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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끝난 건 아니야

세상이 끝난 건 아니야

청소년 걸작선-15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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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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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1년 11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12g | 140*215*20mm
ISBN13 9788983946782
ISBN10 8983946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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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내게 이르셨도다. 내가 모든 살아 있는 것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그러지 말고 제발 좀 올려줘요!”
물속의 남자가 소리 질렀다. 언덕만 한 물결이 남자의 머리를 덮쳤다. 남자는 허우적거리며 다시 떠올라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한기에 벌벌 떨었다.
“모든 육신 있는 것들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니 세상의 종말이 이르렀노라.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돌았어요? 배에 태워줘요!”
야벳이 망을 질질 끌며 갑판 끝으로 뛰었다.
“보세요, 아버지! 이걸 던져주면 저 사람이 붙잡고 올라올 수 있어요!” (……중략……)
배가 지나간 자리에 사람 머리통만 한 포도주 부대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 포도주 부대는 금세 두 개로 분리되었다. 그리고 우리 뒤로 계속 멀어져서 물 위의 점 두 개로 줄어들었다.
나는 선실로 들어가 어머니 옆에 앉았다. “남자가 죽었어요. 살아 있었는데, 이젠 죽었어요.”
“그런 건 얼른 잊는 게 좋아.” 어머니가 서둘러 말했다.
“하지만 하느님이 그 남자한테 가죽부대를 주신 건…… 하느님의 뜻이 아니었다면, 남자가 붙잡고 헤엄칠 물건을 발견했을 리 없잖아요. 하느님이 남자를…….”
어머니가 두 손가락을 내 입에 갖다댔다. “아버지가 알아서 하신다. 하느님의 뜻을 논하는 건 우리 여자들의 일이 아니야.”

동물마다 두 마리 넘게 왔다. 나로선 그게 가장 고역이었다. 어떤 종은 수백 마리가 왔다. 아버지는 역정을 내셨다. 동물들이 오는 길에 자기들끼리 알아서 선발 과정을 거칠 것으로 기대하셨나? 동물들이 제비뽑기라도 할 줄 아셨나? 모르겠다. 뒤에 남겨져 죽기 싫은 건 우리 이웃이나 동물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어쨌든 난리가 따로 없었다. 동물에 따라서는 떼로 몰려왔다. 동물들이 천막을 밟아 뭉개고 사람들을 할퀴고 쏘고 물었다. 암소와 수소를 배에 태워야 하는 것도 문제였다. 소들은 우리 것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영락없는 가축도둑이었다.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형들이 동물들을 진압해 종류별로 둘만 남기고 죽여 없앴다. 이걸 본 이웃사람들도 당연히 살육에 참가했다. 형들이 자기들을 거들고 있다고 생각한 거다. 동물은 돌림병이나 다름없었다. 박쥐들이 사람들 팔꿈치로 기어오르고, 담비는 바늘 같은 이빨로 깨물고, 비둘기 떼는 몇 분 만에 포도덩굴을 홀랑 줄기만 남겨놓았다. 그래서 이웃들도 두 팔 걷어붙이고 몽둥이와 소몰이 막대기와 아버지의 연장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배에 오르는 동물들을 때려잡기 시작했다. 나는 어떻게든 설명하려 했다……. (……중략……)
셈 형과 바스맛 형수는 아버지와 생각이 달랐다. 큰형 부부는 하느님 말씀은 유용한 동물만 태우라는 뜻이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다양하다는 게 얼마나 멋진 건지 몰라서 하는 소리다. 각양각색의 동물들…… 그 많은 동물들을 하느님이 죄다 다시 창조하시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그 많은 것을 어떻게 다시 생각해내나? 그건 하느님이라도 어렵다. 똑같이 두 번 만드는 건 불가능하다.

“형제들이여! 주께서 함께 하시길!” 세 사람 중 나이 지긋한 남자가 외쳤다.
“물러가라!” 셈 오빠가 활시위를 잔뜩 당긴 채 대꾸했다.
“왜 그래요? 배에 전염병이 돌아요?”
말씨를 들으니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못 알아들을 정도로 이상한 건 아니었다. 잇몸이 붓고 이빨이 흔들리는 우리 쪽 남자들에 비하면 오히려 발음이 정확했다.
“물러가라니까!” 함 오빠도 외쳤다. 오빠는 시위를 당기려 안간힘 썼다. 활이 습기 때문에 뒤틀려서 시위가 제대로 당겨지지 않았다.
“병이 드신 것 같은데 우유와 과일을 좀 나눠드릴게요!”
이방인 남자가 윗입술을 문질렀다. 우리들 윗입술에 말라붙어 있는 피를 가리키는 동작이었다. 이방인들의 배 후미에 깨끗한 동물우리가 있고, 그 안에 염소와 새끼 염소 대여섯 마리가 묶인 발로 절름거리고 다녔다. 더운 공기 때문에 염소들의 점박이 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네 번째 사람이 염소젖을 짜고 있었다. 어린 소녀였다. (……중략……)
“대신 저희에게 빵과 소금을 나눠주시겠어요?” 여인이 외쳤다.
셈 오빠가 활을 쏘았다. 화살이 상대방 배의 옆면에 박혔다.
“너희는 주님의 눈에 혐오스런 쓰레기야!”
오빠가 외쳤다. 하지만 남의 얼굴에서 빌려온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말이 어눌하게 나왔다.
이방인이 자기 아내를 팔로 감싸며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재앙의 시기일수록 서로 도와야 합니다.” 이방인이 슬프고 실망스런 얼굴로 말했다. “여러분을 발견하고 우리 가슴은 기쁨에 부풀었어요! 우리만 있으면 너무 외로우니까요. 하느님께서 우릴 떼까마귀처럼 살도록 만드셨지, 외까마귀처럼 살라고 만드신 건 아니에요.”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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