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2년 06월 08일 |
---|---|
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510g | 147*220*30mm |
ISBN13 | 9788960512184 |
ISBN10 | 8960512184 |
발행일 | 2012년 06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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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510g | 147*220*30mm |
ISBN13 | 9788960512184 |
ISBN10 | 8960512184 |
추천사 - 무섭도록 예리하고 매혹적인 선동이다! (김선우)ㅤ 서문 - 나는 왜 저임금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나ㅤ 1장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ㅤ 서비스 업계에 넘쳐 나는 인류애 │프롤레타리아의 평온을 해치는 관리자들 │가난한 자들만의 절약법 따윈 없다 │쉬지 말고 리듬을 타라 │내 옥시토신의 수혜자 접시닦이 '조지' │호텔 청소부로 투잡을 뛰다 │명백한 실패 2장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ㅤ 모텔을 '집'으로 │구직 활동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천국은 요양원과 닮았다 │인간 진공청소기 │번식녀 계급과 청소부 계급 │통증이 지배하는 세계 │대리석 벽에서 흐르는 노동자들의 '피' │유니폼이 아니라 '죄수복' │식량 상자엔 사탕만 가득 │파업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고마워하지 않는다 3장 '동료'라는 이름의 노예ㅤ 인성 검사에 아부하기 │나의 원본 '캐럴라인' │약물 검사의 또 다른 기능 │당신은 정말 좋은 직장을 선택했다 │미국 최악의 모텔 │단순노동은 '단순'하지 않다 │나는야 월마트의 '서바이버' │지킬 박사와 하이드 │우리들이 월마트를 월등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왜 떠나지 않는가 │반역의 씨를 뿌려라 4장 왜 악순환이 계속되는가ㅤ 취업은 B+ 생활은 F │임금은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다 │당근과 채찍 │사라지는 빈민들 │그들은 주고 또 준다 후기 - 잠입 취재 그 후 10년, 상황은 더 나빠졌다ㅤ |
역사를 보면 유장하게 지속되는 삶의 한가운데에는 언제나 중심에 사람이 있다. 지나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원초적인 사실조차도 잊게 하는 것 같다.사람이 중심이 아닌 물질이 중심이 되어 가고 있는 사회의 모습에서 한편으로는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최근 한 대선후보가 최저임금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다.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의 생활상과 빈곤층사이의 생활의 갭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는 생활고로 인한 자살률만 보아도 자본주의 사회이자 시장만능주의 사회에서 워킹 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힘겨운 삶인 것만은 확실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은 기자인 저자가 이런 빈민층들의 실제적인 삶으로 뛰어들어 최저 임금만을 가지고 생활이 가능할까? 라는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직접 저임금 노동의 현장에 뛰어들어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 등으로 위장 취업하여 노동의 실태를 보고하는 일종의 워킹 푸어(근로 빈곤층) 생존 프로젝트이다.
전국노숙자연합은 시간당 8달러 89센트는 받아야 미국에서 평균적으로 침실이 하나 딸린 아파트에 살 수 있다고 발표했다. 워킹 푸어의 시간당 임금은 6~7달러. 경제정책연구소에서 1998년 발표에서는 노동인구의 거의 30퍼센트가 시간당 8달러 이하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이 에런라이크에게 실험정신을 자극하게 했다. 에런라이크는 이들이 8달러 이하를 받으면서도 생활이 가능한 것을 보며 그들에게 나름의 생존비법이 있다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런 모험심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프로젝트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플로리다의 키웨스트에서 저임금 노동자 생활을 시작은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시간당 2.43달러에 팁을 더한 금액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에런라이크는 식당을 맨손으로 나와야 했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집세와 보증금이 없으니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
의료보험에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
저자는 워킹 푸어의 생활과 더불어 수입과 집세를 맞추는 것이 가능한지를 실험하지만,
딸린 가족이 없는 홀몸에 , 건강하고, 차까지 있는 나 같은 사람이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도
먹고 살기가 아주 힘겨울 정도로 빠듯하다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임금은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
저자 에런라이크는 생물학박사이자,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이다. 그녀에게는 노후를 편히 보낼 수 있는 연금과 의료보험도 있고, 청결한 아파트가 있다. 중산층였던 그녀가 빈곤층의 생활을 겪어보는 과정에서 느꼈던 것은 “세상에 아무리 보잘것없는 직업이라도 ‘아무 기술도 필요 없는’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자신의 학식이 자신이 일을 배우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으며, 자신이 겪은 여섯 가지의 노동에서 배운 업무중에서 손쉽게 익힌 업무는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인생 전반에서 성취한 업적과는 상관없이 저임금 노동의 세계에서 그저 저자는 지극히도 평균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것은 자신의 노동보다 더 값진 깨달음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괴테가 삶의 진리는 체험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듯이 삶은 몸으로 직접 부딪쳐 얻게 되는 체험에서 깨달음이 온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백 날 공부해봤자, 삶이 주는 위대한 깨달음은 책상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진리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 저자 에런라이크의 워킹푸어 생존기는 많은 울림을 전해온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할 당시는 그래도 경제 호황기였다. 