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백은 쓸데없이 입을 놀리지 않고, 이쪽에 맞춰 반응해주고, 아무리 험하게 다루어도 불평을 하지 않아, 나를 상대하기에 더할 나위 없다. 최근에는 그저 때리는 것만으로는 재미가 없기 때문에 발로 차기도 한다. TV에 나오는 킥복싱을 유심히 보고 연구하여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다리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비해 다리가 그렇게까지 어설픈 줄은 몰랐다. ……
각 출판사에서 열 개 정도씩 샌드백을 구입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작가의 사진을 여러 장 준비하여 샌드백에 붙이고, 때리든 차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어떨까. 뜻밖에 내 사진이 제일 너덜너덜해진다거나…….
---「샌드백과 인간관계」중에서
잽싸게 도구를 챙겨 넣고 나는 같은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흙탕에 애를 먹고 눈에 파묻히고 엉금엉금 기어 급경사를 오르는 도중, 나는 물가 가까운 곳에서 놀고 있는 물고기를 발견했다. 삼사십 센티미터나 될 법한 커다란 송어 여러 마리가 무리를 지어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흥분해서 황급히 하지만 조용히 비탈면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송어 무리가 여기저기에 있었다. 배가 고파서 얕은 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도구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혹시 구더기 미끼를 따라오더라도 가는 목줄로는 한 방에 끊어지고 말 것이다. 루어나 플라이라도 있으면 좋았을걸 생각했지만,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손가락을 물고 바라보는 것도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라 돌을 주워 내던져버렸다. 얕은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만족스럽지 않았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파문이 사라졌을 때는 숭어 한 마리 남지 않고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나는 “다음에 다시 올 때는 죽을 줄 알아”라고 투덜대고는 다시 엉금엉금 기어올랐다.
---「낚시에도 때가 있다」중에서
나와 영화의 만남은 문부성 추천으로도 나무랄 데 없는 어린이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빨간 풍선]과 해양기록물의 선구인 [푸른 대륙]이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런 훌륭한 작품을 접하게 하여 인성교육을 시키려 한 아버지의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초등학생치고는 너무나도 찌들어버린 내 눈은 하나같이 권총을 움켜쥔 무시무시한 갱 배우를 향해 있었다. 총구에서 뿜어진 불에 남자가 푹 쓰러지는 스틸 사진이 당시에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기세였던 각 영화관에 장식되어 있었다. 나는 쩍 입을 벌리고 한참이나 그 앞에 서 있었다. 가슴이 설레고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
어찌된 일인지 갱 영화라고 하면 아무리 졸작이라 하더라도, 정말로 어중이떠중이 같은 스태프들이 2주 만에 만든 것이라도 보는 동안에 심장의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는다. 용돈을 통째로 털어 넣어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중학생이 되자 갱 영화의 수도 훨씬 늘어나 대부분의 포스터가 화약 냄새로 가득 찼다. 나의 흥분은 매일처럼 이어졌고 유일한 고민은 어떻게 티켓 값을 마련할 것인가였다.
---「나의 멘토 [알 카포네]와 [딜린저]의 미학」중에서
여름 어느 날, 나는 산속에 살고 있는 친구를 방문했다. 그 집은 그가 4년에 걸쳐 손수 지었는데 참으로 구조가 야무지다. 집도 마음에 들지만 그곳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전경도 마음에 들었다. 나무들 저편에 기자키 호수가 황금색으로 빛나고, 그 건너편에는 낮은 산이 있고, 또 그 건너편에는 기타알프스가 있었다. 고생해서 찾은 땅이라고 자랑할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나는 뭔가 하나가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이전부터 마음에 걸렸다. 무엇이 빠졌는지는 몰랐다. 그것이 음악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음악만 있으면 그 공간은 완벽해짐에 틀림없었다. ……
음량은 80~90퍼센트까지 올렸다. 파워 앰프의 위력은 대단해서 숲에 가라앉아 있던 공기가 확 울리며 어둠도 밀어내는가 싶더니, 우리는 곧바로 도취의 한가운데로 내던져졌다. 나무들 사이로 별이 보이고, 바람은 한 점도 없고, 시간은 정지했다. 너무나 감동한 나머지 너나없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일어서기도 하고 웅크리기도 하고 주변을 쏘다니기도 했다.
---「음악이 있는 완벽한 공간」중에서
봄이 되고서 지프를 타고 산에 도전했다. 그것은 새로운 재미고 놀이였지만, 동시에 삶을 영위하게 해줄 감동의 세계이기도 했다. 일도 하지 않은 채 아침부터 저녁까지 마구 달렸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산에는 좀 더 재미있는 길이 무수히 있음을 발견했다. 폭이 좁아서 지프로는 들어갈 수 없는, 나무꾼이 다니는 길이나 짐승이 다니는 길이 그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 그 길을 달리려고 했다. 내가 아직 모르는 길이 근처에 많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
불타코 사의 ‘알피나’라는 머신 엔진을 돌렸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소리가 좋았다. 살아 있는 것처럼 떨었다. 나도 떨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어설펐다. 국산차처럼 걸터앉아 기어를 저속에 넣고 단숨에 스로틀을 열었다. 그러자 이게 어찌된 일인가. 순간적으로 앞바퀴가 허공으로 높이 솟구쳐, 나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길들이지 않은 말이었다.
나는 “재미있는데”라고 중얼거리고 다시 한 번 그 말에 올라탔다.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차의 세계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