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출간일 | 2019년 09월 25일 |
---|---|
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38g | 128*188*20mm |
ISBN13 | 9788936438029 |
ISBN10 | 8936438026 |
출간일 | 2019년 09월 25일 |
---|---|
쪽수, 무게, 크기 | 304쪽 | 338g | 128*188*20mm |
ISBN13 | 9788936438029 |
ISBN10 | 8936438026 |
스물다섯의 나이로 등단해 각종 상을 최연소로 휩쓸고, 문단은 물론 두터운 독자층의 사랑을 듬뿍 받아온 김애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가 새롭게 단장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김애란은 첫 단행본을 내기도 전에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큰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신동엽문학상, 김유정문학상, 젊은작가상, 한무숙문학상 등을 받으며 명실상부 최고의 소설가 반열에 올랐다.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은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애란의 ‘처음’이 담긴, 풋풋하면서도 오늘의 김애란을 있게 한 이 반짝이는 소설집에는 표제작인 「달려라, 아비」를 비롯, 아버지의 부재와 가난 등으로 상처 입은 주인공이 원한이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자기긍정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린 아홉편의 단편이 실렸다. 일상을 꿰뚫는 민첩성, 기발한 상상력, 탄력있는 문체로 유쾌하면서도 따뜻한 김애란만의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2019년 새롭게 발간되는 리마스터판은 기존의 매력을 유지하면서 좀더 정교하게 매만진 문장과 작품 순서, 따뜻함과 사랑스러움을 배가한 표지와 예리한 감각으로 무장했다. |
스카이 콩콩 달려라, 아비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 사랑의 인사 영원한 화자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 노크하지 않는 집 나는 편의점에 간다 종이 물고기 해설 김동식 작가의 말 추천사 새로 쓴 작가의 말 수록작품 발표지면 |
김애란님의 달려라, 아비 소설을 읽고. 리뷰에 개인적인 감상 및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니 민감하신 분들은 읽지 말고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 소설에 대한 감상은 크게 달지 않고, 소설에서 감명깊게 읽었던 문장들을 직접 타이핑해 달아두겠습니다. 모두 제 마음을 크게 치고 뒤흔들다 나간 문장들입니다. 김애란 작가의 글이 늘 그렇 듯 부드럽고 잔잔하게 그리고 덤덤하고 유쾌하게 저를 위로합니다.
영원한 화자 中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알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냉소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허영심이 많은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냉소적이고 허영심도 많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가. 나는 '알기'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알 수 없는 쓰다듬에 숨죽이는 사람이다.
나는 말을 줍고 다니는 사람, 나는 나의 수집가, 나는 나를 찌푸린 눈으로 보는 나에게 가장 버르장머리없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말해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호프집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상체를 기울이는 사람이다. 나는 스스로 조금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래서 내 앞사람이나 옆사람도 스스로를 특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는 사실에 불쾌해지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하루에 한가지 일밖에 못하는 사람이다'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만일 오늘 나의 사장 큰 일과가 운동화를 빠는 일이라면 나는 정만 그낭 운동화만 빠는 사람이다. 나는 게으른 사람이지만 앉아서도 누워서도 온종일 '오늘 운동화를 빨아야 되는데....'를 생각한다는 점에서 부지런한 사람이다. 나는 농담을 좋아하지만 재치있는 사람을 보면 적의를 품는 사람. 나는 때론 돈 만원 때문에 우울해지는 사람이며, 현금지급기 앞에서 항상 뒷사람을 의식하는 사람이다.
나는 낯선 이들을 웃기고 난 뒤 안도하는 사람. 나는 나의 편견을 아끼는 사람, 나는 그 편견을 얻기까지 달려갔다 다치고 온 길을 버릴 수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은 수난자들의 질문입니다'라는 알료사의 말에 밑줄 긋는 사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 나는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닐까봐 무릎이 떨리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무서워하는 것, 깔보는 것, 묻는 것이다. 나는 내가 눈을 크게 뜨고 보는 것, 곁눈질하는 것, 눈감아주는 것이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혈액형 혹은 별자리에 대해, 우리가 무수히 침을 발라가며 넘겼던 해설들에 대해서도 나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잔뜩 남겨진 다이다.