경제호황기에서도 워킹 푸어의 삶은 빈곤 그 자체였으니, 지금은 아마도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워킹 푸어의 생활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 않다. 우리나라도 최근 최저 임금의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임금이 사실상 깎여지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결국 그대로 이거나 빚에 허덕여 살 수 밖에 없다. 반면 기업은 원자재가가 조금만 올라도 물건 값을 대폭 올리기 때문에 소비자인 노동자들은 그 돈을 다시 기업들에게 이자까지 쳐서 상납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임금이 오르지 않는 가장 명백한 이유는 고용주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임금 상승을 막기 때문이다. 274쪽
정치적 분위기도 빈곤과 가난한 사람들에 관해 침묵을 지키자는 ‘암묵적 합의’라도 맺은 듯하다. 291쪽
책의 마지막에 저자는 워킹 푸어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모방송에서 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임금착취 당하는 현장을 고발한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집에 와서 겨우 밥 한 끼 먹는데 한 끼 밥상이 밥과 김치도 아닌 김칫국물이 전부인 밥상이다.
저자 에런라이크는 누군가가 배를 곯는 덕에 우리는 더 싸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고, 먹고 살기에 형편없이 모자란 임금을 받는 그 누군가가 있기에 우리의 삶이 편안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한다. 비록 최저임금을 몰랐더라도 당신이 누리고 있는 부는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란 사실 정도는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이 책으로 인해 미국은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로 하였다. 지금도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워킹 푸어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예일대를 비롯한 600여개 대학의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만큼 워킹 푸어에 대해 사회적으로 보호와 안전장치가 시급하다고 보아야 한다. 가난을 범죄로 내모는 나라가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노동의 배신』은 자본주의 이면을 몸소 체험으로서 보여주는 최고의 프로젝트이다.
정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나 길에 나앉은 극빈자들을 제도적으로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자. 어쩌면 오늘날 수많은 미국인이 생각하듯이, 빈곤을 줄이는 공공 프로그램을 집행할 예산을 확보하기가 정말로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정해서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311쪽)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우울한 워킹 푸어
지난 달 나는 부산으로 가는 6시 46분발 KTX를 타려고 광명역에 있었다. 출발까지는 아직 30여 분이 남아 역내에 있는 뚜레쥬르 빵집
을 들어가 샌드위치와 따뜻한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했다. 선남선녀라 부를만한 젊은 청춘들이 카키색 유니폼을 입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보기 좋다고 생각하다가 문득 ‘저들은 대체 몇 시에 출근한 걸까’ 궁금해졌다. 나아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들은 무엇을 타고 출근했는지,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근무를 한다면 도대체 시급은 얼마일지도 궁금했다.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밝게 웃는 미소로 일하는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큼 난 뻔뻔하지 않아서다.
대신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봤다. 2012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4,580원이다. 주 40시간을 일하면 겨우 월 95만 7,220원을 벌 수 있다는 소리다. 우리나라의 사람값은 헐값이다. 한 시간 일하면 3,700원짜리 맥도널드 빅맥버거 1.2개 밖에 못 사먹는다(다른 나라 애들은 좋겠다. 일본은 2.4개, 호주는 3.5개나 먹을 수 있단다).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처럼 취업난과 고용불안을 반영하는 말은 이미 옛말이 되었다. 대신 삼포세대(직장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청년층), 거마대학생(등록금을 벌기 위해 서울의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 다단계업체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학생들), 청년실신(청년 대다수가 졸업 후 실업자나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뜻), 스펙리셋족(취직을 위해 편입학 등을 거듭하며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맞추려는 사람),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행인(행정 인턴), 장미족(장기간 미취업 상태인 대학졸업생들),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생각을 해야 한다) 등 청년 실업난을 빗댄 신조어들이 끝없이 생겨나고 있다(선대인씨, '문제는 경제다'에서 이 신조어들을 잘 정리해줘서 고맙소).
어렵사리 일을 구한다 해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사람값이 헐값인지라 죽어라고 일을 해도 민생고를 해결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저축을 하기 빠듯할 정도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근로빈곤층을 우리는 워킹 푸어working poor라 부른다. 2012년 4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人 은 직장인 1406명을 대상으로 ‘빚 현황’에 대해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7명은 현재 빚(평균 3,831만원)이 있고, 자신이 워킹 푸어라고 대답했다. 문제는 의미대로 따져보면 우리나라 근로자가 너나할 것 없이 워킹 푸어라는 것이다.
