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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2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04쪽 | 128*210*30mm
ISBN13 9788986022841
ISBN10 8986022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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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는 다르다. 비애는 거리가 없다. 비애는 파도처럼, 발작처럼 닥쳐오고 급작스러운 불안을 일으켜, 무릎에 힘을 빼고 눈앞을 보이지 않게 하며, 일상을 까맣게 지워버린다. 가까운 사람을 잃음으로써 비애를 겪은 사람은 거의 모두가 이런 ‘파도’ 현상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 p.40

‘부검’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부고’ 생각은 아직 해보지 않았다. ‘부검’은 나와 존과 병원 사이의 일이지만, ‘부고’는 그게 정말로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일이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일어났을까, 하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논리적으로 터무니없다는 걸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나는 존이 죽은 게 몇 시인지, 로스앤젤레스도 그 시간이 되었을지를 계산해 보고 있었다.
--- p.44

이제 안전해, 나는 UCLA 집중 치료실에서 퀸타나를 처음 봤을 때 이렇게 속삭였다. 엄마 왔어. 이제 괜찮을 거야. 퀸타나의 머리 절반은 수술 때문에 짧게 깎여 있었다. 긴 절개 자국과 절개 부위를 봉합하는 금속 스테이플이 보였다. 퀸타나는 기관 내 튜브를 통해서 숨을 쉬고 있었다. 엄마 왔어. 이제 괜찮을 거야.
--- p.131

그전까지는 슬퍼하기만 했을 뿐 애도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애는 수동적이었다. 비애는 저절로 생겨났다. 그러나 비애를 다루는 행위인 애도는 주의를 집중해야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마땅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에 관심을 끊거나 생각을 몰아내고 하루하루의 위기를 버텨낼 아드레날린을 새로 끌어 올려야만 할 시급한 이유가 있었다.
--- p.192~193

비애는 그곳에 다다르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장소였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예상하지만(알지만), 상상한 죽음 직후 며칠이나 몇 주가 지난 다음의 삶이 어떠할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 며칠이나 몇 주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 죽음이 급작스레 닥친다면 충격을 받으리라고 예상은 하지만, 이 충격이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혼란에 빠뜨리리라는 건 모른다. 탈진하고 슬픔에 잠기고 미칠 것 같은 심정이 되리라고는 예상한다. 우리는 실제로 미쳐 버릴 것으로는 예상치 않는다.
--- p.248

우리는 불완전하고 유한한 존재이고, 외면하려 해도 유한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실을 슬퍼하면서 좋든 싫든 우리 자신을 애도하게끔 되어있다. 우리의 이전 모습을.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자신을. 언젠가는 영원히 사라질 존재를.
--- p.261

글을 최종 교정할 때, 내가 저지른 오류가 어찌나 많은지 보고 깜짝 놀랐고 마음이 동요되었다. 잘못 옮겨 적거나 이름과 날짜를 틀리는 등 단순한 실수들이었다. 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라고, 운동 능력 저하와 스트레스인지 비애인지로 인한 인지 결손의 사례일 뿐이라고 자신을 달랬지만, 그래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내가 다시 정상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믿을 수 있게 될까? 왜 항상 당신이 옳아야 해? 존이 말했었다. 당신이 틀렸을 가능성은 생각해 볼 수 없어?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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