나는 이것저것을 긁어모으지만 당시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부터 다시 말한다. 그리하여 이것은 관심없는 이성의 고백처럼 언제나 조금씩 지루해진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이가에 대해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 대답하기 위해 내 이름을 부르면 고개 돌리는 사람, 그러나 그것이 내 이름인 것이 이상하여 자꾸만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도 자주 질문하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유머감각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속물적인가 그렇지 않은가. 저 사람은 유머감각이 있고 속물적이지만 어쨌든 나를 좋아한단 말인가 아니란 말인다. 나는 '묻기'전에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 하나 가끔은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를 때 가슴이 철렁이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첫사랑. 나는 내가 읽지 않는 필독도서, 나는 나의 죄인 적 없으나 벌이 된 사람이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성명하기 위해 인터넷 대화창 앞에서 오줌보를 붙든 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이다. 나는 당신에게 잘 보이고 싶은 사람. 그러나 내가 가장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은 결국 나라는 것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쩌면 '나는 사려깊은 사람'이라는 식으로도 나를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지만, 당신보다 당신의 절망을 경청하고 있는 나의 예의바름을 더 사랑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레한 사람이다. 나는 오만한 사람을 미워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의심하는 사람이다. 나는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내가 그동안 그것들을 '그다지'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자신에 대해서는 '당신들이 모르는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다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동의하지 않아도 끄덕이는 사람, 나는 불안한 수다쟁이, 나는 나의 이야기,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사람, 나는 나의 각주들이다.
하여, 스스로를 책 하는 것이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하나의 자부, 하나의 자만. 나는 당신에게 '진짜'인 것 같았고, 내가 그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 뿌듯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것은 언제나 잘난 척보다 나빴다.
도서관에서 빌려왔는데 소설집 첫 작품인 <스카이 콩콩>부터 너무 좋아서 바로 주문했던 작품이다. <달려라, 아비>를 읽기 전에는 '아비'가 '아버지'를 의미하는 건 줄 몰랐다. 뭔가 아비라는 캐릭터가 있을 것 같고 누군가의 별명일 것 같고 그래서 표제작을 읽고는 아버지를 의미한다는 걸 알았을 때 신선한 충격과 반전을 느꼈다. (어쩌면 나만 몰랐던 걸지도...ㅠㅠ)
<스카이 콩콩>에서는 스카이 콩콩을 타는 모습이 나올 때마다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간질간질했는데 현실을 알고 나서는 역시나 씁쓸했다. 가장 좋았던 건 <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라는 작품이었는데 다른 무엇보다 아버지의 재치있는 대답이 유쾌해서 재미있었다. 머리를 잘라주면서 하는 대화라기에는 재치도 있고 아버지의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느낌도 있었다.
인상 깊었던 작품은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였다. 요즘 수많은 현대인들이 불면증에 시달린다. 나라고 다를 건 없다. 그로 인해 병원을 찾아 수면유도제를 처방받는 일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유튜브에는 수면유도 영상들이 넘쳐나고, 수면유도 아로마향, 젤리 등등 잠 못 드는 이들을 위한 상품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이 작품을 보면서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는 아마도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서 읽는 내내 답답하면서도 안타까웠다. 부디 오늘은 그녀에게 잠 못 드는 이유가 없어서 숙면을 취할 수 있기를...
5월에 <바깥은 여름> 6월에 <비행운> 8월 마지막 날에 <달려라 아비>를 읽었다.
예쁜 제목과 달리 우리 주변인들의 죽음, 불행, 아버지, 익명성 등을 다루고 있는 작가의 작품과 한 계절을 보내고 나니 진이 빠진다. 그나마 <달려라 아비>는 전작들보다는 슬픈 유쾌함이 묻어나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다.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다해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는 어머니, 니가 누구 딸이냐고 못들은 척 계속 묻는 할아버지가 나오는 #달려라 아비는 달려라 하니같은 사생아의 이야기다.
내겐 아버지가 없다. 하지만 여기 없다는 것뿐이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나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지금 막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아버지가 지금 막 스핑크스의 왼쪽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백십번째 화장실에 들러, 이베리아반도의 고다라마산맥을 넘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깜깜한 어둠속에서도 아버지의 모습을 잘 식별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야광 바지가 언제나 반짝이고 있는 때문이다. 아버지는 뛴다. 물론 아무도 박수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p.15
어제 김영하 작가의 8월의 책 <영혼의 집> 라방에서 개인의 가족사를 한 번 파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할머니, 외할머니, 증조할머니, 외증조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내가 보일거라고...
할머니는 모두 돌아가셔서 이제는 그분들의 역사를 들을 길이 없다. 아빠, 엄마에게 잘해야지...
이 소설속에서 아버지들은 사생아를 만들어 버리고 손이 시렵다며 가로등을 고치지 않고,
자취하는 딸 방에 어느날 들어와 밤새 TV를 켜놓고, 공원에 버려진 아들은 절대 돌아보지 않는 아빠를 하염없이 부르고, 아들의 탄생스토리의 비화를 계속 각색하는 아버지들이다.
순간 아버지의 머리 위로 수천개의 비눗방울이 한꺼번에 올라온다. 나풀나풀. 우주로 방사되는 아버지의 꿈. 그리하여 투명한 비눗방울들이 낮꿈처럼 흩날렸을 때. 싱그러운 비놀리아 향기가 밤하늘 위로 톡톡 파랗게 퍼져나갔을 때.
"바로 그때가 네가 태어난 거다."
나는 마구 콩닥이는 가슴을 나고 소리쳤다.
"정말요?"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거짓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