지난 해 책<긍정의 배신>(부키)을 써서 근거 없는 긍정주의를 실랄하게 비판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바버라 애런라이크가 이번에는 <노동의 배신>(부키)을 통해 빈곤에서 허덕이는 미국 워킹 푸어의 현실을 고발했다. IT붐이 한창이던 2000년 어느 날 바버라는 ‘시간당 6, 7 달러 하는 최저임금으로 온전한 생활이 가능할까? 통념처럼 가난은 게으름과 무능의 소치일까?’하는 의문을 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실로 뛰어들어 체험 취재를 했다. 그리고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청소부, 월마트 직원 등 워킹 푸어로 일한 3년간의 체험을 녹여 책에 담았다.
이 책은 전형적인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영국의 TV 프로그램 ‘언더커버 보스’를 닮았다. 전체적인 내용은 매주 일주일간 자기회사의 말단 직원으로 입사한 CEO가 현장직에 있는 고충과 애환을 느끼고, 회사에 필요한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는 스토리인데, 이 프로그램의 백미는 CEO가 실제로 이러한 경험으로 통해 얻은 깨달음을 나중에 복귀한 후 회사경영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면서 직원들의 니즈가 충족되면서 작은 감동을 준다는 점이다.
하지만 <노동의 배신>의 결말은 그 반대다. 저자는 체험을 통해 끝없이 높아져가는 물가와 집값(임대료) 때문에 시간당 5달러 남짓의 최저임금만으로는 먹고 잠자는 최소한의 생활조차 힘들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아울러 ‘가난은 게으름과 무능의 소치‘라는 생각은 편견일 뿐, 한 번 빈곤의 늪에 빠지면 좀처럼 스스로 벗어나지 못하게 되고, 부가 되물림 되듯 빈곤 역시 되물림 된다는 맥 빠지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그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떠한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얼마를 받았는지 하는 다소 뻔한 정보들은 궁금하지 않았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는 독자라면 최저임금노동자로서 그녀가 일하는 고충 정도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들이기 때문이다(전혀 짐작이 안 간다면, 당신은 복받은 사람이다). 나도 대학시절 방학 때면 등록금 마련을 위해 학교에 근로 장학생을 신청해서 학생회관 식당에서 그릇을 닦거나, 학교 앞 지하철 공사 복공판 위에서 막노동을 했었다. 주말 새벽에 청과물시장에 가서 트럭에 과일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20년 전만 해도 두 달 정도 열심히 일하면 등록금 정도는 마련되는 시절이었다).
오히려 나는 그녀가 위장취업을 한 후 매일 만나는 자괴감에 주목했다. 워킹 푸어의 핵심이자 가장 우려되는 점이 아무리 일을 해도 벗어날 수 없다는 ‘무력감’을 낳는다는 점이라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 해결책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자리를 갖는 것 뿐 아니라 좋은 일자리, 즉 고용 안정성 및 근로 조건 등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일텐데, 언감생심. 최저임금일망정 공정하게 받기조차 힘든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 워킹 푸어가 급속하게 늘어난 것은 비정규직이 등장한 때문이다. 실업자와 근로자 사에 비정규직이라는 어중간한 일자리 개념이 생겨나면서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동했거나, 구직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시작하고, 한번 비정규직에 속하면 정규직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되면서 근로조건은 끊임없이 열악해지고 있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열악한 근무환경을 알면서도 어쩔수없이 비정규직을 택하다보니, 인생조차 비정규직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워킹 푸어가 비정규직으로 들린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워킹 푸어는 엄연히 이 땅에서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시는 사람들, 우리의 형제이자 이웃이다. 저자는 독자들을 향해 워킹 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 스스로 수치심을 가져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다. 다른 사람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배를 곯는 덕분에 당신이 더 싸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여자가 먹고살기에도 형편없이 모자란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면 그 여자는 당신을 위해 지대한 희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동의에 의해 ‘워킹 푸어‘라고 불리는 그들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박애주의자들이다.”
