마나 가벼운가. 수십 수백번 거듭된 말은 마치 타버린 책의 종잇장처럼 검게 일그러져 허공에 떠서 나풀거리고 있었다. 거기 찍혔던 활자와 의미는 재가 되고 먼지가 되어버렸으리라.
--- p.108 |
그때 우리는 양쪽이 모두 어렸다고 생각한다. 더 자라서 사람 사는 일은 좀더 복잡하고 서로 이해할 일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되어야만 했다. 지상의 일은 역시 물질에 근거하여 땀 흘려 근로하고 그것을 베풀고 남과 나누어 누리는 일이며, 그것이 정의로워야 하늘에 떳떳한 신앙을 되돌릴 수 있는 법이다. 야소교나 사회주의를 신학문이라고 받아 배운 지 한 세대도 못 되어 서로가 열심당만 되어 있었지 예전부터 살아오던 사람살이의 일은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 p.176 |
미국 브루클린에 사는 류요섭 목사는 고향방문단 일행으로 북한에 가게 되는데, 요섭의 방북을 며칠 앞두고 갑자기 그의 형 류요한 장로가 숨을 거두고 그 며칠 사이 요섭은 알 수 없는 꿈과 환영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요섭은 유품으로 남은 수첩에서 요한 형이 박명선이란 여인을 만나기로 했다는 메모를 발견하고 그녀를 찾아 로스앤젤레스로 향하지만, 양로원에서 홀로 살아가는 박명선은 류요한 장로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풀지 않고 동생 요한에게도 냉대로 일관한다. 결국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요한은 화장하고 남은 형의 뼛조각 하나를 챙겨넣은 채 평양으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는데, 홀연 망자의 유령이 나타나 고향으로 가는 그와 동행하게 된다.
요섭은 초현실화 속에 걸어들어온 듯 멍한 기분으로 평양에서 며칠을 머물다가 고향인 황해도 신천 찬샘골로 향하고, 그러는 동안에도 형의 헛것은 그와 하나가 되었다 둘이 되었다 하면서 50여년 전 과거의 아슴한 기억으로 그들을 불러들인다. 요섭은 형이 북에 남기고 온 아들 단열과 해후하는 한편, 고향땅에 세워진 '학살박물관'을 참관하며 당시 생존자의 증언을 듣는다. 한국전쟁 당시 '미제'에 의해 자행된 양민학살사건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된 그곳에서 요한은 당시 기독청년이던 형과 연관된, 1950년 인천상륙 이후의 끔찍했던 45일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몸서리치며 눈물 짓는다. 미군에 의해 저질러졌다지만 사실은 우익기독세력에 의해 자행된 학살만행. 서로를 죽이고 죽던 검은 유령들이 요섭에게 떠올라 저마다 그때를 이야기한다. 요한과 요한의 아내, 두더지 삼촌과 이찌로, 이렇게 산자와 죽은자 들의 해원이 시작되는데…… 작가도 밝히듯이 이 소설에서 '손님'이란 주체적 근대화에 실패한 우리에게 외부에서 이식된 '기독교'와 '맑스주의'를 가리킨다. 작가는 1950년 황해도 신천 대학살사건을 배경으로 이땅에 들어와 엄청난 민중의 희생을 강요하고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이 두가지 이데올로기와 그 소용돌이에 휩쓸렸던 인간군상들의 원한과 해원을 그려냄으로써, 이제야 겨우 냉전의 얼음이 녹기 시작한 한반도에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가 열려나가기를 희망한다. 『손님』은 황석영만이 경험할 수 있었던 방북취재, 대작가의 선 굵은 서사구조,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실험정신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특히 『손님』은 형식적인 면에서 황해도 진지노귀굿의 얼개을 차용하여 작가가 새로이 구성한, 리얼리즘의 틀을 깨고 나온 리얼리즘이라 할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