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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1~2 세트

유정천 가족 1~2 세트

[ 전2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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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1월 02일
쪽수, 무게, 크기 984쪽 | 1030g | 128*188*4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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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구는 인간을 잡아가고, 인간은 너구리를 전골로 만들어 먹고, 너구리는 덴구를 함정에 빠뜨린다. 이렇게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돈다.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보고 있으면 그 무엇보다 재미있다. 나는 이른바 너구리지만, 일개 너구리임을 부끄러이 여기며 덴구를 아득하게 동경하고, 인간 흉내도 무척 좋아한다. 따라서 내 일상은 눈이 팽팽 돌 지경이라 따분할 틈이 없다.
--- p.11

나는 일찍이 너구리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까다로운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재미있게 사는 요령은 알고 있는 셈이지만 그 밖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최고다.” 이건 그 유명한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그래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거리다 보니 아무래도 재미있게 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해야 할 일이 없는 것 같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 p.57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우리 형제는 반나절 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다음에야 겨우 울음을 터뜨렸다. 큰형도 울었고, 작은형도 울었고, 나도 울었다. 동생은 어린애였기 때문에 원래부터 울고 있었다.
--- p.109

살아가는 한 이별을 겪지 않을 수는 없다. 인간이나 덴구나 너구리나 다 마찬가지다. 이별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슬픈 이별이 있는가 하면 때로는 고마워서 속 시원한 이별도 있다. 성대한 송별 파티를 하며 요란뻑적지근하게 헤어지는 이도 있고, 누구의 전송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이별하는 이도 있다. 긴 이별이 있고 짧은 이별도 있다. 일단 헤어진 이가 멋쩍은 듯이 훌쩍 돌아오는 일은 흔히 있다. 그런가 하면 짧은 이별인 줄 알았는데 쉽사리 돌아오지 않는 이도 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생애 단 한 번뿐인 진짜 이별도 있다.
--- p.219

이 세상과 작별하는 데 있어 우리 아버지는 위대한 그 피를 정확하게 넷으로 나누었다. 큰형은 책임감만 이어받았고, 작은형은 느긋한 성격만 물려받았으며, 동생은 순진함만 물려받았다. 그리고 나는 바보스러움만. 완전히 제각각인 형제를 이어주는 것은 바다보다 깊은 어머니의 사랑과 위대한 아버지와의 작별이다. 위대한 이별 하나가 남은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일도 있다.
--- p.220

바보라서 숭고해진다. 우리는 그것을 긍지로 삼는다. 춤추는 바보로 보이는 바보. 같은 바보라도 춤추는 바보가 낫다고 한다. 그렇다면 멋지게 춤추면 된다. 우리 몸속에 매우 진한 ‘바보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을 한 번도 창피하게 생각한 적이 없다. 이 태평성대를 살아가며 맛보는 기쁨이나 슬픔도 모두 이 바보의 피가 가져다주는 것이다.
--- p.274

좌우지간 재미있게 살고 볼 일이다. 일단 그렇게 단정해보면 어떨까. 나는 현대 교토에 사는 너구리이지만, 일개 너구리라는 것을 긍지가 허하지 않아 먼발치에서 덴구를 동경하며 인간 흉내를 내는 것도 좋아해 마지않는다. 이 성가신 습성은 조상 대대로 면면히 전해 내려온 것이 틀림없다. 선친은 그것을 “바보의 피”라고 불렀다.
--- p.11

“그게 아니야, 야시로. 천재는 99퍼센트의 바보와 1퍼센트의 영감이라고.” “그럼 노력은 언제 하는데?” “……천명天命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지만 형, 난 그럼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이 깡똥한 에디슨 같으니!’라고 말하려는데, 별안간 보이지 않는 거인이 잡아 흔드는 것처럼 숲의 나무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 p.23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일이 뭔가 하면 타인의 지시를 받는 거란 말이지. 내가 퇴거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남자는 당당하게 말했다. “꼭 한판 붙어야겠다면 도전은 받아주마.”
“아저씨, 그럼 나랑 놀까.”
“호오?”
남자는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눈 감고 열까지 세면 아주 재미있는 걸 보여줄게.”
--- p.150

“몰랑몰랑하게 있다 보면 어떻게든 돼. 우리는 너구리잖니. 보들보들한 게 매력인걸.”
“그럼 됐네요.”
“얘, 내가 가르쳐줄게. 나도 결혼했었거든. 힘들었던 건 다 잊어버리고 근사한 것만 기억나. 예쁜 털 뭉치를 많이 낳았던가……. 그러고 보니까 다들 어디로 흩어진 걸까. 많이 웃고 오동통한 털 뭉치들…….”
--- p.384

나는 천하태평을 사랑하는 너구리이지만 ‘그것만으로는 곤란하다’고 바보의 피가 속삭였다. 언제든지 풍파를 일으켜요. 팍팍 일으켜요. 언제든지 평화를 어지럽혀요. 팍팍 어지럽혀요.
--- p.394

“왜 너답지 않은 소리를 하느냐, 야사부로.” 아버지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나를 봤다. “우리는 너구리야. 웃으면 안 되는 때란 없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건만 느닷없이 눈물이 치솟아 탁자 위의 아버지 모습을 가렸다. 멀리서 이별의 소리가 들려왔다.
--- p.491

2세는 어째서 자신의 힘을 활용하려 하지 않는 걸까. 아버지의 지도 아래 개화된 덴구의 힘, 그 힘을 멀리서 동경하는 너구리도 있건만. 그러나 너구리는 덴구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덴구는 너구리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 덴구에게는 덴구의 긍지가, 너구리에게는 너구리의 긍지가 있다. 그렇기에 덴구의 피와 바보의 피는 서로 반응한다.
--- p.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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