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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햇은 금빛 경사로

아침달 시집-038이동
나혜 | 아침달 | 2024년 05월 03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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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188쪽 | 246g | 125*190*13mm
ISBN13 9791189467609
ISBN10 118946760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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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타러 갈 때
찾아봐

나타날 거야 아주 작은 철문
흠집 하나 없이 단정한 네모
누구의 무릎보다도 낮은 곳에

도망가고 싶어질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생겼으니까 박수를 막 쳐
뜨거워진 손바닥을 가슴 위에 올리잖아
그래 이거잖아 맞잖아
--- 「스틸」 중에서

정류장은 성전 그곳엔 끝날 때까진 다다를 수 없는바
이 땅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다

결국 나를 덮을 커다란 천

온몸의 구멍을 막아버리는
피부를 억눌러 끝내는 눕히고야 마는

나는 이게 파티 같아
--- 「안와운동」 중에서

호시절이다
뱉고 나니 차가 다리를 돌아 나간다

그랬어 꼭 강과 다리가 있어 마음껏 그리워하면 된다는 듯이 왜 그랬어

너를 퇴비로도 써보려고
쓰러트려 눕히려고 백만 년이 지나고도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을 너를
분해해보려고 아주 준비를 했다고

이걸 다 견딜 만큼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대단한 환경 속에
너를 용서할 수 있게 말을 해
견디게
--- 「검정강」 중에서

추수 끝난 논 위에 떼 지어 앉아 있는 까치를 봤다
호수를 한 바퀴 뛰다 걷다 했다
심장이 목에서 뛰는 것 같았다
정말 크게 노래했다
체념했다
단 한 줄 썼다
얕은 강물에 박힌 벽돌을 봤다
다리 밑에서 물의 그림자를 본다 불 같은
시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 「손질」 중에서

이제 싸우고 떠들고 웃고 그럴 일만 남았다
여태까지도 그랬지만
그래도
무서웠다 그렇게는 말할 수 있겠다

너희들은 너무 약해
몹시

몹시 사랑해
가능하다면 전부 쥐고 흔들고 싶을 정도로
--- 「화분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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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시은 시인의 추천사: 미래와 맞서 싸우기

시인은 미래에 가 있는다. 미래에 가 있는다는 것은 미래를 제압했다는 뜻이다. 곧 뒤따라올 너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네가 읽게 될 다음 문장을 이미 써놓았다는 뜻이다. 시인이 먼저 가 있는 미래를 좇는 방법은 부지런히 다음 문장을 읽는 것뿐이다. 이미 지어진 시를 근소한 미래로 본다면. 눈 깜짝할 사이는 될까 말까 한, 현재와 별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그러나 확실하게 잠시 동안 앞서 있는 미래로 본다면. 시인은 지금 당장 너를 맞이할 모든 준비를 끝냈다.

시인은 시로서 생활을 견딜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총동원한다. 온몸으로 미리 맞서야 하는 일들에게 “새것처럼 화”를 낸다. “우리 기쁜 척할 수 없고 그만둘 수 없”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이 말들은 선언인가? 위로인가? 다짐인가? 명령인가? 노래인가? 주문인가? 알 수 없이 아름답게 비틀린 한 치 앞의 미래가 너를 이끌고 간다. 생활 안에서 생활을 초월한 파티로 데리고 간다. 생활을 짓이겨 재조합하여 견딜 수 있게 한다. “모든 걸 느껴”버리는 방식으로 살아 있게 한다.

너는 시인이 안내하는 미래를 기다려 왔다. 미래와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을 홀로 고안해 왔다. 누군가가 너를 다 안다고 말해주기를 간측하게 바라왔다. 너는 살아 있고 싶었다. 시인은 살아 돌아오는 이야기를 믿는다. 다음이 있다는 걸 믿지 않고도 미리 다음에 가 있으면서 그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너는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이제 상상한 모든 일이 가능하다. 괴로움 속에서는 괴롭다고 말하기. 작별 인사를 통해 완전히 작별하기. 시인은 시로서 흥얼거린다. 흥얼거림으로서 미래에 대항한다. 미래의 “기운이 움직이는 것 같”다. 여기에서 저기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 배시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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