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같이 놀 친구가 없어 외로울 때면, 등불 아래에 쓰루가 감춘 꽃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힘이 솟았다. 그곳에 달려가 꽃을 찾아 헤매는 동안의 희망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 「니이미 난키치: 꽃을 묻다」 중에서
나는 바보와 거지가 세상에서 가장 싫고 창피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곧 학교에 가서 쓰게 될 글자가 아무래도 써지지 않는다. 글자를 못 쓰는 건 분명 바보일 거야. 나도 그런 바보였어, 그런 절망적인 기분이 들어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 「미야모토 유리코: 운모편암」 중에서
비가 자주 내렸던 것 같다. 너무 자주 내리면 아이들의 마음에도 축축함이 스며든다. 멍하니 격자문에 뺨을 갖다 댄 채, 빗물에 떠다니는 감꽃을 바라본다.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항아리 모양의 감꽃 여러 송이가 하염없이 떠다니면, 아이들도 하염없이 그걸 바라본다.
--- 「미야모토 유리코: 비와 아이」 중에서
나는 그만 단념하고 한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결국 내 눈으로 보지 못했다. 설국의 봄에 맨 처음 핀다고 하는 그 목련꽃이 지금 어디선가 산마루에 또렷이 서 있는 모습을 그저 마음속으로만 떠올려보았다. 그 새하얀 꽃은 이제 막 눈이 녹으면서 꽃잎의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고 있을 게 분명했다. ……
--- 「호리 다쓰오: 목련꽃」 중에서
도토리를 주우며 기뻐하던 아내는 이제 없다. 무덤 위 흙에는 이끼 꽃이 몇 번이나 피었다. 산에서 도토리가 떨어지면 직박구리 우는 소리에 낙엽이 떨어진다. 올해 2월, 아내가 남겨준 여섯 살 된 아이를 데리고 이 식물원에 놀러와 옛날과 변함없는 도토리를 줍게 했다. 이런 사소한 것까지 유전이라는 게 있는 건지, 아이는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대여섯 개쯤 주울 때마다 숨을 할딱이며 내 곁으로 뛰어와, 내 모자 안에 펼쳐놓은 손수건 위로 던져 넣는다. 주워온 도토리가 점점 늘어나는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뺨을 발그레 물들이며 기뻐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다. 부정할 수 없는 엄마의 그림자가 천진난만한 얼굴 한구석에 얼핏 스치면서, 희미해져 가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 「데라다 도라히코: 도토리」 중에서
시키는 인간으로서, 또 문학자로서 가장 ‘서투름’이 부족한 사내였다. 오랜 세월 그를 알고 지내온 그 어떤 순간에도 나는 그의 서투름을 보고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또한 그의 서투름에 반해버린 순간조차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10년이 되어가는 오늘, 그가 날 위해 일부러 그려준 한 송이 구름국화 그림 속에서 이 ‘서투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결과로 내가 웃고 감탄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나로서는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다만 그림이 너무나 쓸쓸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시키가 이 ‘서투름’을 좀 더 웅대하게 발휘하여 내 쓸쓸함을 달래주었으면 좋겠다.
--- 「나쓰메 소세키: 시키의 그림」 중에서
강한 기세, 힘센 사상, 큰 감격, 불타오르는 시적 정서, 그런 모든 종류의 책이나 이야기는 생리적으로 불쾌하고 이상한 공허함을 가져왔다. 나의 지친 심신은 조용한 다실에서 들려오는 쇠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를 즐겼다. 아내와 이웃 아낙네들이 쓸데없는 일상 잡담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흥취 깊고, 황홀한 시정으로까지 여겨졌다. 그런 평범하고 무미한 일들이 나를 항상 기분 좋은 꿈의 황홀로 이끌 때까지 특별한 멋의 예술적 심경을 느끼게 했다.
--- 「하기와라 사쿠타로: 병상 생활에서 깨달은 발견」 중에서
글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해도 좋다. 하지만 글을 사는 쪽은 장사꾼이다. 일일이 주문하는 대로 떠맡다가는 배겨 낼 수가 없다. 가난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삼가야 할 것은 글을 함부로 많이 쓰는 것이다. 선생은 그러면서 “자네는 아직 젊으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겠지. 이건 내가 자네 대신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말일세” 하고 말했다. 나는 지금도 그때 선생이 지은 미소를 기억한다. 어두운 처마 끝에서 살랑거리던 파초 잎도 기억한다. 하지만 선생의 훈계에 충실했다고 단언할 자신은 없다.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소세키 산방의 겨울」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지만, 그걸 강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아직 젊은데도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해, 오늘밤 잠들면 내일 아침 이대로 죽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밤잠을 못 이루는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죽음을 완전히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자네도 한 번은 죽어, 하고 겁을 줘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 「마사오카 시키: 사후」 중에서
바보같이! …… 보리 낱알 반쯤만 한 벌레 때문에 나는 선량한 소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그 한 없이 작은 생의 소멸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
--- 「고이즈미 야구모: 풀종다리」 중에서