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건 전부 거짓말이잖아요.”
포비 부인이 말했다. 그녀는 부드럽게 돌려 말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MCC 버크셔가 몸을 똑바로 폈다.
“아니, 부인. 그게 거짓말이라고요?”
“그러니까…… 사실…… 거짓말 맞잖아요.”
포비 부인이 말을 더듬거렸다.
“거짓말 아닙니다, 부인.”
조금도 물러설 기색 없이 버크셔가 엄숙하게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픽션, 즉 허구이지요. 내가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 모든 사람이 내게 원하는 바로 그 허구란 말입니다, 부인. 요컨대 꾸민 이야기지요.”
--- p.50
그 뒤 학교에서는, 에일사네 집에는 괴팍하고 정신 나간 오빠가 하나 있는데 그 오빠 때문에 장사에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무튼 선생님이 불쾌한 표정으로 가게를 나가자 에일사가 MCC에게 빈정거리며 말했다.
“이게 당신이 얘기한, 물건 파는 방법이로군요.”
MCC 버크셔는 머쓱해서 입을 열 수 없었는지 품에 안은 책 표지만 바라보았다. 에일사는 자신이 너무 무례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잠자코 있는 것이 나을 뻔했다고 후회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사실 책을 팔아봤자 장사에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걸요, 뭐. 값도 안 나가고 말이에요. 엄마는 헌책들을 몇 페니씩에 팔았어요.”
“어떤 것들은 헌책이라도 몇 백 파운드의 가치가 있어.”
MCC가 고개를 들면서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 가게엔 그런 책 없잖아요.”
“그렇게 단정하지 마. 어떤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낡아빠진 문고본 책들이 가득 꽂혀 있는 새 책장을 바라보았다.
“몇 백 파운드의 가치가 있다고요?”
“돈이 전부는 아니야.”
그가 대법원 판결이라도 내리듯 엄숙하게 말할 때 불빛 아래서 그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 p.81-82
MCC는 자리에 돌아와 포비 부인에게 한 장씩 한 장씩 명함의 뒷면을 보이며 숫자를 읽었다. 그럴 때마다 부인은 히스테리를 일으키듯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몇 분 뒤 MCC는 의자 사이를 헤치고 모피 칼라가 달린 검정 순모 외투를 입은 남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유서 깊은 이 식탁과 헤어지기는 싫지만, 제 고용주인 포비 부인께서 1천 파운드를 적은 선생님의 제의를 받아들이라고 하시는군요.”
모피 칼라의 사나이는 그 즉시 현금으로 계산을 했고, MCC는 10파운드짜리 70장을 세어서 경매인에게 건넸다.
“이보게 젊은이, 여기에서 일할 생각 없나? 자네처럼 말솜씨가 좋은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네만…….”
경매인이 윙크를 하며 말했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포비 골동품점에 만족하렵니다.”
MCC의 대답에 포비 부인은 다시 한 번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p.113-114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키가 큰 남자 손님이 빈 액자를 들고 하늘에서 떨어진 듯이 가게 안에 들어와 있었다. 대학생 같아 보이는 그는 의기소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앞자락을 푼 검은색 외투 사이로 역시 검은색 스웨터와 검은색 바지가 보였다. 그의 몸에 걸친 물건 중에서 색깔 있는 것이라고는 목에 두른 스카프뿐이었다. 대학 건물이 그려진 그 화려한 스카프는 검은색을 배경으로 살해당한 무지개의 핏자국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의 눈은 한참 동안 운 사람처럼 빨갰다.
“누가 이 나무상자에 대해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그는 비탄에 흠뻑 젖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이마에 내려와 있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는데, 그 모습이 마치 무장한 군대의 총구 앞에서 눈가리개를 벗는 남자처럼 보였다.
“어서요, MCC!”
에일사가 말했다.
“그래요. 어서 하세요, 버크셔 씨.”
포비 부인도 말했다.
턱을 괴고 앉아 있던 MCC가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는 누가 보아도 상자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16세기 물건입니다. 재질은 떡갈나무이고요. 사면 전체에 사냥하는 장면을 표현한 이 조각을 눈여겨보십시오. 이 가게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뛰어난 물건이라고는 말씀드릴 수 없는 것이, 뒷면의 경첩은 달아났고 걸쇠는 고정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이 상자를 여는 순간 뚜껑이 떨어진다는 거죠. 하지만 역사적인 가치는 충분히 있는 물건입니다. 사시겠다면, 120파운드에 드리겠습니다.”
“MCC!”
에일사와 포비 부인이 구태의연하면서도 노골적인 그의 상술에 분개해서 합창하듯 소리쳤다.
“아, 얘기를 하라는 말씀이군요.”
MCC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곧 폐기 처분될 낡은 전함이 파도가 넘실대는 파괴의 바다를 향해 마지막 항해를 떠나며 깃발을 올리듯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p.227-228
“얘야, 내 말 좀 들어봐라.”
포비 부인이 바닥에 놓인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책의 표지는 MCC 버크셔의 신발 색깔과 정확히 일치했다.
“MCC 버크셔는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야.”
“아니, 왜요? 그렇다면 그 이야기들은 뭐죠?”
“그건 사실이지. 그래, 사실이야. 버크셔 씨는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렇다면 가능한 설명은 오직 하나뿐이지.”
포비 부인이 말했다. 그녀 역시 중요한 사실을 깨닫고 흥분할 대로 흥분해 있었다.
그녀가 거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에일사는 멍하니 서서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싱이 가버린 것을 알았다. 아무런 인기척도 나지 않았는데, 가게 현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에일사는 몸을 창턱에 기대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네모난 4월의 하늘이 창백하니 흰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하늘 한쪽에 검은 선이 나타났다. 봄과 함께 찾아오는 철새 떼가 종이에 인쇄해놓은 글자처럼 빽빽한 직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버크셔 씨는 존재하지 않는데, 우리는 그의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어. 그렇다면 가능한 설명은 오직 하나뿐이지.”
순간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으면서 하늘이 더욱 하얗게 보였다.
깨달음의 실체는 번갯불이나 천둥처럼 빠르게 떠오르지 않았다.
--- p.3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