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년 11월 12일, 의사이자 화학자인 찰스 토머스 잭슨과 치과의사 윌리엄 그린 모턴은 보스턴에서 미국 특허청에 발명 특허를 신청했다. 특허번호는 US4848이었는데, 증서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외과 수술의 개선’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개선’은 수술 환자에게 에테르 증기를 흡입시키는 형태의 새로운 기술을 의미한다. 신경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에테르의 성질을 이용해 환자가 고통 없이 수술받을 수 있게 한다는 발상이다. 그런데 잭슨과 모턴도 인정했듯이 그 같은 종류의 물질이 통증 완화를 목적으로 사용된 일은 과거에도 있었다. 하지만 환자에게 직접 흡입하게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의료행위였고, 두 사람이 해당 기술에 대해 지적 재산권을 주장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 p.7-8
1831년에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처음 합성해낸 클로랄 하이드레이트(간단히 ‘클로랄’로도 부르지만 정확히 하자면 잘못된 명칭이다)는 약사라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물질이었다. 하지만 여러 놀라운 속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1869년부터 공식적으로 관찰된 속성은 특히 정신의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마취제와 진정제 분야에서 발전 가능성이 큰 효능, 예를 들어 불면증 치료에 쓸 수 있는 효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흥분’이 주요 증상인 환자들이 누워 있는 80개 병상을 관리해야 하는 정신병원 책임자에게 그 같은 물질은 ‘고객 관리’ 측면에서 흥미롭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한동안 클로랄 하이드레이트는 간호사와 의사들이 말을 잘 안 듣는 환자를 다룰 때, 완곡하게 표현해서 ‘정신운동성 초조psychomotor agitation’를 보이는 환자를 상대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수단 중 하나였다. --- p.22
메르크에서 시작해 마리아니와 그 아류들을 지나 코카콜라에 이르기까지, 산업 자본주의 발전 초기에 코카인은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고 알려진 것과 비슷한 역할을 산업적으로도 수행했다. 강력한 ‘활력소’ 역할 말이다. 현대 의약품산업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코카인(그리고 같은 계통의 제품들) 덕분이었으며, 신경쇠약을 상대로 한 시장이 시시한 돌팔이 약장수는 발도 못 붙이는 수익성 높은 사업이 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히 그 같은 발전은 드러내기 곤란한 음지에서의 활동이 동반되지 않고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코카인은 현대 자본주의가 부패 혐의에 가장 많이 연루되는 지점, 곧 공권력과의 관계에서 항상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넓게는 20세기 전쟁사에서) 수행한 기능이 문제든, 아니면 평상시에 약전에 다른 이름으로 숨겨져 있는 방식이 문제든 간에, 현대사회의 이면은 마약성 물질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 p.49-50
19세기 말, 클로랄 하이드레이트의 성공은 밤을 힘의 회복을 위한 시간으로 보는 경찰적 사고에 따른 것이자, 좋은 노동자와 나쁜 노동자를 구분하는 도덕적 기준에 따른 견해의 성공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같은 견해는 당연히 반대 의견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야간 치안과 공공 조명의 동시적 발명 덕에 사람들은 밤 시간을 다른 방식으로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886년, 뉴욕에서 최초의 현대식 나이트클럽 웹스터홀이 개장한 일은 상황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전기 조명과 자동 피아노의 시대를 맞아 ‘파티’가 재발견되었던 것이다. 구식 주점들이 밤을 상대로 여느 가정집과 별로 다를 게 없는 관계를 유지하는 동안, 나이트클럽은 어떤 순간에도 후퇴할 필요 없이 어둠을 가로지르는 등대 불빛 같은 것이 되고자 했다. 달리 말하면, 나이트클럽의 출현은 경찰의 통제를 벗어나 밤을 점유할 수 있는 방법의 출현을 의미했다. --- p.69-70
호르몬은 용어의 그리스어 어원이 암시하듯, 어떤 장기를 ‘활성화하거나 흥분시켜서’ 그 장기의 활동이나 성장이 체내 다른 곳에 위치한 장기와 조화를 이루게 해주는 물질임을 강조한 것이다. 1923년부터 그 호르몬 작용이 기술된 프로게스테론의 경우, 난소가 나머지 생식기관을 활성화해서 정상적으로 임신할 수 있게 해주고 성적 충동도 불러일으켜주는 물질이었다. 따라서 핀커스의 약이 그런 것처럼 프로게스테론에 손을 대는 것은 인체 장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에 손을 대서 그 조화를 다른 목적을 위해(더 정확하게는 아무 목적 없이) ‘재프로그래밍reprogramming’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요컨대 피임약은 여성의 생식기관에 혼란을 야기하는 장치였다.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기능이 잘 되는 곳에 기능장애가 생기도록 만들고, 활성화되는 곳에 비활성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실제로 피임약은 난소와 자궁의 비활성화 및 부조화와 함께 흥분성이 전반적으로 제거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이 같은 ‘탈흥분화’는 많은 사용자에게서 모든 성적 욕구가 붕괴되는 형태로 나타났다. --- p.88-89
모든 군중은 확장되려는 경향이 있다. 모든 군중은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에서 벗어나려 하고, 소멸을 무릅쓰고 점점 더 많은 개인을 포함시키려 든다. 흥분은 이러한 포섭을 가능하게 하는 감염의 원리에 붙여진 이름이다. 타르드는 이 원리를 ‘공중’에만, 다시 말해 그가 군중의 신분에서 풀어준 종류의 군중에만 관계된 것으로 보았지만 사실은 모든 형태의 군중이 그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공중과 군중을 구별한 이들 모두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는 흥분의 정치만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흥분을 멈추게 하려는 모든 시도는 정치를 멈추게 하려는 시도, 개인의 존재를 시험대에 올리는 수단으로서의 정치가 일어나지 않게 만들려는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 p.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