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하이케,
너의 몸은 완전 동글,
너의 눈은 점점 침침,
주름살은 자글자글.
하지만 기뻐해.
얼마나 다행이야?
통풍은 아직 없으니.
아내가 싸늘하게 말했다: “참 예쁜 시네. 너무 예뻐서 하이케가 빨랫줄로 제 목이나 당신 목이나 확실하게 둘 중 하나는 예쁘게 맬 것 같네.”
아내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었다.
한 여인이 쉰 살이 되는 날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날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고, 생일날 가서도 풍자니 해학이니 어쭙잖은 짓 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당부하고, 협박한 후, 이렇게 덧붙였다.
“그들이 원하는 건 유머가 아니야. 그들이 원하는 건 위로와 찬사야. 입에 발린 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들은 그게 듣고 싶은 거야. 아름답고 달콤한 거짓말.” --- p.42~43
프란치스카 발렌틴.
딸아이의 새 담임선생님.
나는 그녀를 학부모 간담회에서 처음 만났다. 간담회가 진행되는 내내 그녀는 내게 각별한 눈길을 보냈다.
일주일 뒤 그녀로부터 꽤 신경이 쓰이는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학부모 간담회는 우리가 서로를 알아가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어볼 것이나 걱정스러운 것이 있으면 주저 말고 전화 주세요. 업무가 끝난 시간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자의적인 해석은 금물이다. 당연하지!
하지만 한 여인이 한 남자에게 “주저 말고 전화 주세요.”라고 말했다면 그것은 ‘당신을 이렇게 기다리고 있잖아요! 어서 내게 전화해요!’를 의미한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연하지!
게다가 업무가 끝난 시간이라도 상관없다고 덧붙였다면? 발렌틴 선생님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젊은 아가씨 프란치스카로서 나와 통화하고 싶다는 말 아니겠는가? 당연하지!
요컨대 나와 사적인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말 아니겠는가? 휴우… --- p.60~62
물론 나는 잃어버린 나의 젊음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 원기 왕성했던 내 젊은 날의 밤들도. 그러나 내가 꿈꾸는 것은 결단코 젊은 혈기 왕성한 열락의 밤이 아니다. 단지 나는, 지난날의 젊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설레면 설렘 속에, 슬프면 슬픔 속에, 기쁘면 기쁨 속에, 아무 걱정 없이, 깃털처럼 가볍게, 그렇게 빠져들 수 있기를 꿈꿀 뿐인 것이다. 그렇게 깃털처럼 가벼웠던 나의 젊은 날들이 사실은 또 그렇게 극단적으로 오래된 과거가 아니라는 사실이 내게는 또 그렇게 몹시 낯설기만 할 뿐인 것이다. --- p.67
계속해서 나는 나의 트랙을 돌았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트랙이 정말 나의 소유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운동장 트랙은 공공시설이었고 따라서 트랙 위를 달리는 사람은 나 말고도 꽤 많았다. 대부분 중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공통적으로 비장한 표정으로 달렸고, 공통적으로 과장된 장비를 착용하고 달렸고, 공통적으로 천천히 달렸다.
어디선가 난데없이 젊은 인간이 나타나 우리들과 함께 달릴 때도 있었다. '함께'라는 표현에는 물론 일정 정도의 어폐가 있을 수는 있다. 값비싼 소시지 껍질 장비들을 착용하고 거센 숨을 몰아쉬며 깜빡이는 GPS 맥박계 겸 만보기를 힐끔거리면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우리를 그들은 다 낡아빠진 슬리퍼 같은 것을 질질 끌면서 추월했다.
언젠가 열두 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를 추월한 적도 있었다. 그 여자아이는 맨발이었다. 강렬한 모욕감을 느꼈고, 즉시 추격에 나섰고, 마침내 그 여자아이를 따라잡았고, 그리고 나는 토했다. --- p.96~97
나는 하루에 다섯 번 브루노의 배변통을 치운다.
아내 말로는 좀 과한 것 같다지만 집에 손님이라도 오는 경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 무슨 죄를 졌다고 남의 집에서 고양이 똥냄새를 맡아야 하는가 말이다. 브루노의 배변통을 청소하는 문제는 타인에 대한 배려의 문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나는 체를 들고 쪼그리고 앉아 배변통 속 모래를 뒤져 똥을 걸러 낸다. 오줌에 뭉쳐진 모래덩어리도 걸러낸다. 아내는 브루노의 배변통 청소에 열중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 서부개척시절 리오그란데 강가에서 사금을 채취하던 사람들이 생각나서 무척 감동스럽다고 했다. 사금 채취와 감동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 말의 뉘앙스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렇게 말했다.
또 한번은 이렇게 말하고는 자기 말에 자기가 웃긴지 괜스레 혼자서 박수를 치며 깔깔댄 적도 있다: “그렇게 공들여 청소하는 걸 보면 청소 끝난 다음에 꼭 당신이 거기 들어가서 똥을 눌 것 같아.”
--- p.118~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