갓 뽑아진 커피를 받던 배부른 아저씨 손님이 잘못해 커피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알바생인 듯한 청년은 순간 당황해 하는 손님에게 예의 함지박한 미소를 띠고 “죄송합니다, 손님. 얼른 다시 뽑아드리겠습니다.” 하며 고개를 숙였다. 배부른 아저씨는 사과 한마디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온전한 커피를 가져갔고, 알바 청년은 커피를 빨리 닦아내지 않으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듯 대걸레를 들고 부지런히 젖은 바닥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정장 양복을 입어도, 의사 가운을 입어도, 법관 옷을 입어도 어울릴 것 같은 저 믿음직한 청년이 대걸레질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또 다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묻지 못했다. 웃는 미소 뒤에 숨은 그의 속마음을 충분히 미루어짐작할 것 같아서였다. 왜 모르겠는가, 나도 지금 워킹 푸어인데...
지난 주 신문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만든 햇살론 같은 저소득층 대상 대출 상품이 출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각 지점을 통한 최초대출자 13명의 대출금 상환 결과를 알아보는 기사였다.
정부의 의도대로라면 대출자들은 사금융과 대비해서 훨씬 적은 이자율을 적용받았으니 지금쯤은 어느 정도 빚을 갚고 개인적으로도 생활에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쪽으로 나아갔어야했다. 그러나 취재결과는 그 반대였다. 최초 대출자 13명은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이자연체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오히려 빚이 늘어난 경우도 있었다. 그들의 사연을 살펴보니 실직과 일거리 감소로 인해 줄어든 수입부족 등이 대부분의 이유를 차지하고 있었다. 즉 빚을 갚고 싶어도 사회적인 경기 불황으로 수입창출이 어려워져 생활은 더 어려워진 것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 속설이 있다. 선거 때만 되면 후보들은 저마다 서민경제를 먼저 살피겠다는 공약이 만발한데도 가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가난한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에 점점 더 가난의 덫에 갇혀버리는 걸까? 정부의 말대로 최저 시급으로 과연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이가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생물학박사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널리스트이자 사회운동가로 자신이 직접 저소득층이 되어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고자 그 현장에 뛰어들었다.
저자는 미국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상위 20%에 속하는 자신의 위치에서 벗어나 하위 20%의 모습으로 생활하기 위해 여러 직업을 옮겨가면서 자신의 실험을 계속했는데 그가 참여한 직업은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이었다. 이 체험을 할 동안 미국은 호황기였다고 하는데 그런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호구를 위해 온전히 자신의 힘을 다써버린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가장 먼저 가난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집세였다. 자신이 집을 가지고 있다면 저자가 체험한 저소득층의 급여로 잘 살지는 못해도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할 듯 보였다. 그러나 매일8시간 정도 일해서 한 달 동안 벌 수 있는 1,200~ 1400달러 정도의 돈으로 500~600달러의 집세를 내야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집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간신히 끼니를 해결하고 나면 여러 가지 세금이나 사회적 비용이 드는데 여기에 다른 가족을 부양해야 되는 입장이라도 되면 매달 적자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저자가 보는 이 환경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투잡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몸은 쉽게 망가지고 망가진 몸을 위해 할 수 있는 어떤 환경도 가지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은 망가지기 직전까지 일을 하다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면 극빈층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아플 때마다 커다란 고민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의료보험제도를 가진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 세계1국이라는 미국의 저소득층을 괴롭히는 것은 집세 다음으로 병원비인 듯했다. 미국의 의료보험제도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민간에서 운영한다는 사실은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전반의 더 나은 서비스를 위해 의료보험 민영화를 추진하자는 사람들이 있는데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도 비싼 병원비로 인해 쉽게 병원에 가지 못하거나 적절한 약을 먹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보인다.
집세와 병원비 다음으로 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은 관리자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보는 시선이었다. 이런 직업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관리자들에게 가방을 검사당할 수도 있으며 원한다면 언제나 약물검사에 응해야하고, 미래의 절도범 취급을 받아야했고, 사용자의 말 한마디에 해고당해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인간이면 기본적으로 받아야하는 권리조차 누릴 수 없으면서 부당한 대접에 대해 제대로 표현조차 할 수없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가난하기 때문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난이 죄, 그 자체였다.
가난은 악순환의 고리를 물고 있다. 이 고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만큼 가난의 고리는 질기고 단단하다. 가난에 대해 사람들은 쉽게 비난을 보내고 있다. 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가. 남들만큼 다 쓰고 언제 가난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가난한 사람들을 보고 게을러서, 아무 생각이 없어서 혹은 사회부적응자라고 생각해버린다.
하지만 가난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한 매듭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평온한 생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에게 닥치는 사소한 불행(생각지도 못한 지출)은 너무나 쉽게 가난의 늪으로 사람들을 던져버린다.
이 책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저소득층의 노동이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한 다는 것을 고발하고 더 나은 처우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사회는 이 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자신들의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아직도 그대로 적용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한 가난해도 죄고, 그 가난한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것도 죄다. 가난에 대해서는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함께 노력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부터 우리 집의 지출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